베란다 수업

by 민이새

종은 없다.
출석은 바람의 방향과 먼지의 궤도.


교재는 빨래집게와 접이식 건조대,
초등생 둘의 젖은 운동화,
어제 도착한 택배 상자를 펼쳐 만든 골판지 판.


첫 시간, 기압 읽기:
수건이 먼저 마르면 맑음,
청바지가 늦게 마르면 습도 높음.
예보보다 정확한 건
바람에 뒤집히는 티셔츠의 속도.


둘째 시간, 질서:
줄넘기와 물총은 오른쪽 끝,
헬멧은 난간 안쪽,
안전은 습관으로 가르친다.


셋째 시간, 기억의 페이지:
지난달 검은 양복 한 벌이
하루 내내 걸려 있었다.
햇빛이 바늘처럼 내려와
주름마다 길을 그렸고,
그 길은 아직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넷째 시간, 생활의 물리:
상자는 평평하게 접어 재활용,
마감은 제때 접어 책상으로.
느리지만 꾸준한 관성으로
하루는 조용히 굴러간다.


마지막 시간, 평가 없이:
합격도 낙제도 없다.
건조대에서 나는 마른 냄새,
아이들 발소리가 베란다를 통과해
거실로 퍼지면
그게 오늘의 성적표.


해가 기울면 강의는 끝.
난간에 걸린 한 줄기 잔광을 걷어 들이고
문을 닫는다.
수업평: 오늘도 버텼고,
조금 자랐다—아이들도, 그리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