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by 민이새

창문을 닫아도 밝아지는 순간이 있다.
구름의 속살이 가까워지고
공기에는 소금기 대신 철의 냄새가 돈다.


방충망에 맺힌 방울들이
육각형 격자를 잠깐 빌려
세상을 작은 수족관으로 나눈다.


먼저 공기가 물의 문법을 기억한다.
빛은 진해지고 색은 한 톤 낮아진다.
먼지 위에 동그라미가 생기고
세계는 그 원 안으로 모여 앉는다.


지붕은 드럼, 배수구는 현악,
차양 끝에서 박자가 맞춰지고
창밖은 흔들리는 자막이 된다.
소음은 젖고, 고요한 소리를 낸다.


여름비는 내리지 않는다, 풀린다.

팽팽하던 하루의 매듭이 하나씩

젖은 실처럼 부드럽게 흘러

골목의 주름이 천천히 펴진다.


비가 그치면 가장 늦게 마르는 것은

옷자락도 신발도 아니다.

맑아진 냄새, 낮아진 하늘,

그리고 생각의 가장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