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늘 그렇듯 오르막을 터벅터벅 걸어 오르고 있었는데 저 앞에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바로 엄마였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엄마.”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런데 표정이 무척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이상한 질문을 했다.
“어디서 오는 길이니?”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학교에서 오는 길이지. 야간 자율학습이 10시까지잖아.” 대답을 하면서도 느낌이 이상했다.
내 대답에 엄마는 “그래? 학교에서 오는 길이라는 거지.” 라며 내 대답을 되뇌었다.
그렇게 애매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지만 찜찜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가방을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서랍을 열다가 그만 멈춰버리고 말았다. 내가 정리해 놓았던 서랍이 아니었다. 분명히 내가 챙겨놓은 순서가 아니란 생각이 들자 문득 일기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일기에 적어놓은 내용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내 일기를 읽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연관이 있는 질문이었겠다는 생각이드니 순간 섬뜩했다. 그리고는 서랍 속에서 일기장을 찾았다. 그렇다. 분명 나는 일기장을 제일 아래에 놓지 않고 서랍 속 노트들 사이에 끼워 놓았었는데 그 순간엔 제일 아래에 고이 놓여있었다. 다른 문구들도 자리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일기에는 나의 고등학교 1학년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가득했다.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주변 남학교 축제에 다녀온 이야기, 주말이면 도서관에 간다고 해놓고 미팅에 나간 이야기, 평소에도 잠깐 가게 심부름 다녀온다고 나갔다가 좋아하는 동네 오빠와 잠시 골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 등등 많은 이야기와 엄마에게 상처받고 엄마에게 실망하며 엄마를 원망하는 글도 써놓았는데 그런 내용들을 모두 읽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날 밤을 보냈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내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워낙 평소에도 차가운 말투와 아버지를 닮았다며 구박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어째 평소보다 더 냉랭한 말투는 내 마음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조용히 주변에 다가와 방을 닦으며 “괘씸한 년, 어디서 감히” 라며 물건들을 거칠게 다루기도 했고 방청소하는 손길에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동생에게는 아주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차가운 모든 말과 행동들은 나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에 확신마저 들었다. 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내용들이 엄마의 마음을 언짢게 바꿔 버릴 만큼 큰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뭔가 억울한 마음도 들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저 답답한 마음에 속이 상했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서랍에서 일기장을 꺼내 가방에 담았다. 누군가가 볼지도 모를 일기장에 내 마음이나 나의 일들을 적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며 일기장을 학교로 가져갔다. 그리고 틈을 내어 학교에 있던 소각장으로 일기장을 들고 갔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일기장을 펼쳐 한 장씩 찢어 던지며 나의 소중한 추억들을 함께 던져버렸다. 뜨거운 불길에 눈은 따가웠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이렇게 일기장을 불길 속으로 던져버리게 만든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다시는 일기도 쓰지 않을 거라고.
세월이 흘러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일이었다. 이혼 후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 지 2년쯤 되었을 때였다. 이혼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전남편의 딸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성이었다. 이혼 전 남편은 집에 있고 내가 직장에 다닐 때였다. 내가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딸아이는 가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 언제 와? 빨리 오면 안 돼? 아빠 무서워. 지금도 어렵게 전화한 거야.”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급하게 달려들어가긴 했지만 늘 그렇게 하지 못했고 어느 날부터는 전화도 잦아들었다. 그 후로 딸아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지내는 시기였기에 아이의 아픔은 인지했지만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 끝내 이혼을 했고 아이들도 엄마와의 삶을 선택한 상황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거라 느끼고는 있었지만 내가 직업을 제대로 갖고 생활이 조금이나마 안정되고 나서야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줄 수 있었다. 그날도 휴일이었고 평일이니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 그날따라 갑자기 딸아이의 일기장이 보고 싶어졌다.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물어도 별다른 답이 없으니 찾아 읽고 딸아이의 마음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일기장을 찾기 시작했고 여러 책들 사이에서 일기장 아닌 척 조용히 꽂혀 있는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긴장한 마음으로 일기장을 펼쳤고 딸아이의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두루두루 적혀있어 ‘요즘 이러고 지내는구나’ 하며 딸아이를 떠올렸다. 내용 중엔 갑자기 가장이 되어 살아가는 나를 안쓰럽게도, 자랑스럽게도 느끼고 있다는 내용도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앞뒤 없이 읽다가 예전 일기를 발견하고 내 눈을 의심하며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그동안 딸아이가 혼자 겪었던 아빠에 대한 이야기들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아빠가 끓여놓은 찌개를 혼자 먹었다고 따귀를 맞았다.’ 거나 ‘늦게 들어왔다며 들어오는 현관에서 머리통을 맞았다’ 거나 ‘밥 먹고 동생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등등 이제는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내용들이었지만 읽는 순간엔 그날의 장면들이 스치며 손끝이 떨려왔다. 하교 후에 돌아올 딸아이를 떠올리니 과연 일기를 읽은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고, 이혼을 무조건 찬성하며 엄마와의 생활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던 딸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맘 한켠이 아려왔다. 그리고 겉으로 티 내지 않고 혼자서 마음을 추스르며 씩씩하게 지내준 딸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자라면서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의 엄마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마냥 기대고 싶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상의하고 싶고, 지치고 힘들 때면 달려가 포근하게 안기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있어주기에 내 삶은 너무 고단했고, 그렇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도 딸아이의 일기장을 꺼내 읽고 난 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다. 팍팍한 삶이지만 마음은 되도록 몰랑몰랑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며 아이들과 살을 맞대고 생각을 나누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엄마가 처음이고 가장도 처음인걸 아이들도 잘 받아주었고 혼자 애쓴다고 오히려 내가 기대고 싶게 버텨주었고,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충분히 상의해 주었었다.
나의 엄마에게로부터 얽매여 있던 나를 조금씩 무디게 해 준 건 바로 아이들이었다. 무던히 곁에서 든든하게 자리 잡아 준 아이들이 있었기에 엄마의 자리를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엄마라면 자고로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모습을 갖추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려놓지 않고 가져가고 싶다.
얼마 전 아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면담을 신청했다. 결국 문제는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실마리를 찾는 데 성공했다. 엄마에게 손 내밀어준 그래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기회를 준 딸아이가 너무나 고마웠다. 나의 엄마에겐 여전히 선뜻 손 내밀어 고민을 상담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이젠 그것으로 인해 내가 힘들지 않기에 충분하게 과거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 내가 보였던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