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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Sep 09. 2023

내 엄마가 아닐지도 몰라

사실이 아니겠지만




“애는 뭐 한다고 새벽부터 도서관을 간 거야? "

아침부터 짜증 섞인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니 왜 그렇게 생각을 해. 엄마는.. 공부하러 갔으면 공부를 하고 오겠지.”

“웃기지 마.. 분명 공부도 안 하고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놀다 들어올 거라니까.. “

“아니 엄마 그냥 공부하러 갔겠구나 하고 생각해 주고 믿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나에겐 다섯 살 차이의 여동생이 있다. 나보다 큰 키에 나보다 공부도 잘했고 나보다 밥도 우유도 고기도 훨씬 잘 먹는 동생이 일요일 아침 대참사의 주인공 선하였다. 늘 함께 있으면서 나를 잘 따랐고 나이보다 어른스러워 말도 잘 통하는 너무 이쁜 동생이었다. 동생이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만들기 숙제가 있었는데 엄마는 나보고 어려운 숙제는 대신해주라고 했었고, 꼬물꼬물 뭘 만드는 걸 무척 좋아했던 나는 신이 나서 열심히 집을 만들어주어 방학숙제 상도 타오곤 했었다. 그날은 이른 아침 여동생이 도서관을 갔고, 나는 아침만 먹고 학교 도서관으로 가기로 친구들과 약속되어 있던 날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동생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동생을 믿지 못하며 하는 말이 못마땅한 마음에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데 그날따라 분위기 파악 못하고 그냥 나댄 꼴이 된 거였다. 망할. 평상시 아빠를 닮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엄마인데 거기에 말대꾸를 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몇 숟가락 뜨지도 못한 상태에서 언쟁이 커졌고, 정말 딱 숟가락 놓고 일어나 방을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기막힌 우리 집 규칙- 엄마는 절대로 밥상을 치우지 않는다- 때문에 방을 나서지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내 말대꾸에 언짢아진 엄마는 “밥상이나 치워~!”라며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아 아무 말 말고 밥만 먹고 학교 도서관으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아.. 왜 그랬을까. 왜 그랬지, 다 내 탓이다. 아 진짜 짜증 나.’



늘 그렇듯 밥상을 치우는데도 옆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서서히 화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의미였고 분명 무슨 일인가가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마음이 너무 심란해져 갔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기 일보 직전을 가도록 내가 도와준 격이 되어버렸다.



싸~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상을 치우고 마당 설거지 통에 그릇을 담아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를 시작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가 보다. 그렇게 끝내 화가 폭발한 엄마는 달려 나와 내 설거지 통을 통째로 뺏으며 화를 냈다. 폭발한 감정은 주체가 되지 않는지 집안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나도 화가 치밀어 올라 벌떡 일어나 설거지를 그만두고 마당 구석 쪽방인 내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비키라니 비켜줄 수밖에 뭐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때 설거지 통을 뺏은 것으로도 모자라 내 방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히면서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머리채를 휙 잡아챘고, 그다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디를 가려고!” “학교 도서관 갈 거예요.”

“야야 됐어.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게 무슨 학교 도서관!”


하더니 그 작은 방 한구석에 책상이랍시고 놓아둔 앉은뱅이 상위에 있는 내 책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고 달려드는 나를 힘껏 밀치고는 잡히는 대로 책을 찢기 시작했다.


“제발 놔둬요. 엉엉. 그냥 내 책 놔두라고!”


울면서 소리치며 달려드는 데도 힘은 얼마나 세던지,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나는 혼자 버티고 있었고, 책을 다 집어던지더니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내 티셔츠마저도 잡아채버렸다.

그 순간.. “부욱!”

내 티셔츠 등 쪽은 찢겨 나갔고, 그 힘에 나는 나뒹굴고 말았다.

그제야 분이 좀 풀리는지 나뒹굴어 있는 나를 훌쩍 건너 내 방을 나가버렸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또 등신처럼 이러고 있는 건지.. 아침 밥상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말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고, 바보 같았다. 널브러진 책들과 찢긴 티셔츠를 바라보며, 숨죽여 울며 흐르는 눈물과 함께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 사람은 내 엄마가 아닐 거야.. 엄마라면 저렇게 할 수가 있겠어.. ㅠㅠ’



냉랭한 분위기는 이어졌고, 이 일에 대해 나는 어떠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엄마는 나에게 잘못했다는 반성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독하다 했고, 점심 도시락을 쪽마루에 집어던졌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주지나 말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냥 굶고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도시락이 없으면 야간학습까지 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 던져놓은 도시락을 챙겨야만 했다. 그래서 잔뜩 무거운 마음으로 도시락을 집어 들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 순간 “나쁜 년”이라는 소리가 들렸고, 내 몸이 휘청했다. 중심이 무너지면서 쪽마루옆으로 쓰러졌다. 옆구리에 발길질이 느껴졌다. 너무 놀랐고 넘어지며 올려다보이는 괴물 같은 표정을 보는 순간 바로 벌떡 일어나 도시락을 거칠게 집어 들었고, 옷을 털며 책가방에 도시락을 처넣어 버렸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낡은 대문을 열고 나와버렸다. 대문을 닫으면서 오기 가득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혹시라도 뒤따라 나오며 또 다른 매질을 할까 봐 겁이 나 서두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다 느껴졌다.



나에게 정말 친엄마가 따로 있다면 어디에 살고 있을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걸 알면 어떻게 될까? 평소 내 돌사진만 없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 혹시 나는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제법 했었다. 내가 아빠를 많이 닮기도 했고, 말투나 행동도 닮았다면서 혀를 차던 엄마였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이지만 그때는 한참 사춘기였고,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끝없이 이어지는 머릿속 시끄러움은 내 눈물과 함께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내 맘엔 큰 상처로 남은 그날의 일을 한동안 곱씹고 잊지 못하고 있었다. 친엄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버려지지 않았고, 지금도 혹시.. 하며 가끔 떠올리며 살고 있다. 당연히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이런 감정을 버리지 못하면서 엄마와 잘 지내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엔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옅어지고 있기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어느 날 슬쩍 물어봤었다. 나를 무척 많이 때렸던 시간들에 대해. 그런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얼마나 허탈했는지 모른다. 가한 사람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애써 기억하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제법 옅어졌다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다시금 그날의 감정이 몰려왔다. 글로 적어 '버리고' 싶은 그날을 이렇게 적어놓으며 더 이상 이날을 떠올리게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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