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면 부스스 일어나 요가매트를 펼친다. 그리고 유튜브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잠이 덜 깬 채로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다 보면 15~6분쯤이 흐르고 내 몸과 정신은 맑아져 있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필사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길고 단단하다.
겨우 몇 페이지를 읽어내느라 쩔쩔매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 이젠 책을 읽지 않는 날은 없다. 단 몇 페이지를 읽더라도 충분히 생각하게 되고, 사색하며 나를 주인공으로의 사유의 시간들로 가득해졌다.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이렇게 단단하게 하루를 열고 하루를 잘 살아본 기억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에게도 이런 시간들이 허락된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며 놓아버렸던 시간들을 이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시간들로 채워가는 하루하루가 참으로 감사하다.
예전에도 책을 읽기 했더랬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예전에는 혼자 읽고 눈물을 흘리며 상념에 빠져 내 인생을 후회하는 시간들이었다. 책을 제대로 된 인생의 길라잡이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추지 못했던 때였다.
도망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은 자리를 떠날 기회가 왔다며 어리석게도 큰 기대도 없는 새 삶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막연한 미래를 흐릿한 기대만으로 마주했을 때에 다가오는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으며, ‘산 넘어 산’이었고 피해서는 안 되는 현실을 피함으로 맞이하는 삶은 나에게 형벌과도 같았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감으로 시작한 서툰 도피, 결혼. 그 대가는 13년이 지나고 나서야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혼자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어긋나 있었으며, 두 아이와 아내를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남편을 돌봐줄 힘도 능력도 내겐 없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알려준 아이들의 아빠는 그 ‘아빠’라는 자리를 버렸으며 사람꼴이 아닌 모습으로 우리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어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 힘으로 두 아이를 거두고 살아가기 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도 머릿속도 삶마저도 삐그덕 거리고 있었다.
나약한 아비의 모습을 물리치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두 아이를 거두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며 2003년 6월 가장이 되기로 결정했고, 정말 악착같이 살았다. 고단했고 버거웠다. 그런데 너무 악착같아서였을까… 노력한 만큼의 행운은 나를 찾아왔지만 적당한 정도만 내게 남겨주고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주머니에 조금 차오르는 듯하다가 모두 사라져 버리기를 두어 차례.. 통장잔고가 바닥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파산 직전까지 가버렸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고, 자신의 무능함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했었다. 일이 꼬일 때면 일만이 아닌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자책하며 결국 사람들도 믿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은 거듭되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나 혼자만 지고 있던 가장의 무게를 내려놔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나의 재정상태를 아이들과 상의하게 되었고 함께 나누어 가정을 이끌기로 하면서, 혼자 끌고 오던 가장의 자리를 17년 만에 결국 내려놓게 되었다. 패잔병처럼. 아이들이 제대로 사회에 자리 잡은 상황은 아직 아니었기에 그 선택은 쉽지 않았다. 나에게 대놓고 무능함을, 부족함을 탓하진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 내몰린 나는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더욱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몰라 더욱 괴로워했다. 그렇게 지쳐 며칠간 꼼짝도 못 하고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며 지내고 있던 내게 동생은 늘 하던 대로 ‘마음을 잡는데 책만 한 것이 없어. 내가 책 주문했어. 택배 도착할 거야. 그냥 그렇게 있지 말고 책이라도 읽어봐.’라며 위로했다. 평소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던 나에게 동생이 항상 하던 이야기.....
그렇게 책을 만난 때가 바로 2020년 5월쯤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을 때 책을 만난 거였다. 그런데 그때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혼자 며칠간 읽다가 계속 꾸준히 읽으려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책을 함께 볼 수 있는 모임을 찾아 나섰고 그렇게 만난 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미라클리딩’이라는 독서모임이다. 지금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미래를 응원하는 사이가 되어 든든한 후원자들로 내 곁에 함께하고 있다.
책과의 시간은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무엇이 문제였기에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서있는 것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나가 죽어야 한다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고, 너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기로에 서서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그러니 자책하지 말라고, 그리고 앞으로 기회는 아직 있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아픔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습관의 재발견’ 등을 시작으로 나의 하루는 조각조각 나뉘었다.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며 눈 뜨고 잠들 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책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터득해 나갔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알게 되면서부터 무척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 잘할 수 있다면 뭐든 멈출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가며 한 달에 겨우 3~4권을 읽던 내가 구본형의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를 필사까지 3번씩 읽어 내며 목표를 조금씩 더 올려 6~7권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멘털이 약해 단단하지 못한 생각으로 두려운 시간들을 어떻게 잡아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조성희의 ‘뜨겁게 나를 응원한다’ 100일 필사 책을 만나고 300일 필사를 하며 흐트러진 정신줄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으로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들로 채워갔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 자신에게 무수한 질문들을 던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지금 나는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 그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나이 들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제 나는 나이 듦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걱정하지도 않는다. 책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나의 미래가 될 것이고 그렇게 나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허황된 꿈을 좇아 쉽게 웃고 쉽게 우는 어리석은 흐릿한 희망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었다면 이제는 안정되고 평온한 모습의 맑고 또렷한 희망을 마음속에 품어 안고 명확한 미래를 그려나갈 것이다. 오늘도 멀지 않은 미래의 멋지게 나이 들어 있을 나를 향해 환하게 웃음 지어 본다. 한 손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내가 쓴 책을 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