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면서 이토록 아쉬웠던 적이 있었나. 시원섭섭한 마음보다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아빠와의 추억의 공간 하나가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다른 장소보다도 유난히 이 집에 아빠와의 추억이 많다.
특별한 추억이 아니다. 그저 소소한 일상이고, 삶 자체다. 같이 밥을 먹고, TV를 보면서 웃고 떠들고, 싸우고 화해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곳.
정든 집을 떠나려니 아빠와 이별했을 때가 생각난다.
아빠와 마지막 인지도 모르고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했던 그 날 아침,
발인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녁, 아빠는 안 계신데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빠 물건들과 집안 곳곳에 아빠의 흔적들. 작별 인사도 없이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나버린 아빠와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린 시간들. 아빠를 떠나보내고 서로의 눈물을 말없이 닦아주다가도 어느 순간엔 지독히 깊은 슬픔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워 외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뎌냈던 시간들. 아빠의 생신상 대신 제사상을 차려놓고 엄마와 동생들과 모여 앉아 아빠를 추억했던 시간들. 이제 그마저도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 그 추억이 깃든 이 공간과도 이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만남이 있으면 늘 이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함께 하는 오늘의 소중함을 자주 잊어버리고 산다. 늘 함께 할 거라는 착각 속에서 산다. 그리고 이별할 순간이 오면, 그제야 깨닫는다.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별 것 아니라고 여겼던 일상들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우리 가족에게 십여 년간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어 고맙다.
잊지 못할 내 삶의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해주어 고맙다. 가족과 함께 한 많은 날들과 아빠와 보낸 마지막 날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맙다. 이곳에서 나와 우리 가족은 저마다 다른 행복과 슬픔을 맛보았고, 아픔을 느끼며 성장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