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야채를 좋아한다. 마트에서 양배추 한 통을 사서 소스 없이 채 썰어먹고, 고깃집에 가면 상추와 파절임을 3번 넘게 리필해 먹는 사람이 바로 나다. 마라탕 집에서 재료를 집을 때면 친구들이 내 접시를 보고 놀라곤 하는데, 숙주가 마치 한겨울에 굴린 눈사람 몸처럼 한가득 동글하게 쌓여 있어서다. 보통은 옥수수 면이 인기가 많다만 나는 숙주를 면처럼 후루룩! 하고 먹으니 신기하게 보여질 따름이다. '아삭!' 하는 야채의 식감이 좋은 걸 어떡해. 고기는 사정없이 오물해야 겨우내 소화가 되니 노동에 가깝지만, 야채는 아삭, 아삭 하는 경쾌함을 즐기는 것이니 놀이와 가깝다. 그런데, 야채 없이 못 사는 나에게도 못 먹는 야채가 있다. 더군다나 이 야채는 너무 대중적이라 식당 곳곳에 그 모습을 숨기고 있어 사전에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놈이다. 매복의 달인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인이 사랑하는 야채. 삼겹살의 단짝. 바로 깻잎이다.
내가 깻잎을 매복의 달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에게 너무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아서였기 때문이다. 일단 깻잎이 싫은 이유부터 말해본다. 먼저 독특한 향. 깻잎의 향은 참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코 끝에서 징하게 맴도는 깻잎의 진한 향. 나에게는 식탁 위에서 목욕탕 냄새를 맡는 느낌이다. 둘째론 식감이다. 아삭하지도 않고 흐물흐물하면서 뒷면은 까끌까끌한.. 너무 별로다. 안타깝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이 깻잎이라는 녀석을 너무 좋아하는 탓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깻잎이 등장해버리는 것이다. 치즈 닭갈비를 먹으러 갔더니 아니 웬걸! 서로 사랑하는 연인처럼 닭갈비 조각에 깻잎이 찰싹 붙어있다. 이런 경우에는 젓가락으로 일일이 떼어내야 한다. 헤어짐에도 연인의 향기가 남아있듯, 닭갈비를 씹지만 깻잎의 '그 향'이 여전히 감돌고 있었다.
볶음밥은 또 어떤가. 사람들은 볶음밥에 깻잎 넣기를 참 좋아한다. 삼겹살을 행복하게 구워 먹다가 볶음밥을 시켰을 때 난데없이 볶음밥에 깻잎이 들어가 있으면 텐션이 확 떨어진다. 그림의 떡이다. 꾹 참고 한 숟가락 퍼 먹지만 음, 역시 별로다. 하지만 가장 슬픈건 참치김밥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참치김밥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처음 발명한 순간에 깻잎 대신 오이를 넣으라고 소리치고 싶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 처럼.. 오이 헤이러는 당당하게 커뮤니티를 휩쓸고 있지만 깻잎 헤이러의 목소리는 약하다. 세상에 나만 깻잎을 싫어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하긴 주위에 깻잎 싫어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기는 하다. 슬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는 야채를 싫어하고 편식쟁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깻잎 매복 전술에 여러번 호되게 당하다보니 이젠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깻잎 혹시 들어가나요'를 물어볼 때도 있다. 오해 받기 딱 좋다. 깻잎도 못 먹는 아기 입맛으로 보여지고 있는 걸까. 과거 대학교 엠티에서 누군가 당시 핫하던 '깻잎 모히또'를 큰 술병에 담가서 한 잔씩 나눠줬던 장면이 떠오른다. 한 모금 마시고는 웩! 하고 맛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나. 이렇게 보면 깻잎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강렬한 기억으로 돌아온다. 참 질긴 악연이구나. 그 진한 향처럼 이런저런 추억들이 머릿속에 진하게 새겨진다.
깻잎을 먹지 못한다고 엄마한테 혼나던 어린 시절, 떡볶이 집에서 알바할 때 떡볶이에 깻잎이 들어가 있어서 맛없지만 맛있는 척 했던 20대 초반, 싫어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오면 깻잎을 정말 싫어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직장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의 수단으로 깻잎을 말하는 현재까지 깻잎은 다행스럽게도 트라우마보다는 여러 재미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참 싫은 녀석이지만 흩어지는 기억들을 붙잡아준다는 점에서는 고마운 구석이 있다. 그렇지만 고맙다고 해서 깻잎을 싫어하는 내 취향이 바뀌는 일은 없다. 아마 평생동안!
오늘은 일요일이다. 일요일의 바람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 내일 회사 구내식당 메뉴에 '깻잎OO볶음' 따위의 메뉴가 나오지 않기를. 혹시나 참치김밥이 나와서 나를 당황하게 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