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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Sep 19. 2020

아빠가 튀겨준 치킨

 며칠 전 이야기다. 대낮부터 치킨을 뜯고 있었다. 잘 튀겨진 옛날 통닭을 한 사람당 한 명씩 앞에 두고 신나게 먹던 중에, 아빠가 말했다. "너 아빠가 치킨 튀겨주면 정말 난리날껄?" 나는 바로 왜? 하고 물었지만, 금새 물음을 멈추었다. 아 맞다, 아빠 치킨집 했었지. 순간 궁금했다. 아빠가 튀겨준 치킨은 어떤 맛이었을까? 아쉽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빠의 치킨은 부재한다. 그 시절 나는 너무 어렸던 탓이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나서 엄마와 같이 치킨집을 했었다. 풍문으로는 제법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발언 출처는 물론 아빠다). 사람들이 줄을 서가면서까지 치킨을 포장했고, 아빠가 치킨을 튀기는 동안 어린 나를 옆 김밥집 사장님이 돌봐주었다고 한다. 잘나가는 치킨집 사장님이었던 아빠. 그러나 지금은 치킨집 사장님이 아니다. IMF 탓이다. 퇴근하고 치킨 한 마리씩 포장해가던 직장인들, 그들의 삶이 해체되는 슬픈 시절 가운데 우리 아빠가 있었다. 어려움을 공유하던 그 때에는 치킨 한 마리를 나눌 여유조차 없었던 걸까.



 나는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 야식 중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스몰토크를 했다. 애석하게도 피자가 치킨보다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나는 치킨이 더 좋다. 겉바속촉! 피자는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치킨의 고유한 매력이다. 갓 튀긴 치킨을 한 입 베어물면 바삭! 하는 소리와 함께 입 안이 육즙으로 가득해진다. 먹다 느끼해 질 즈음에 찾는 치킨무도 일품이다. 이름부터가 '치킨무'다. 말 그대로 치킨을 위한 무다. 그 어느 김치도 특정 요리만을 위한 김치는 없다. 그래서 치킨무가 각별하다. 오로지 치킨만을 즐기기 위해 창조된 반찬. 매콤 달콤한 치킨 양념에 푹 찍어 먹는 것도 느끼함을 덜하는 방법이다. 때때로 프라이드가 질리면 양념이나 간장, 마늘 치킨을 먹으면 된다. 세상은 내가 치킨에 질리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매일 온갖 종류의 치킨이 나를 유혹한다. 참 마성의 음식이다.


반반 치킨도 좋다


 나는 뼈 있는 치킨을 좋아한다. 순살보다는 뜯는 재미가 있는 뼈 있는 치킨이 좋다. 그 중에서도 닭 가슴살 부위를 가장 좋아한다. 갓 튀긴 치킨의 가슴살 부위는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어 환상이다.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면 다툴 일이 별로 없다. 내가 딱히 다리나 날개에 욕심이 없어서다. 죄다 기피하는 부위를 내가 선점하니, 치킨계의 평화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치킨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치킨의 성질에 대해 깨닫게 된다. 치킨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준다. 치킨은 혼자 한 마리 전부 먹기엔 버겁고,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에 알맞은 양이다. 날개와 다리도 각각 두 개씩 있어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먹을 수 있다. 치킨 한 마리를 안주거리로 놓고,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치킨을 생각하다 보면 때때로 함께 치킨을 먹은 누군가를 추억하기도 한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동기들과 치킨집에서 만난 일화가 떠오른다. 야간 수업이 끝나고 내가 뒤늦게 등장했는데, 신난 친구가 박수를 치다가 그만 2000CC 맥주를 치킨 위에 쏟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도 갓 나온 간장 치킨에.. 가끔 동기들과 치킨을 먹을 때면 그 일을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한다. 치킨은 자주 먹게 되니, 그만큼 옛 추억을 많이 떠오르게 한다. 슬프게도 치킨집 사장님 시절 아빠의 모습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앞치마를 두르고, 튀김기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기름과 씨름하는 그 장면을 추억하고 싶지만, 아무리 애써도 불가능하다. 오로지 상상으로만 가닿아 볼 뿐이다.


내가 정말 애정하는, 학교 앞 통닭집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때때로 퇴근길에 치킨 반 마리씩 포장해서 집에서 혼자 먹고는 한다. 맛은 있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맛있는 치킨을 두고 '맛있다!' 외치며 친구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언제는 치킨 한 마리를 포장했었다. 아무리 잘 먹는 나라고는 하지만 한 마리는 무리였다. 그 순간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역시 치킨은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하겠구나. 친구를 만날 핑계를 잃지 않게 되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했듯, 내 친구들은 치킨보다는 피자를 더 좋아한다. 이를 어쩐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피자를 먹으러 가자 하고, 피자집에서 '윙&봉'을 사이드 메뉴로 주문하는 거다. 소심한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치킨을 좋아하니까.. 다음주에는 이렇게라도 치킨을 먹어야겠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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