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ish Jun 06. 2020

내 별명은 '파채 킬러'

 날이 점점 더워진다. 대구는 벌써 폭염특보가 내려졌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서울시 강서구도 머지않아 뜨거워지겠지. 6월이면 항상 선풍기를 닦았던 것 같다.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진짜 더워서 못 참겠다 싶으면 비로소 선풍기를 꺼내 닦는다. 지금은 아직 선풍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론 결심은 월요일에 했다. 아무래도 다음주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선풍기 날개를 열심히 닦는 내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까 싶다.


 식욕은 의식의 흐름이다. 오늘같이 더운 날이면 냉면이 떠오른다. "아, 냉면 먹고 싶다... 땀 뻘뻘 흘릴 때는 차가운 물냉면이 최고지... 근데 육쌈냉면 안 먹은 지 오래됐네. 육쌈냉면? 아 고기 먹고 싶다. 삼겹살 생각나네. 불판에 지글지글.. 버섯도 같이 구워서.. 저번에 먹었던 삼겹살 집은 뭔가 아쉬웠어. 왜지? .." 참 밑도 끝도 없는 의식의 흐름이다. 냉면에서 삼겹살까지 왔다. 제임스 조이스가 의식의 흐름으로 소설을 썼다는데, 음식 얘기라면 나도 충분히 가능할지도. 근데 삼겹살 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 그 가게가 아쉬웠지?



 외식할 때 나는 반찬을 중요시한다. 떡볶이 집에 단무지가 있는지, 백반 집에 멸치볶음이 있는지, 혹여나 치킨 집에서 치킨무가 없는지 등,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있어야 메인 요리를 기분좋게 즐길 수 있다. 삼겹살도 그렇다. 삼겹살의 단짝은 상추도, 깻잎도, 풋고추도, 마늘도, 쌈장도 아니다. 나에게는 단연 '파채'다. 참기름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그 홀쭉한 가닥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있는, 알싸하고 식감은 아삭하여 삼겹살의 부족한 부분을 충실히 채워주는, 그 '파채' 말이다. 삼겹살과 파채는 최고의 조합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동네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면 공짜로 파채거리를 받았다. 부모님이 고기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면 꼭 양손에 파채를 받아온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집은 자연스럽게 고기와 함께 파채를 먹었다. 그렇게 자라왔던 탓에, 고깃집에 파채가 없으면 어색하고, 만약 파채가 있으면 매우 반갑다. 파채가 있는 고깃집은 혼자 점찍어놓고, 친구들과 고기를 먹으러 갈 때면 나는 그곳으로 은근슬쩍 유도한다.



 내 별명은 '파채 킬러'다. 실제로 고깃집에서 나는 파채를 정말 많이 먹는다. 3번 이상 리필은 기본이다. 계속 파채만 리필하면 어색하니까, 고기 바뀌는 타이밍에 맞춰서 "아 그리고 파채도 더 주세요!" 하는 식의 전술을 사용한다. 계속 파채만 리필하면 사장님한테 찍혀서 곤란하다. 하지만 너무 맛있는 걸 어떡해. 기름 가득 머금은 잘 익은 삼겹살 한 조각을 입에 넣고 나서, 입 안이 느끼해지겠다 싶을 때 알싸한 파채를 입 안 가득 넣어서 함꼐 먹으면 정말 좋다. 상추나 깻잎은 파채에 비해 다소 밋밋하다. 청양고추나 생마늘은 너무 맵고, 구운 마늘은 맛있지만 느끼함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삼겹살의 단짝은 단연코 파채다. 아쉽게도 친구들 중에서 나만 파채를 좋아한다. 반찬을 직접 덜어먹는 고깃집에 가면, 나만 계속 파채를 리필해 먹는다. 차라리 그게 편하다. 내 앞에 갖다놓고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파채를 좋아하다 보니, 파닭의 등장은 나에게 또 다른 신세계의 발견과 같았다. 치킨 한 마리가 통쩨로 가려질 정도로 듬직하게 쌓여져 있는 파채를 보면 기분이 절로 행복해진다. 치킨집에서 "파닭 어때?" 라고 물어오는 친구야말로 이상적인 소울메이트다. 혹여나 파닭에 관심이 없는 친구가 있다면, "파닭이 별로면 파추가를 해서 따로 달라고 하는 건 어때?"라며 제안하기도 한다. 그냥 파닭이 부먹이라면 파채를 따로 내오는 파닭은 찍먹일까? 친구들은 보통 이 제안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파닭의 파채는 고깃집의 파채보다는 인기가 높은 것도 있다. 파닭의 알싸한 겨자 맛은 참 매력적이다.



 반팔이 자연스럽고 후드티는 어색한 날씨가 찾아오고 있다. 이런 날에는 차가운 음식이 땡기면서도, 때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고깃집 불판에 삼삼오오 모여 앉고 싶은 마음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과의 모임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런지 유난히 그립다. 상추 위에 삼겹살을 놓고, 구운 마늘을 살포시 얹고, 젓가락으로 쌈장을 살살 올린 후, 피날레로 파채를 한 가득 쌓은, 하나의 이상적인 쌈을 먹고 싶다. 쌈계의 이데아. 파채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친구한테 파닭이라도 먹자고 해볼까? 의식의 흐름 속으로 또 다시 빠져든다. 파닭도 좋지. 파닭? 아 근데 여름엔 삼계탕...

매거진의 이전글 아삭아삭, 무생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