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주의 문장수집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 순간에는 설렘이 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때가 되면 나는 '드디어!' 를 외친다. 드디어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긴 팔 셔츠를 색깔별로 입을 수 있다, 드디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할 수 있다 등등. 수 개월 동안 묵혀있던 외투들을 꺼내 하나씩 행거에 걸고, 더 이상 입지 않을 것 같은 반팔 티셔츠들은 차곡차곡 개서 옷장 구석에 넣는다. 그 행위가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거기에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떤 새로움이 내 삶에 스며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담겨져 있다.
27살의 여름이 지나갔다. 나의 20대를 지나왔던 여덟 번의 여름. 네 번은 대학생으로서, 두 번은 군인, 그리고 작년과 올해 이렇게 두 번은 직장인으로서 여름을 맞았다. 작년의 여름은 주로 역삼동에서 보냈다. 다니던 회사가 역삼동에 있었다. 그 때 나는 뻣뻣하고 경직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첫 직장생활을 경험하면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아침 출근길 2호선 영등포구청역에서 환승할 때부터 그런 감정을 느꼈다. 나처럼 뻣뻣하고 경직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지하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20대의 일곱 번째 여름에 처음 느꼈던 낯설음이었고, 아직 대학생 티를 벗지 못했던 나는 그들이 멀게 느껴졌다. 여덟 번째 여름을 지난 지금에서야 그들과 나는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 때는 그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최근에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유머 같은 것도 대학생 관련된 것들에 더욱 공감이 가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완전히 직장인이 되어버렸다고. 9 to 6의 일상이 어색하지 않고 당연하게 느껴진다고. 맞는 것 같다. 아침 10시 넘게까지 푹 자고 다음 날 오후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또 그 다음 날에는 공강이라 알람을 맞출 필요 없이 늦잠을 자도 되는, 그런 일상보다는 매일 아침 7시면 알람 소리에 눈을 한껏 찡그리며 알람을 5분씩 미루는 일상이 더욱 익숙해졌다.
대학생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업무를 하다가 '이걸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다가올 때 특히 그렇다. 대학생 때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덜 필요했으니까. 오로지 나 스스로만 신경써도 충분했던 시기였으니까. 20대 초반이 그리운 이유를 키워드로 말해보자면 '자유'. 그 자유를 좀 더 자세하게 풀이해보자면, '걱정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 그런 기분에 아주 살짝이라도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천선란 작가의 문장을 만났다. 과거가 그리울 때 어떤 식으로 나 자신을 돌보면 좋을지, 소설 속에서 작은 로봇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 천개의 파랑, 천선란
과거가 그리운 것은 결국 행복했던 예전의 순간들만 따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 때 느꼈던 행복을 지금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것이 그리움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런 그리움을 좋은 감정으로 승화시키기고자 한다면 지금 느끼는 행복과 관계를 엮으면 될 것이다. 그 때의 행복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 현재에서만 충족할 수 있는 모양의 행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20대 후반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 행복에 충실해보는 것.
한 해를 거의 통으로 직장인으로 보냈던 2021년. 힘든 일도 스스로에게 자책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만큼 성장하고 뿌듯하고 직장인이라서 즐거웠던 나날들도 많았다. 11월 즈음에서 이렇게 1년차가 느끼는 마음의 모양을 글로 남겨본다. 내년은 어떨까, 또 3~4년차, 아니면 그 이후에는 어떨까. 너무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한다. 대신 2021년에 남은 2개월에서 어떤 추억을 쌓으면 좋을지 더 깊게 고민해보기로 한다. 피곤한 일상이 어쩌면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그런 하루하루 가운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