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임계치를 건드리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달리기를 잘 못한다. 못할 뿐 아니라 공포심까지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 100미터 달리기 기록은 항상 20초가 넘었고 600m 오래달리기에서는 완주를 해본 적이 없다. 가뜩이나 자신이 없는데 헬스장에서 달리다가 혈압이 떨어지며 실신한 뒤로 더 싫어졌다.
불규칙한 생활로 인한 불안감으로 공황장애가 온 적이 있는데 공포심과 함께 강한 가슴 두근거림이 겹쳐온다. 그 후로 가슴 두근거림과 공포심이 전격 합체되어 버린 것인지 이제는 역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면 불안감이 든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다니
사실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지속적으로 해왔다. 마라톤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강한 육체와 정신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달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 달리는 것이 창작에 좋은 영향을 주는 거 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다 최근 영화 '아워 바디'를 본 후로 달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화 속의 자영이 처음에는 조금만 달려도 힘들어하다가 점점 달리기를 잘하게 되는 모습에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본 거 같다. 영화에서 자영은 8년째 행정고시를 준비하지만 합격의 기약이 없다.
'노력은 절대 저기하지 않는다'지만 느는건 느는거지 되는건 아니다.
'될 놈될'이라고는 말이 있듯 작은 판을 두고 다수가 경쟁하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사람도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 쪽도 마찬가지이다. 90%는 포기하고 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극소수가 성공한다.그래서 도전이라 하는 거고 그렇기에 모든 도전하는 이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달리기는 아주 정직한 성과를 보여준다. 막연하게 불안에 떨며 노력해야 하는 행정고시와는 다르게 달리기는 달리면 달릴수록 기록이 좋아지며 수치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군살이 빠지고 몸에 단단한 근육이 붙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보여준다. 정직하게 노력이 성과로 바뀌는 달리기를 하며 자영은 안정감과 활력을 찾아간다. 무언가를 하면 보상이 있어야 한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언가를 해도 보상이 없으면 의욕은 꺾여버린다. 나도 이렇게 정직한 보상이 뒤따르는 무언가를 하나쯤 가지고 살고 싶다. 그러면 마음에 안정감이 생길 거 같다.
보상이 직접적인 신체활동 중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달리기를 특히 무서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달리기를 무서워하는 나에게 지인 한 분이 심폐기능이 좋아지려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임계점을 반복적으로 건드려 줘야 한다고 충고해 주었다. 임계점을 자꾸만 건드려준다. 임계점을 돌파한 물체는 물성이 바뀐다.
액체가 기체가 되듯 나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올 수도...
나에게 두려움을 주던 무언가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무언가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면 그야말로 기적적인 경험일 것 같다. 달리기라고 쉽사리 습관이 들 것 같지 않지만 끈질기게 하고 다시 하고 다시 또 또 시작하는 근성이 있으니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