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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융 Oct 22. 2017

그래서 나는 점점 조용해진다

 노르웨이에서 두 달간 지냈을 때에도, 영국에서 여섯 달간 지냈을 때에도, 브라질과 태국에서 거의 일년씩을 머무를 때에도, 이탈리아에서 이년 반을 살았을 때에도 내 짐의 크기는 똑같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딱 중간사이즈의 캐리어는 육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가진 전부이자 내 집이 되어주었다. 

소형 노트북컴퓨터, 공책, 몇가지 옷들, 신발 한켤레...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캐리어의 공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책들이었다. 그마저도 다섯권 이상을 가져가기에는 부피도 크고 가방이 무거워졌기에, 나는 매 여행에 가져갈 책을 아주 신중하게 선별해야 했다. 


 현지 친구들이 내 짐가방을 보면 항상 놀랬다. 어떻게 '이것만' 가져왔냐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항상 '별로 필요한 게 없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별로 필요한 게 없었다. 혹여나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기라도 한다면, 헌 옷집을 찾아서 싼값에 자켓을 구입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밖에는 정말 필요한 게 없었다. 내 짐가방에 든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없어져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그런 안이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 간소함을 여행하면서의 큰 미덕으로 여겼다.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이런 '간소함과 무소유의 정신'이 옳은 것이라 은연 중에 생각했다.


 정말 그런 일이 생긴 것은 브라질의 리우에서였다. 캐리어를 정말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말하고는 택시에서 내렸는데, 내가 내리자마자 택시가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놀란 내가 택시를 쫓아가며 트렁크를 두드렸지만, 택시는 내 발버둥쯤은 우습다는 듯 곧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어버버, 입만 뻐끔대고 서 있는 동안 나는 천천히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순식간에 도둑맞았다. 정말 낭패였다!


난 바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관광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경찰서에 도착했지만 내 몸을 세개는 합쳐 놓은 것 같은 몸집의 경찰관은 인상을 찌푸리며 기사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짐을 트렁크에 놔둔 내 잘못이라는 거였다. 나는 억울했다. 화도 났다. 친구가 씩씩대는 나를 다른 경찰서로 데려갔다. 다행히 두번째로 찾아간 다른 경찰서에서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서를 작성해주었다. 나는 정식 택시가 아닌 우버라는 택시 대용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했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우버에 공식적인 연락을 취하면 택시 기사의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경찰이 말했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짐가방을 곧 찾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우버에 경찰서의 공식 요청을 보냈지만, 다음 날 우버는 택시기사의 정보를 줄 수 없다는 답변만을 보내왔다. 한국 대사관에는 열 두번을 전화했지만 전부 부재중이었다. 다시 절망이었다. 내 짐가방을 정말 영영 찾을 수 없을 게 분명해 보였다. 현실감각이 다시 나를 후려,쳤다.


 '그 책..... 내가 정말 아끼는 책인데! 내 공책은 어떻게 하지, 육개월이 넘도록 쓴 매일의 일기가 그 안에 담겨있는데... 그 옷! 내가 생일 선물로 받은 그 옷! 내가 오랜만에 맘에 들어했던 옷인데... 게다가 컴퓨터는...그 안에 내 작업 파일이 다 들어 있는데... 무엇보다 여권! 내일 모레가 비행인데 여권이 없으면 당장 비행기도 타지 못할텐데... 비행기표가 얼마였더라?'


 잃어버린 것들에 담긴 지난 추억과 그에 대한 미련이 내 머리속을 가득 메웠다. 내가 언제라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은, 사실 내 온 몸에 묻어 있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필요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가치라는 이름으로... 어느새 내 온 몸 곳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나는 내 생각만큼 그렇게 간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욕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오만하게도 간소함이니 뭐니 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아는 척하고 있었으며, 내가 아닌 것들을 나 인척 하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나는 다음 날 다시 경찰서로 돌아갔다. 한 시간, 두 시간째, 경찰관이 부를 때까지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때 경찰서의 낡은 문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한 여인이 아이와 함께 걸어들어왔다. 여인은 울고 있었다. 기껏해야 여섯 살 남짓으로 보이는 조그만 남자 아이도 여인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 울고 있었다. 여인이 지나가던 경찰관 한 명을 잡더니 울면서 무어라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침부터 아무 것도 못먹고 나갔어요.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줘요. 뭐라도 먹일 수 있게 해 주세요."


한참을 하소연 하던 여인을, 다행히 경찰 한 명이 구치소 쪽으로 데려갔다. 삼 분이었을까, 오 분이었을까.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여인이 대기실로 나왔다. 여인은 들어갔을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오열하듯 울고 있었다. 여자가 아이의 손을 붙들고 낡은 문을 열고 나갔다. 낡은 문이 흔들리고 끼익대며 처량한 소리를 내었다.


 내가 무소유이니 간소함이니 뭐니 배부른 철학을 나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듯 읊고 있을 동안, 소유와 무소유의 결정권마저 제 손을 떠난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그 사실이 그때 갑자기 나에게 와서 충돌했다. 

그리고 그 충격에 모든 것들이 순간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제 아무리 뜻이 깊고 큰 철학과 도道라도,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그 안의 사람들을 마주하면 그 앞에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 때가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옳은 것, 자랑스러운 것, 고귀한 것, 심지어 신을 따르는 것, 도를 따르는 것. 그 모든 것들의 의미가 점점 더 허무해지고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래서 나는 점점 조용해지고, 덜 자랑스러워진다. 




사실 이 글은 딱히 주제도 뚜렷하지 않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분명하지 않다. 정말 못 쓰여진 글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정말 내가 뭔가 말하고 싶은데, 뭘 말하고 싶은지 모를 때가 있지 않나?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때가 있지 않나? 무언가를옳다고 주장하고 싶은데, 그 설득력을 상실할 때는? 그건 아마 필연적으로 삶이 그렇게 만들어진 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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