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만나서 다행이네요, 우리

카라멜 남자, 화이트 초콜릿 여자 005

by 권민재

일본 나고야를 여행하며 겪은 인상적인 밤에 대한 이야기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2023)>는 이민자의 생을 다룬 영화이다. '인연因緣'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나로 하여금 내 주변의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곤 했다.



It was so nice to see you!



만남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사실 "만나서 반가웠어요"라는 말은 상대방과 자주 보고 지낼수록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만남의 의미가 희석되기라도 하는 걸까. 그래서인지 내 귀에는 이보다 더 낭만적으로 들리는 한 문장이 있다.



만나서 다행이네요.






하루는 나고야의 작은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렀다. 같은 빌라 1층엔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이 운영하는 아늑한 분위기의 바가 있었다. 언제나 일본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한 편에 있었기에, 어수룩한 일본말솜씨에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맥주(기린) 한 병을 사장님께 부탁했다. 그곳엔 분위기에 잘 어우러진 칵테일을 곁들이던 젊은 남성과 수트가 잘 어울리는 중년 남성이 사장님과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서툰 일본어를 기특하게 본 것인지, 그들은 내게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일본은 처음인지, 나고야에는 무슨 일인지 등... 모든 질문에 귀 기울였고 성실히 답했다. 덕분에 꿈에 그리던 일본어 일상회화의 기회를 가졌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생선구이집을 추천해 줄 수 있는지, 나고야의 어디를 가보면 좋을지... 서툰 일본어에도 잘한다며 칭찬하던 그들의 인상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최대한 알기 쉬운 일본어로 질문에 답해준 그들 덕분에 나고야 여행이 한 층 더 풍성해졌다. 실제로 추천받은 생선구이 가게를 여자친구와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이만 밤이 깊었기에,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사장님께 계산서와 함께 낭만적인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만나서 다행이에요.



사장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 말, 좋은 말이에요.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고등학생 시절 은사님께서는 공부에 자신감을 가지도록 언제나 북돋아주셨다. 기계공학에 진심인 멋진 동료들과 교수님들은 언제나 나를 성장시킨다. 여행하면서 만난 수많은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그러면서 쌓은 추억들은 나의 개성을 대변한다.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인 모두가 바로 만나서 다행인 사람들이다.



여자친구도 그렇다. 얼마 안 되는 희박한 확률로 시작된 인연이 이어져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고 두 번의 배낭여행까지 하게 된 우리다. 비록 비행시간 편도 14시간의 장거리 연애이지만, 우리 사이의 진심 어린 애정과 애틋함은 그 농도가 짙다. 만나서 다행인 우리 인연이 써 내려가는 이야기의 결말은 어떤 영화와 닮아 있을까. 우리의 이야기가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2023)> 같든,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 같든, 혹은 다른 어떤 소설 속 이야기 같든, 그것을 처음 펼친 순간의 감정을 꼭 간직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아련할 것이다. 그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싶을 때마다 오늘 쓰인 이 문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카라멜 남자, 화이트 초콜릿 여자 005 - 마침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브런치스토리 작가 권민재에게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낭만이 영어로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