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멜 남자, 화이트 초콜릿 여자 008
때는 어느 평화로운 주말 오전 10시, 고소한 스콘 향이 인상적인 커피숍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논문을 마저 읽고 있었다. 말차 라떼의 쓴 맛과 크림의 단 맛이 어우러진 풍미는 내 기분을 한껏 끌어올렸다.
논문 한 페이지를 다 읽으니 맞은편에 영어를 쓰는 손님 두 명이 앉더라. 별 신경 쓰지 않다가,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과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게 아닌가? 분명 셋 다 백인이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인사는 한국어라니... 신기하고도 흥미로운 인사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니, 한국과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즐긴 여행담을 나누고 있었다. 문득 그들과 대화하고 싶어졌다. 워낙에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지만, 배낭여행 다닐 때나 스몰톡을 서슴없이 했던 거지, 한국에서 스몰톡을 청한 적은 잘 없다. 한국어를 쓰고 한국인의 외양을 가진 나는 스몰톡이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인슈타인이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명구가 머릿속을 스쳤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정신병이다
그랬다. 나는 여태 생각만 하고 스몰톡을 실천하지 않은 경우가 두 손으로 다 세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이번에는 이 이른바 정신병을 극복하고 싶었다. 나에겐 큰 도전인 것이다.
'뭐라고 말을 걸지?' 명분이 필요했다. 마침 요즘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올리던 때였기에, 한국 문화와 관련된 짧은 질문을 준비했다. 그리곤 곧장 다가갔다.
-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영어로) 한국말하세요?
- (영어로) 아니요, 배우는 중이에요.
실제로 그들의 앞에는 한국어 교재가 펼쳐져 있었다! 그들의 특이한 인사법은 한국어 공부 모임의 규칙이었던 것.
영어로 스몰톡을 하려니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어색하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는데요, 5~10분 정도 시간을 내줄 수 있나요?
- 네 그럼요!
고맙게도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고, 이어서 한국에 무엇을 계기로 왔는지, 한국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둘은 런던에서, 나머지 한 명은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온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다. 모두 일 때문에 왔지만 문화까지 좋아하게 된 경우였다.
더 알고 싶은 게 많았지만, 친구와의 점심 약속 시간이 다가왔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안스타그램 계정을 교환했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더 자세히 풀어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 도전은 내가 그동안 크게 성장했음을 반증하는 일이었다. 영어로 말 꺼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6년 전의 나,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을 오지랖이라 여겼던 3년 전의 나,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한없이 비관적이었던 어제까지의 나까지.
말 거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박수가 폭발하는 나다. 이런 내 심장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걱정의 심박동이 아니라 아드레날린의 분비임을, 따라서 내가 가장 즐기는 일이 무엇인지를 드디어 깨달았기 때문이다.
카라멜 남자, 화이트 초콜릿 여자 008 - 마침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원저작물의 저작권은 브런치 스토리 작가 권민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