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5호 기고
아이돌 문화는 늘 10대의 전유물이었다. H.O.T.를 시작으로 한 대다수의 그룹이 10대를 대변하고자 했고, 젊은 감각과 감성을 겨냥해 트렌디한 음악, 콘셉트를 선보였다. 불특정 다수의 전 연령층을 상대하는 것보다 감수성 예민한 10대를 집중 공략해 탄탄한 팬덤을 만드는 것이 쉽고 빠르게 승기를 잡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음악 감상의 세대 분리가 일어난 시점도 이쯤이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돌의 활동 거점은 여전히 틴에이저다.
1999년 데뷔한 지오디(god)는 이러한 불문율을 깬 첫 사례였다. 다른 보이그룹과 비교하면 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달랐다. 그룹의 타깃은 10대에 그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할 타깃이 없어 보였다. 박진영이 프로듀싱한 지오디의 음악과 행보는 전 국민을 향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들의 음악에 울고 웃었다. 지오디에 ‘국민 그룹’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가요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의 위상이 공인된 그룹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지오디는 아이돌의 기존 성공 공식을 거의 따르지 않았다. 우선 멤버 구성부터 남달랐다. 많은 그룹이 최대 20대 중반을 넘기지 않는 멤버들로 팀을 꾸릴 때, 지오디는 1969년생 박준형이 중심을 잡았다. 데뷔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윤계상, 데니 안, 손호영, 김태우 역시 전형적인 꽃미남 아이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룹은 자연스럽게 신비주의 아닌 친근한 매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데뷔 앨범 [Chapter 1](1999)의 인트로를 들어보자. 녹음 중인 박준형에게 막내 김태우가 배고프다고 칭얼대자 맏형은 “거기 밥이랑 참치 꺼내먹어”라 한다. 첫 앨범 첫 곡에서 이런 인간미를 보여준 팀은 지오디가 유일하다.
이들의 가장 큰 개성은 음악 자체였다. 당대의 아이돌 음악과 비교하면 지오디의 음악은 느긋하고 소탈했다. 스타로서 멋을 뽐내기보단 대중의 일상과 밀접한 노래를 불렀고, 복잡하고 화려한 댄스 대신 눈에 쉽게 들어오는 안무를 췄다. 랩을 하더라도 또박또박 분명하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이었다. 지오디의 노랫말에는 언제나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겼다. 노래 한 곡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로맨스, 가족, 청춘 등 장르도 다양했다.
1집 [Chapter 1]은 지오디의 문법을 완성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로 시작하는 데뷔곡 ‘어머님께’는 충격이었다. 훗날 표절로 밝혀져 또 다른 의미의 충격을 선사했지만, 당시엔 이 노래로 온 국민을 울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1995)에 이어 거리의 가출 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짜장면을 영원한 ‘효도 푸드’로 만들었다. 매일 아침 버스에서 만나는 상대에게 사랑에 빠진 스토리를 그린 댄스곡 ‘관찰’은 이들도 나름 댄스가 가능하단 걸 보여줬다. 발라드와 댄스를 쌍으로 묶어서 나오는 활동 패턴은 이때 확립됐다.
현재 ‘어머님께’가 지닌 상징성과는 달리, 지오디의 데뷔 임팩트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특히 앞선 H.O.T.와 젝스키스의 신드롬에 비교하면 미지근한 수준이었다. 청신호가 켜진 건 1집을 낸 그해 말에 발표한 2집 [Chapter 2](1999)부터였다. 음악 방송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비롯해 댄스곡 ‘애수’와 ‘Friday Night’가 팀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여기에 MBC의 예능 프로그램 [god의 육아일기](2000)가 방영을 시작하며 초유의 쌍끌이 흥행이 이루어졌다. 그룹은 자신들이 데뷔했던 1999년 1월에 태어난 한재민 군을 돌보며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고, 대중은 다섯 멤버의 개성과 매력을 파악했다. 노래와 가수는 그렇게 동시에 떠올랐다.
이 무렵 지오디의 기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프로그램의 고공행진 가운데 나온 3집 [Chapter 3](2000)가 결정타였다. 스토리텔링 작법의 재미를 최대한 살린 ‘거짓말’은 노래만으로 하나의 열풍을 몰고 왔다. 가사 중 “잘 가(가지 마)/행복해(떠나지 마)”는 이 자체로 하나의 유행어가 됐다. SBS 드라마 [해피투게더](1999) 이후 신세대 청춘스타로 떠오르던 배우 전지현의 노래 중간 내레이션 “싫어! 싫어!”도 큰 화제를 모았다. 곧이어 익살스러운 랩이 인상적이었던 ‘니가 필요해’, 듣는 이를 격려하는 ‘촛불 하나’까지 연달아 성공을 거두며 완벽한 지오디 시대가 열렸다. 심지어 ‘팬 송’이었던 ‘하늘색 풍선’마저 대중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앨범은 이듬해까지 무려 185만 장이 넘게 팔렸다.
“형, 이게 언제까지 갈까?”
“글쎄,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히 언젠간 끝날 거야.”
“그러겠지?”
“그럼, 그 다음엔 우린 뭘까?”
‘Intro’ 中, [Chapter 4](2001)
‘거짓말’로 지오디는 데뷔 후 첫 가요대상(KBS, 2000)을 받았고, 2001년 상반기에는 대규모 전국 투어를 열었다. 그룹은 위기와는 통 거리가 멀어 보였다. 2001년 9월, 열애설에 휩싸인 맏형 박준형이 연애를 인정하자 소속사는 일방적으로 그의 팀 방출을 결정했다. 팬클럽과 멤버들은 즉각 반발했다. 네 멤버는 박준형 없이는 지오디도 없다는 뜻을 단호히 밝혔고, 팬들은 단체 행동 움직임을 보이며 나머지 멤버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결국 회사는 열흘 만에 뜻을 굽히고 박준형을 받아들였다. 열애설에 민감한 아이돌 시장에서 이 정도로 완만하게 일단락된 스캔들은 찾기 힘들다. 팀으로선 아찔했을지언정, 결과적으로는 지오디의 대중 호감도를 높인 해프닝이었다.
시련 아닌 시련을 겪고 나온 4집 [Chapter 4]는 그래서 더욱 진솔하게 들렸다. 얼핏 팀의 고뇌를 담은 듯했던 타이틀곡 ‘길’은 곧 청춘의 송가가 됐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하고 되뇌는 노랫말은 중,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사회에 막 나온 이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청년의 공감을 끌어냈다. 그런가 하면 이전까지 나온 댄스곡 중 가장 강렬했던 ‘니가 있어야 할 곳’, 그룹 특유의 이야기 전달식 가사가 돋보였던 ‘다시’도 인기를 거듭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2001년 방송 3사 ‘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의 대상까지, 그해 거의 모든 시상식의 대상은 지오디의 차지였다.
성공적으로 4집 활동을 마친 그룹은 한 단계 성장을 도모했다. 아이돌 그룹의 전형적인 활동 패턴을 벗어나, ‘공연형 가수’로 도약을 계획한 것이다. 이들은 우선 텔레비전과 거리를 뒀다. TV의 강력한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퍽 과감한 결정이었다. 공연은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라는 제목이 붙었고, 2,300석 규모의 정동 팝콘하우스에서 100회 규모로 기획됐다. 전례가 없는 장기 공연이었다. 게다가 매번 공연의 주제가 바뀌었다. 2002년 7월에서 9월까지 45회, 2002년 12월에서 2003년 3월까지 55회를 진행하는 동안 같은 테마는 거의 없었다. 그 사이 5집 [Chapter 5 Letter](2002)를 냈으나, 방송 활동은 전무했다. 따라서 음반의 흥행은 비교적 주춤했지만, 100회 공연은 전회 매진을 달성하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공연 감각을 익히고 라이브를 단련하며 롱런의 기틀을 마련한 이 기간을 멤버들은 활동 중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한다.
다섯 명의 지오디는 5집에서 중단됐다. 멤버들과의 오해로 윤계상이 팀을 나갔고, 그룹은 고향 싸이더스 HQ를 떠나 박진영의 JYP엔터테인먼트에 자리를 잡았다. 안팎으로 변한 환경에서 네 멤버가 만든 6집 [보통날](2004)은 음악적으로 이전과 달랐다. ‘사랑이 전부였던 날’로 시작해 ‘사랑이 너무 아프던 날’로 끝나는 앨범은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을 테마로 한 콘셉트 음반이었다. 지오디 스타일의 업 템포 ‘반대가 끌리는 이유’, 발라드 타이틀곡 ‘보통날’ 등 기존 기조를 잇는 곡과 각 멤버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솔로곡이 함께 실려 듣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그룹의 1막은 2005년에 닫혔다. 네 명의 지오디는 7집 [2♡](2005)를 끝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데뷔 6년 만의 멈춤이었다. 두 사람을 동시에 좋아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 앨범에선 동명의 타이틀곡 ‘2♡’가 그룹의 시그니처와 같은 발라드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만화가 강풀은 이를 모티프로 한 만화를 그려 앨범에 싣기도 했다. 수록곡 ‘하늘속으로’는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고마웠어요 내 곁을 지켜줘서/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그토록 오랜 시간”하며 연인의 이별 순간을 그린 노랫말은 사실 오랜 팬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이기도 했다.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해산하고 동방신기, SS501 등을 필두로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던 즈음에 이루어진 지오디의 활동 중단은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샀다.
팀이 다시 모이기까진 7년이 걸렸다. 정작 활동을 한 6년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린 것이다. 2012년 지오디 멤버들은 윤계상이 진행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시청자가 보는 앞에서 그간의 오해를 풀고 해묵은 갈등을 해소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자 요원해 보였던 재결합도 금세 성사됐다. 8집 [Chapter 8](2014)은 앨범으로는 7년, 윤계상을 포함한 완전체로서는 장장 12년 만에 나온 앨범이었다. 기존 지오디 색깔을 오롯이 담은 발라드 ‘미운 오리 새끼’가 싱글로 먼저 발매돼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아이유가 함께한 ‘노래 불러 줘요’ 등이 관심을 끌었다. KBS의 음악 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그룹의 복귀에 맞춰 프로그램 최초로 단독 게스트 특집을 확대 편성했고,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오디이기에 가능한 극적 컴백이자 그룹 2막의 시작이었다.
앨범을 내고 9년 만에 전국 투어까지 개최하며 완벽하게 돌아온 이들은 2019년 무사히 20주년을 맞이했다. 전성기를 함께한 많은 그룹이 해체, 혹은 활동을 중단한 것과 비교하면 더없이 뜻깊은 롱런이다. ‘그 남자를 떠나’, ‘눈이 내린다’ 등의 신곡과 ‘길’, ‘니가 있어야 할 곳’ 등 기존 히트곡을 재해석해 고루 수록한 20주년 앨범 [THEN & NOW](2019)에는 평생의 파트너 박진영부터 아이유, 헨리, 정동환(멜로망스) 등이 참여해 20년을 기념했다. 수많은 ‘왕년의 가수’들이 방송에서 과거 영광만 돌아볼 때, 지오디는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와 신보를 내고 현역 대열에 섰다. 이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지오디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 다른 그룹의 팬들은 왜 우리는 ‘인기 가수’고 지오디만 ‘국민 그룹’이냐는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답은 간단하다. 지오디보다 히트곡이 많은 아이돌은 없다. 비교 대상을 가수 전체로 넓혀도 이들의 골든 레퍼토리는 남부럽지 않다. 그룹은 시대 불문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과 쉽고 친숙한 멜로디로 세대를 아우르는 애청곡들을 남겼다. 다른 아이돌이 항상 멀게만 느껴졌다면, 지오디는 늘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정서를 어루만지며 휴머니즘을 노래했다. 20년이 지나도록 타이틀을 유지한 비결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국민 그룹’은 지오디의 독점 수식어가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