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5호 기고
발라드가 유독 강세였던 작년과 달리, 올여름은 케이팝 아티스트의 선전이 돋보였다. 특히 여성 솔로 가수들의 활약이 컸다. 선미(‘보라빛 밤’)와 화사(‘마리아’), 청하(‘PLAY’)를 시작으로 유키카(‘서울여자’), 전소미(‘What You Waiting For’), 이하이(‘홀로’), 제시(‘눈누난나’) 등이 각기 다른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이번 여름 두드러진 여성 솔로 뮤지션들의 활동을 돌아보기 위해 대중음악 평론가 김도헌, 정민재, 황선업이 한자리에 모여 대담을 나눴다.
정민재(이하 ‘정’) : 솔직히 나는 특별히 정말 좋다, 하는 건 없었다. 선미와 화사 정도가 좋았고 유키카의 ‘서울여자’는 재밌었고 나머지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황선업(이하 ‘황’) : 확실히 화사가 음악이나 프로듀싱 측면에서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걸 잘 보여줬다. 마마무가 솔로 활동을 전부 하긴 하는데 화사는 좀 다르구나, 개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음악으로 녹여내는 역량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마리아’라는 노래 자체가 여태 본인이 해 온 서사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것 아닌가. 음악을 넘어서는 뭔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좋았다.
김도헌(이하 ‘김’) : 화사의 앨범은 독창적이면서 서사도 재밌고 괜찮았다. 다만 마마무의 지난 노래 ‘Hip’부터 그랬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수록곡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레퍼런스가 좀 심하게 느껴졌다. 그 점이 좀 아쉽다. 화사가 세계적인 유행이나 콘셉트를 잘 소화한 건 맞는데 좀 더 독창적으로 나아갈 필요는 있겠다.
정 : 화사는 ‘멍청이’(2019)부터 참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활동을 보며 확실히 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다만 얘기한 것처럼 레퍼런스만 좀 해소가 되면 좋겠다. 충분히 개성 있는 가수니까. 유키카는 어떻게 들었나.
황 : 우선 신인이 요즘 같은 상황에 정규를 냈다는 게 특이했다. 콘셉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것 같다. 유키카도 서사가 있지 않나. 이걸/ 프로듀서가 잘 캐치해서 시티 팝을 중심으로 퀄리티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긍정적이었다. 시티 팝 리바이벌에 편승하는 감은 있었지만.
김 :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든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적으로 좀 더 알려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너무 마니아적으로 기획이 되어 있다 보니 보편적으로 가기는 어려웠다는 느낌이다. 시티 팝이 한국에서 마니아 층을 나름 확보했는데 김현철 같은 뮤지션과 함께 하는 식이었다면 대중의 눈에도 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 : 미디어 노출 자체가 적었던 것 같다. 예능을 나간다거나, 마케팅이 좀 더 이루어졌으면 대중 반응은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노래도 워낙 귀에 잘 들어오고. 나는 올 여름엔 선미의 노래가 정말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나왔던 ‘날라리’(2019), ‘누아르’(2019)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보라빛 밤’은 큰 틀에서는 이전 곡들과 비슷하지만 더 밝은 느낌이 있지 않나. 이미지 측면에서 특히 어울렸다. 적재의 펑키한 기타 연주도 무척 좋았다. 거기에 확 꽂혔다.
황 : 선미의 노래도 나쁘지 않았는데 화사나 유키카에 비하면 같은 작법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었다. 대신 그게 자기 색깔을 구축해나가는 거라고 한다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김 : ‘보라빛 밤’은 ‘사이렌’(2018)과 비슷했다. ‘사이렌’을 좋게 들었기 때문에 ‘보라빛 밤’도 좋았지만, 레트로 풍 디스코 펑크는 여기까지만 하면 어떨까 싶다. 잘 만들고는 있는데 ‘보름달’(2014), ‘가시나’(2017) 같은 트랙도 듣고 싶다.
황 : 본인이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봐도 이쪽에 꽂혀있고 계속 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낸 싱글을 다 모아서 한 앨범에 싣는다고 생각하면 이건 분명히 질리는 감이 있다. 싱글 위주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데 EP가 하나쯤 나와서 베리에이션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면 좋겠다. 그 외에는 미스피츠(msftz)를 잘 들었다. 심은지 작곡가가 만든 ‘내게도 색이 칠해진다면 좋겠어’에서 처음으로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 독특한 느낌이었다. 주류와 떨어진 인디 감성이면서도 나름의 대중성도 있고, 색깔도 분명했다. 앞으로 주목할 만하겠다.
정 : 난 이외에는 흡족한 곡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청하의 활동이 아쉬웠다.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 싱글만 2곡이 나왔는데, 이를 포함해 올해 현재까지만 해도 노래가 7곡이나 나왔다. 노출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가창이나 표현 측면에서 다채로운 것도 아니다. 춤 잘 추고 무대를 잘 하는 건 맞지만 항상 하이톤의 가창이 중심이니 좀 진부하다는 인상이다. 이런 점에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막상 앨범이 나왔을 때 과연 신선하게 들을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
황 : 트로피컬 하우스만 너무 반복하는 느낌인데, 비슷비슷해서 재미가 덜하다. 어느 순간부터 기대감이 떨어졌다.
김 : 이미지 소비가 심하다. 그래도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이니 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저드(jerd)의 ‘문제아’가 이번 여름에 나온 곡 중 가장 좋았다. AOMG의 이하이, 하이라이트의 저드를 보면 힙합 레이블에 소속된 솔로 아티스트들이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비(BIBI)도 화제이지 않나. 힙합 레이블에 소속된 여성 아티스트는 워낙 피처링으로 소비가 많이 되다 보니 막상 풀렝스 앨범을 냈을 때 약한 경우가 있는데, 이하이, 저드, 비비 같은 아티스트들은 그렇게만 활용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황 : 요즘 제시가 뜨던데 예능에서의 기세와 비교하면 음악 자체는 약했다. 가수로서의 역량이 없는 건 아닌데 캐릭터로 소비되는 느낌이다. 차라리 앨범에 있는 ‘STAR’ 같은 노래가 훨씬 진정성 있고 좋았다. 이번 노래는 1회성 히트의 느낌이 강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정 : 제시는 캐릭터가 강한 것에 비하면 음악적인 실속은 떨어진다고 봤다. 사람은 확실히 강하고 표현력도 좋은데 음악이나 가사 측면에서는 인상적이지 않았다. ‘눈누난나’는 좀 옛날 노래 같더라. 다만 히트에는 챌린지가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많이 따라하진 않지만, 화제성만큼은 지코 이후 가장 잘 된 챌린지 같다. AOMG로 이적한 이하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황 :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이 네오소울이었고 잘 어울리기도 하니까. 이를 극대화시켜서 장르적으로 깊게 나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확실히 AOMG가 나을 것 같다. 주변에 아티스트도 많고 회사 내에 같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뮤지션도 많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하이에게 상당히 플러스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YG에 있을 때는 협업도 워낙 없지 않았나.
김 : 이하이는 ‘한숨’이라는 메가 히트곡이 있다는 게 강점이다. 히트곡이 있는 상태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2014) 같은 곡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이하이는 좀 더 유리한 상황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상태다.
정 : 내가 ‘홀로’에 고평가를 했던 이유는 YG에 있을 때 하던 YG 식의 창법을 많이 제거하고 본인 방식대로 담백하게 잘 불렀기 때문이다. 이걸 볼 때 AOMG에서 이 사람의 색을 더 잘 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무엇보다 YG에 있을 때보단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김 : 그런 점에서 전소미의 YG행은 염려스러웠다.
황 : 맞다. 전소미도 이제 2곡 냈는데 1년 간격으로 나왔다. 1년에 한 곡씩 낸다고 하면 5년을 해야 5곡 아닌가. 물론 그렇게까지 하진 않겠지만. 노래를 보면, 지난 ‘Birthday’(2019)는 괜찮았는데 이번 ‘What You Waiting For’는 너무 뻔한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전소미가 그룹을 하지 않고 솔로로 데뷔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존재감이 있으니까. 블랙 레이블에 들어간 게 득이냐 실이냐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진 실 같다.
김 : 음악적으로는 실이라고 본다. 그래도 이미지 메이킹이나 소셜 미디어 상의 유행으로는 블랙핑크의 후광이 있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거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명품 브랜드의 엠버서더도 할 수 있겠고. 그러나 음악적으로 뭔가 보여주고 싶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
정 : 아직까진 전소미가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음악적으로는 전형적인 테디 식의 노래였고, 그렇다고 노래나 춤이 특별한 수준도 아니다. 이번 곡도 나이가 어린 탓인지 표현이 충분히 안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인상적인 활동은 없었다. 마마무 멤버들의 솔로 활동은 어떻게 봤나. 일단 다들 화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황 : 화사를 제외하면 전부 마마무의 연장선 같다. 마마무에서도 할 수 있는 걸 왜 솔로로도 하고 있을까 싶다. 휘인도 평범한 발라드였고. 나름대로 신경은 더 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들 자기만의 음악이 나오진 않았다. 그런 점에서 화사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공동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음악적 완성도와 대중적 어필을 모두 잘 해냈다.
김 : 동의한다. 솔로 활동에서 각자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은 다 보여줬다고 보는데, 결과물은 심심했다. 마마무의 멤버가 낸 솔로곡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솔로 가수라고 본다면 굳이 이 음악을 듣게 하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화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룹 내에서도 워낙 튀었는데, 캐릭터에 매몰되지 않고 음악으로 자기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정 : 나 또한 문별과 솔라의 곡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나는 휘인의 잠재력은 높이 본다. 휘인의 가창은 전통적인 가요 창법이면서 약간의 알앤비 창법이 있는데, 목소리가 정말 특별하다. 발성과 같은 기본기도 좋다. 그래서 좋은 노래를 만난다면 발라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가수로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워낙 발라드가 잘 되지 않나. 화사는 팝 가수로서 잘 만들어가고 있어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문별과 솔라가 약간 애매하게 느껴질 뿐이다.
* 세 평론가가 각자 뽑은 올 여름 가장 돋보인 여성 솔로 아티스트
김도헌 : 저드(jerd)
정민재 : 화사
황선업 : 유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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