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명곡 100 #62] 가수 비의 진정한 시작점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비에게 각별한 노래다. 그는 스스로 가장 아끼는 곡이라 밝힌 바 있는 이 노래로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스물한 살에 낸 데뷔 앨범에서 ‘나쁜 남자’와 ‘안녕이란 말 대신’의 상반된 테마, 콘셉트를 천연하게 체화하며 잠재력을 드러냈던 그에게 이듬해 개성 강한 캐릭터를 부여한 곡이기도 하다. 예능 프로그램과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멀티 엔터테이너로 먼저 성장한 비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통해 비로소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
흔히 가수 ‘비’하면 떠올리는 많은 것들이 이 곡에서 완성됐다. 그는 ‘안녕이란 말 대신’의 천진난만한 소년 이미지 대신 한층 성숙한 성인 남성의 매력으로 무대를 채웠다. 호흡을 많이 섞는 특유의 거친 창법, 힘과 유연성, 절제미를 두루 갖춘 댄스 퍼포먼스, 근육질 몸매를 은근히 노출하는 스타일링이 ‘태양을 피하는 방법’부터 나왔다. 그의 시그니처가 된 보잉 선글라스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곡을 소화하는 비의 풍부한 감정 연기였다. 잊고 싶은 옛 연인을 아무리 달려도 피할 수 없는 태양에 비유해 괴로운 마음을 그린 그의 표현력은 마치 뮤지컬 배우의 연기를 보는 듯 생생했다.
오직 그만이 부를 수 있는 맞춤형 노래였다. 제작자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위해 스팅(Sting)의 ‘Shape of My Heart’(1993)를 인용해 서정적인 무드를 연출했고, 아티스트는 이를 능숙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통해 차세대의 유망주에서 동시대의 독보적인 인물로 올라섰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선 그의 모습을 쉴 새 없이 패러디하며 인기를 전파했고, 가사의 여러 구절이 유행어처럼 회자됐다. 심지어 그가 잠시 미국에 갔던 2010년, 토크쇼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마저 ‘Rainism’(2008)도, ‘It’s Raining’(2004)도 아닌 이 노래를 따라 했다. 남성 솔로 댄스 가수의 계보에서 이만한 인상을 남긴 곡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from 정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