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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an 13. 2022

끈기의 위대함

220112 국방일보 조명탄 기고

얼마 전 가수 김완선이 신곡을 냈다. 제목은 ‘Feeling’. 영국 가수 두아 리파(Dua Lipa)의 최근 곡들이 떠오르는 감각적인 댄스곡이다. 그는 올해로 37년 차 댄스 가수다. 10대에 활동을 시작한 이래 무대에서 20대, 30대, 40대를 보냈고, 50대가 된 지금도 변함없이 춤을 추고 있다. 1986년 같은 해에 데뷔한 가수 중 유일한 현역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롱런이 쉽지 않은 댄스 가수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김완선 신곡 'Falling' 커버 아트


이토록 오랫동안 무대에 오르고 있건만. 많은 대중의 기억 속 김완선은 야속하게도 1990년대 초반에 멈춰있다. 물론 이는 그가 그만큼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완선은 가요 역사에서 춤을 본격적으로 춘 첫 번째 가수였고, 시장의 흐름을 댄스로 돌린 주역이었다. ‘오늘밤’, ‘나홀로 뜰 앞에서’, ‘리듬 속의 그 춤을’,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 ‘이젠 잊기로 해요’, ‘가장 무도회’,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수많은 히트곡이 그의 위상을 웅변한다.


‘원조 댄싱퀸’, ‘전설의 디바’. 방송에서 주로 다루고 대부분이 기억하는 김완선의 모습은 그 무렵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이 시절을 뒤로한 지 오래다. 심지어 그는 그때의 자신을 잊어도 좋다고도 했다. 다만 자신이 지금도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김완선은 그저 그 시절 추억의 가수가 아니라, 현재를 고민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 진행형 가수라는 것이다.


김완선의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면 그 심경이 십분 이해된다. 그는 2011년부터 거의 매년 신곡을 발표했다. 다양한 뮤지션과 호흡을 맞췄고, 여러 장르를 아울렀다. 그중엔 ‘Super Love’, ‘Set Me On Fire’, ‘Oz On The Moon’, ‘Yellow’, ‘Here I Am’ 등 매력적인 노래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중에게 포착된 곡은 하나도 없다. 김완선의 후예들이 세계를 누비며 곳곳에서 케이팝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가 마주한 현실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완선 'Yellow'(2020)


그라고 왜 섭섭하지 않았겠는가. 주변의 또래 가수들은 왜 아무도 모르는 걸 계속하느냐고 묻기도 했단다. 이에 김완선은 자신은 과거에 안주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쉼 없이 자신의 색깔이 담긴 신곡을 내는 가수이고 싶다고 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남들이 보든 안 보든’, ‘쉼 없이’. 달리 표현하면 ‘눈앞의 성과와 관계없이’, ‘꾸준히’ 한다는 얘기다. 별거 아닌 말 같아도 실행에 옮기기엔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다.


흔히 잘하는 사람이 아닌,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들 한다. 김완선은 잘하면서 버티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유행에 민감한 댄스 음악계에서 이미 30년을 넘게 버티지 않았나. 여전히 트렌디한 신곡을 내고 젊은 가수들과 함께 음악 방송에 출연해 엔딩 무대를 장식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긴 것과 다름없다. 어쭙잖은 정신 승리가 아니다. 찬란히 빛나는 그의 오늘은 꾸준히 달려온 집념의 결과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금세 단념하기 쉽다. 2022년에는 달라져야겠다. 대단한 야심 따위는 일찌감치 내려놓자.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꾸준하게 이뤄보자. 당장 눈앞에 이렇다 할 변화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만으로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꿈꾸던 모습이 성큼 다가와 있을지 모른다. 베테랑 가수 김완선에게서 끈기의 위대함을 배운다.



김완선 'Falling'(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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