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25 국방일보 조명탄 기고
언젠가 “이제 실력보다 인성의 시대”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올바른 성품을 갖추지 못하면 오늘날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조언이었다. 문득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지 않나.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자신의 천한 인성에, 그릇된 과거 행실에 발목 잡혀 현재의 많은 걸 잃어버리는 이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여느 때보다 인성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실력이 인성보다 중요시되던 시대도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를 떠올려 보라. 영화 속 한 패션지의 전설적인 편집장으로 그려지는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유능하지만, 안하무인 한 인물이다. 그는 새로 들어온 비서 ‘앤디’(앤 해서웨이)에게 막대한 업무를 부과하는 거로도 모자라, 사적인 잡일까지 수시로 떠넘긴다. 가시 돋친 독설은 기본이다. 그래도 미란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변덕과 고약한 성격까지도 시크하게 비춰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셔너블한 그가 패션 세계에서 절대 권위를 지닌 왕처럼 군림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술가 중에서도 성질 사나운 이들이 적지 않다. 팝 가수 마돈나의 20여 년 전 방송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는 인터뷰 도중 대뜸 현장이 너무 더워 죽을 지경이라며 불편을 호소했다. 그리고선 현장에 있던 스태프에게 당장 선풍기라도 가져오든 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든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윽박질렀다. 그것도 생생히 켜져 있는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진행자가 난처해하며 자신의 질문지로 부채질이라도 하겠냐고 묻자 마돈나는 이를 말없이 낚아챘다.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를 본 대중의 반응은 어땠을까. 마돈나가 무례하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은 그의 태도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일각에선 오히려 마돈나의 솔직하고 화끈한 모습을 봤다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감히 팝의 전설을 인터뷰하면서 미흡한 준비로 불편을 초래했으니, 공개적으로 무안을 당하는 일쯤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이유를 막론하고,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오늘날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그 누구든 여론의 질타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사과 성명을 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최근 우리 방송가에선 일반인 출연자를 주의하란 말이 나온다. 이른바 뉴미디어의 시대에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활약하는 일반인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방송 후 출연자의 과거 행적이 공분을 일으키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예 녹화 전 자신이 과거에 문제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맹세하는 출연 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반인 스타가 뜨고 졌던가. 덩달아 곤경을 겪은 방송국, 제작진도 한둘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도, 대단한 전설이라고 해도 충분한 인격을 갖추지 않고선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악마의 재능’도 옛말이다. 재능이 어떻든 이제 악마는 그냥 악마다. 나이가 어릴수록 특히 명심할 필요가 있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는 나이에 저지른 잘못이 자신의 미래를 영영 추락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인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은 간단하다.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며, 어려운 이를 돕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된다. 어느 시대에서건 그저 바르게 사는 사람은 문제 될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