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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an 15. 2022

음반 호황의 불편한 진실

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7호 기고

* 2021년 12월 빌보드 코리아 매거진 7호에 실린 글입니다.


올해 우리 음악계는 사상 최대의 음반 호황을 누렸다. 2021년 한 해 동안 집계된 음반 판매량만 무려 5,000만 장이 넘는다. 2015년 연간 음반 판매량이 800만 장 남짓인 것을 생각하면 6배 이상 불어난 규모다. 한국의 피지컬 음반 시장은 지난 2016년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CD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전 세계 추세와는 정반대다. 급기야 작년에는 한국의 CD 판매량이 미국을 추월했다. 2020년 미국에서 팔린 CD는 약 3,160만 장.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는 약 4,170만 장의 앨범이 팔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가요사의 마지막 밀리언셀러는 김건모와 god였다. 2001년 ‘미안해요’가 실린 김건모 7집, ‘길’을 앞세운 god의 4집이 100만 장 넘게 팔리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같은 해 나왔던 컴필레이션 앨범 <연가>도 밀리언셀러였다. 배우 이미연이 커버를 장식한 디스크 4장짜리 편집 앨범의 판매량은 150만 장이 넘었다. 당시를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김건모의 ‘미안해요’, god의 ‘길’, 이미연의 <연가>가 누린 인기를 생생히 기억할 테다.


단일 앨범 100만 판매의 역사는 2017년 방탄소년단에 의해 재개됐다. 16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밀리언셀러 계보는 지금까지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여러 팀이 100만 고지를 밟았다. 방탄소년단의 ‘Butter’, NCT Dream의 ‘맛’, NCT 127의 ‘Sticker’, 세븐틴의 ‘Ready To Love’와 ‘Rock With You’, 엑소의 ‘Don’t fight the feeling’, 스트레이 키즈의 ‘소리꾼’, 엔하이픈의 ‘Tamed-Dashed’, 백현의 ‘Bambi’가 실린 앨범들이 각각 100만 장 이상 팔렸다. 특히 방탄소년단, NCT Dream, NCT 127은 200만 장을 넘겼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렇다면 이중 올해 대중에게 김건모의 ‘미안해요’, god의 ‘길’에 비견할 만한 인상을 남긴 곡은 몇 곡인가.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이렇듯 지금의 음반 판매량은 작품의 실질적, 대중적 인기와 반드시 연결되진 않는다. 음반 판매량이 인기의 척도였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시장의 소비 방식도, 음반의 성격도 완전히 달라진 탓이다. 최근 10여 년 간 케이팝 음반은 단순히 음악을 담는 물리 매체를 넘어 팬을 위한 기념품과 같은 형태로 진화해왔다. 이제는 화보집에 가까운 부클릿부터 엽서, 스티커, 책갈피, 포토 카드 등 다채로운 내용물과 가지각색의 호화 패키지가 케이팝 음반의 기본 포맷이다. 각 기획사들은 패키지 디자인과 구성 품목을 두고 경쟁하듯 창의력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음반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결정적인 건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기획사들의 행태다. 소비자는 앨범을 한 장 산다고 해서 원하는 내용물을 다 가질 수 없다. 포토 카드 등 일부 구성품이 멤버별, 무작위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멤버의 모든 구성품을 갖고 싶다면 같은 앨범을 적어도 수십 장쯤 사야 겨우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다. 그나마도 이러한 앨범이 한 종류만 나오면 다행이다. 보통은 같은 앨범, 그러니까 같은 음악을 담고 있는 앨범이 패키지와 구성품을 달리해 최소 2종 이상 출시된다. 당연히 전체적인 테마와 콘셉트도 다르다. 콘텐츠 하나하나가 각별한 팬의 입장에선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여기에 구매한 앨범 한 장당 한 번씩 응모할 수 있는 팬 사인회 일정이 여러 차례 예정되어 있다면? 이쯤 되면 다수의 중복 구매는 필연적이다.


앨범 판매량을 두고 벌이는 팬덤 간 자존심 싸움도 규모 성장에 기여했다. 흔히 앨범 발매 첫 주에 판매된 총 수량을 가리키는 ‘초동(初動)’이라는 용어는 사실 우리 식 표현이 아니다. 이는 원래 일본에서 통용되던 말이다. 2010년대 이전만 해도 국내에 이런 개념은 없었다. 판매량 50만 장을 돌파한 동방신기의 2008년 4집 <MIROTIC>은 발매 첫 주에 약 11만 장이 팔렸다. 첫 주에 11만 장이 나간 것도 이례적인 수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터넷상에서 초동을 논하는 이들이 생기더니, 기획사에선 발매 첫 주에 팬 사인회를 배치하는 전략으로 초동 기록을 신경 썼고, 자연스럽게 이를 줄 세워 비교하는 문화 아닌 문화가 생겼다. 이제 사실상 모든 팬덤은 초동에 사활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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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의 음반 수출액은 사상 최초로 2억 달러를 넘겼다. 기록적이다. 산업 측면에선 분명 긍정적인 결과다. 또한 올 한 해 케이팝에선 총 여덟 팀의 밀리언셀러가 탄생했다. 50만 장을 넘긴 하프 밀리언셀러도 여럿이다. 대단한 실적이지만, 이를 두고 마냥 기뻐하기엔 영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판매량 중 대다수가 실제 감상이 아닌, 특정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현실에 이제는 문제의식을 느껴야 할 때다. 게다가 막대한 양의 실물 앨범을 제작하고 소비하면서 발생하는 환경 비용도 상당하다. 언제까지 ‘음반 호황’에만 초점을 두고 자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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