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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Aug 07. 2017

자우림 김윤아 vs. 솔로 김윤아

<Stream> 기고


* 이 글은 NHN 벅스에서 발행하는 음악 계간지 <Stream> Vol.4 김윤아 편에 실린 글입니다.


자우림, 그리고 김윤아의 등장

국내외를 통틀어 단 한 번의 멤버 변동 없이 20년을 달려온 밴드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1997년 등장한 자우림은 삽시간에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인스트림으로, 홍대 앞 클럽에서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보랏빛 강우’ 지역을 확장했다. ‘Hey hey hey’를 시작으로 ‘일탈’, ‘미안해 널 미워해’, ‘나비’, ‘매직 카펫 라이드’, ‘하하하쏭’,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대중에 각인된 히트곡도 여럿이다.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로큰롤과 얼터너티브 록, 기타 팝과 어쿠스틱, 컬러풀한 팝 록과 펑크(Punk) 등 구사한 장르 또한 다채롭다. 


고감도의 음악 팔레트를 펼친 팀의 중심에는 단연 김윤아가 있다. 그는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서, 또 밴드 전면에서 음악을 전달하는 가수로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왔다. 데뷔 초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우림의 이미지를 결정지은 8할은 김윤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을 연상케 하는 인상적 보컬 톤과 특유의 ‘꺾기’ 창법, 음악과 어울리는 비주얼 설정이 자우림의 독창성을 획득했고, 팀은 빠르게 스타덤에 올랐다. 물론 이선규(기타)와 김진만(베이스), 구태훈(드럼)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들의 많은 노래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도 특기할 점이다. 창작과 퍼포먼스, 비주얼 임팩트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그야말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 블론디(Blondie)의 데비 해리(Debbie Harry), 홀(Hole)의 코트니 러브(Courtney Love)가 그랬듯 그는 자우림을 대표한다. 지난 2013년에는 tvn의 코미디 프로그램 < SNL KOREA >에 출연해 ‘우림 언니’로 불리는 촌극을 연출하며 이러한 세간의 인식을 유쾌하게 비꼬기도 했다. 



자우림을 이루는 두 가지 코드, 자유분방과 내면 침잠

그를 필두로 밴드가 한국 모던 록의 영토를 넓히는 사이, 솔로 아티스트 김윤아는 또 다른 궤도에 돌입했다. 자우림이 세 번째 정규 앨범 < Jaurim, The Wonderland >(2000)로 ‘매직 카펫 라이드’, ‘오렌지 마말레이드’ 등을 성공시킨 이듬해, 그는 첫 독집 < Shadow Of Your Smile >(2001)을 선보였다. 뜻밖의 결과물이었다. 상징 같은 활기를 걷어내고 차분하고도 고독한 인간 김윤아를 담은 음반은 향후 그의 행보를 예고하는 신호탄과 같았다. 지금까지 자우림이 아홉 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잽과 훅을 날리는 동안, 그는 네 장의 앨범으로 자신만의 아우라를 형성했다. 히트곡 역시 양쪽 모두 끊이지 않았다. 두 개의 디스코그래피는 일부 접점을 공유하면서도 확실히 양립하며 서로 다른 위상을 쌓아올렸다. 때문에 김윤아의 솔로 커리어는 밴드 멤버의 바람직한 개별 활동 본보기로 손색이 없다. 자우림으로 20년, 솔로로서 16년. 두 음악세계는 견고한 공통분모를 사이에 두고 별개의 매력을 그려나갔다.


자우림의 시작은 1990년대 영미(英美)의 얼터너티브 록 경향과 궤를 같이했다. 데뷔 앨범 < Purple Heart >(1997)의 ‘일탈’과 ‘밀랍천사’, 소포모어 < 연인(戀人) >(1998)의 ‘미안해 널 미워해’ 등은 당대 록 사운드를 십분 반영한 결과다. 밴드는 두 장의 앨범을 거치며 서서히 컬러를 찾았고, 마침내 3집 < Jaurim, The Wonderland >를 통해 팀의 성격을 본격화했다. 감정을 거침없이 발산하며 밝은 에너지로 변환하는 ‘자유분방’과 어두운 일면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내면 침잠’. 두 가지 상반된 코드는 이후 자우림 음악을 수식하는 키워드가 됐다.


대중과의 접촉면을 확대한 쪽은 역시 자유와 격식 파괴의 송가였다. 장조 선율과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 들끓는 에너지와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즐거운 노랫말은 곧 대중 애청곡으로 이어졌다. < Purple Heart >의 ‘일탈’과 < Jaurim, The Wonderland >의 ‘매직 카펫 라이드’가 지금까지도 라디오에서 리퀘스트 되는 이유다. 다섯 번째 앨범 < All You Need Is Love >(2004)는 그 정점이었다. 형형색색의 아트워크와 함께 ‘하하하쏭’, ‘사랑의 병원으로 놀러 오세요’, ‘17171771’이 방송 전파와 온 거리에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또렷했던 명도는 점점 줄었지만 < Ruby Sapphire Diamond >(2007)의 ‘Carnival amour’, < 陰謀論(음모론) >(2011)의 ‘IDOL’과 ‘Peep show’ < Goodbye, Grief >(2013)의 ‘이카루스’가 그 맥을 이었다.


반면 ‘내면 침잠’의 코드는 마니아를 결집했다. 가슴속 깊은 우물을 내려다보는 가사와 마이너 음계로 조성한 쓸쓸함은 자우림 음악의 한 축이 된 한편, 김윤아 솔로 활동의 중요 단초가 됐다. < Purple Heart >의 ‘이틀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과 < 연인(戀人) >의 ‘落花’, < Jaurim, The Wonderland >에 수록된 ‘새’ 등 대부분이 음반의 대표곡 아닌 수록 곡이었음에도 노래는 컬트적 인기를 누렸다. 4집  < Jaurim 04 >(2002)와 6집 < Ashes To Ashes >(2006)에서는 아예 앨범 전반의 분위기를 어둡게 연출해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그만큼 팀의 진성 팬들은 열광했다. < Ashes To Ashes >에 수록된 ‘샤이닝’과 < 陰謀論(음모론) >의 ‘꿈에’는 잘 들리는 멜로디와 마음 한구석을 울리는 ‘휴먼 터치’로 팀의 숨은 명곡으로 자리 잡았다.



솔로 김윤아의 음악적 성장

자우림의 김윤아가 블루스를 토대로 한 밴드 사운드로 감정 타래를 풀어냈다면, 홀로 선 김윤아는 팀과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밴드가 빠진 자리를 다양한 악기와 소리 요소로 채운 것. 한 대의 피아노에서부터 풍성한 스트링 세션, 재즈 밴드와 탱고, 엠비언트와 일렉트로니카 등 동원된 작법과 재료의 폭도 상당하다. 심지어 첫 앨범 < Shadow Of Your Smile >과 2집 < 유리가면(琉璃假面) >(2004)에서는 같은 노래(‘담’, ‘봄이 오면’)를 악기 편곡만 달리해 싣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그에게 솔로 활동은 자우림으로 채워지지 않던 음악적 욕구를 해소하는 새로운 창구였던 셈. 너른 스펙트럼으로 특유의 감수성을 보조하며 매 작품 유니크한 음향을 설계했다.


활동의 포맷이 바뀌면서 그간 견지해온 침잠의 태도는 더욱 짙어졌다. 솔로 가수 김윤아는 과거 대중의 호응을 견인했던 발랄함을 지우고 소통의 부재와 외로움, 마음속 요동치는 풍랑과 사랑 후의 비애감을 본격적으로 노래했다. “사랑도 시간도 바람사이로/구할 수 없이 허무하게 사라져가네/나의 공허 나의.”(‘Flow’),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닿지 않아요.”(‘담’),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는 꿈을 꾸는 것일까? 나는 살아가는 것일까? 그저 살아지고 있는 것일까?”(‘가끔씩’). 첫 독집의 면면에는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듯, 가공하지 않은 생생한 그만의 언어가 꿈틀댔다.


지독한 음울과 사색, 번뜩이는 시니컬함과 한기(寒氣)는 김윤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증오는 나의 힘’에 이르는 < 유리가면(琉璃假面) >의 수록 곡은 제목만 봐도 그의 노래임이 드러날 정도. 떠난 연인을 처연하게 그리는 ‘야상곡(夜想曲)’은 “구름이 애써 전하는 말/그 사람은 널 잊었다/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실낱같아 부질없다”는 지극히 그 다운 말로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렵지 않은 단어를 섬세하게 엮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깊고 진하게 불러일으키는 마력. 이야기꾼 김윤아의 흡인력은 여기서 나온다.


그 후 3집 < 315360 >(2010)이 나오기까지 6년. 그동안 그는 결혼과 임신이란 인생의 중대 사건을 거치며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고유의 차가운 고독감을 일부 내비치면서도, 출산 후 아이에 대한 애틋함과 생명에 대한 고찰 등 새로운 소재의 노랫말을 선보였다. ‘이상한 세상의 릴리스’와 ‘비밀의 정원’, ‘가만히 두세요’와 ‘도쿄 블루스’ 등이 익숙한 김윤아의 흔적이었다면, 자전적인 ‘Going home’과 ‘에뜨왈르’, 서늘한 날 것의 언어로 삶을 바라본 ‘Cat song’은 내러티브의 확장을 방증했다. 특히 음반은 프로덕션의 무게를 대폭 줄이고 전자음을 도입하는 등 골격의 측면에서도 신선함을 확보하며 장차 전개될 김윤아의 또 다른 페이지를 암시했다.


새 챕터는 쉽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 사이 자우림은 메시지와 색조의 정돈에 주력한 두 장의 정규 앨범 < 陰謀論(음모론) >과 < Goodbye, Grief >를 내놓았고, 그렇게 또 6년이 지나갔다. 마침내 3곡의 선공개 싱글을 거쳐 발매된 4집 < 타인의 고통 >(2016)에는 말 그대로 타인의 처절한 고통이 가득했다. 지난 몇 년간 뉴스에서 들린 괴로운 소식이 내면화되었고, 그것을 음악으로 꺼냈다는 그의 말처럼 음반은 전에 없이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그는 ‘키리에’, ‘강’, ‘독’, ‘꿈’ 등을 통해 죽음과 이별, 상처와 통증을 진지하게 다루며 공감과 치유에 능한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최근 몇 년을 한국에서 보낸 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타인의 고통’이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주로 내면의 풍경과 인접의 관계에 관해 노래하던 그가 사회와 공동체 전반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분명 색달랐다. 물론 이전에도 왕따로 자살하는 학생의 모습을 그린 ‘落花’, 만연한 성형수술과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은 ‘실리콘벨리’, 미디어의 권력화를 경고한 ‘Peep show’ 등 특유의 냉소적 시각으로 현실의 단면을 조명한 노래는 있었다. 그러나 < 타인의 고통 >은 김윤아로서는 처음으로 앨범의 무게중심을 다른 사람의 처절한 아픔에 두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그는 음반에서 엠비언트와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귀에 잘 붙는 선율과 접목시키며 근사한 음악적 성장도 이뤘다.



보컬리스트 김윤아를 바라보다

개성과 밀도를 겸비한 스토리텔링과 선명한 멜로디 메이킹, 그에 걸맞은 사운드 디자인까지 능히 해내는 김윤아는 자신의 창작물을 완전하게 표현해내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안정적 중저음과 짜릿한 고음, 가녀린 팔세토와 벨팅에 가까운 폭발적 진성이 모두 능란하다. 자우림에선 밴드 사운드에 어울리는 톤과 파워가, 솔로 곡에선 무게감과 유려함이 두루 포착된다. 몇 마디 후렴구 피처링만으로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며 곡의 주도권을 차지한 지드래곤의 ‘Missing you’에서도 김윤아 가창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독특한 창작관이 밴드와 그의 방향을 이끌었다면, 명료한 보컬 퍼포먼스는 여기에 색깔을 입혔다.


20년 차 혼성밴드의 프런트 우먼이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싱어송라이터로서 김윤아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 위치는 단순히 인기 레퍼토리를 보유한 히트 가수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삶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며, 내면의 결핍과 공백을 끊임없이 채워간 예술가로 자리한다. 이러한 성취가 그의 솔로 궤적과 함께 이루어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윤아는 지난해 < 타인의 고통 >을 발매하며 “단어 하나를 써도 스스로 납득이 가는 걸 쓰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마음에 쉽게 메워지지 않는 공허가 존재하는 한, 자우림과 김윤아는 끝까지 남아 위로와 공감의 손길을 건네리라 확신한다. 이 분야에선 그가 독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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