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풀기를 충분히 마친 이들의 본격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목소리와 몇 번 듣지 않아도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 결정적으로 반듯한 호감형 외모. 세대에 관계없이 열성 팬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닌 남성 팝 스타는 누구든 이 조건들을 충족했다. 뉴 밀레니엄의 첫 10년이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독주였다면, 배턴을 이어받은 것은 저스틴 비버였다. 물론 거대한 안티 공작으로 잡음도 상당했으나, 그가 현재 팀버레이크 이후 가장 거대한 남성 솔로 팝 가수 중 하나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두 저스틴이 이렇다 할 적수 없이 영토를 확장했다면, 팝 차트 정상을 향해 새롭게 부상 중인 이들은 서로가 강력한 경쟁 상대다. 각각 미국과 캐나다, 호주 출신인 찰리 푸스(Charlie Puth)와 숀 멘데스(Shawn Mendes),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이 그 주인공. 1990년대에 태어난 세 청년은 모두 소셜 미디어를 뿌리로 경력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는 유튜브 스타로 처음 주목받았던 저스틴 비버와도 맥을 같이 한다. 차세대 팝스타들의 각기 다른 음악적 지향과 캐릭터, 어필 포인트를 소개한다.
◆ 찰리 푸스 : 미국인의 '취향 저격', 산뜻한 블루 아이드 소울
1991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찰리 푸스는 21세기형 '벼락 스타'의 좋은 사례다. 2009년 유튜브에 커버 곡 영상을 올리며 첫 발을 뗀 그는 위즈 칼리파(Wiz Khalifa)와 함께한 <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2015)의 사운드트랙 'See you again'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의 제작진은 촬영 중 사망한 주연 배우 폴 워커(Paul Walker)의 추모 곡을 수십 명의 뮤지션들에 의뢰했는데, 뜻밖에도 유튜브에서 활동하던 그의 곡이 낙점된 것.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자신의 친구를 생각하며 10분여 만에 써 내려갔다는 이 노래로 총 12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노래는 그해의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가 됐다.
라디오 친화적인 캐치 멜로디와 쉬운 낱말로 구성하는 노랫말, 풍성하고 따뜻한 질감의 알앤비 보컬은 그의 특장점이다. 'See you again'의 후렴은 그렇게 사람들을 울렸다. 또 다른 당대의 라이징 스타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와 함께한 'Marvin Gaye'와 데뷔 앨범 < Nine Track Mind >(2016)의 수록 곡 'One call away', 'We don't talk anymore', 'Up all night', 'Left right left'는 모두 만만찮은 중독성을 지녔다. 부담 없는 팝 사운드와 히트를 노리는 강력한 코러스, 짙은 호소력의 가창과 친근함에 초점을 둔 비주얼 어필이 그의 탄탄대로를 예약한다.
◆ 숀 멘데스 : '건실 청년'의 활력 넘치는 록킹 팝
1998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숀 멘데스는 국적만으로 저스틴 비버와 비교되곤 한다. 저스틴 비버가 유튜브에서 주목받고 발탁된 것처럼, 그는 2013년 동영상 기반 소셜 미디어 '바인(Vine)'에서 인기 사용자로 떠올라 메인스트림 레코드와 계약에 성공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주 무기로 활용하는 그의 매력은 꾸밈없는 맑은 음색과 힘 있는 발성으로 정직하게 부르는 노래에 있다. 그의 강점은 각국의 차트 10위권에 오른 첫 히트 싱글 'Stitches'에 잘 나타난다. 솔직 담백 가창과 높은 흡수력의 멜로디, 풋풋한 가사로 일으킨 돌풍은 '포스트 비버'의 등장 예고였다.
데뷔 앨범 < Handwritten >(2015) 이후 17개월 만에 발표한 2집 < Illuminate >(2016)는 다소 미흡했던 창작 역량을 성실히 보완한 결과물이었다. 포크와 블루스를 바탕으로 좀 더 록킹한 사운드를 구성했고, 선율은 한층 날렵하게 다듬었다. 그 결과 리드 싱글 'Treat you better'는 'Stitches'에 이어 두 번째로 차트 톱 텐에 올랐고, 'Ruin', 'Three empty words', 'Don't be a fool' 등 꼼꼼한 만듦새와 대중성을 겸비한 노래들은 그의 음악적 성장을 증명했다. '악동' 저스틴 비버와 달리,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하는 당찬 모습에 대중 호감도 역시 상당하다. 급격히 성장한 최근에는 화보에서 육체미를 과시하는 등 소년의 이미지를 벗는데 주력하고 있다. 마의 17세도, 소포모어 징크스도 가뿐히 넘겼으니 남은 건 쾌속 질주다.
◆ 트로이 시반 : 일렉트로닉으로 무장한 '치명적 퇴폐미'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난 트로이 시반은 2살에 호주로 이민해 그곳에서 자랐다. 위의 두 사람이 온라인을 통해 음악계에 들어선 것과 달리, 그는 2006년 호주 퍼스(Perth) 지역의 텔레비전 모금행사 프로그램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듬해에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결승까지 올라 데뷔 EP를 제작하는 한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 불과 12세의 나이에 음반을 만들고 연극 무대에 데뷔하는가 하면, 2009년에는 영화 < 엑스맨 탄생 : 울버린 >에 휴 잭맨의 아역으로 등장하는 등 또래에 비해 비교적 다채로운 이력을 자랑한다.
꾸준한 활동으로 마침내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 그는 < TRXYE >(2014)와 < WILD >(2015) 등 2장의 EP를 거쳐 정규 1집 < Blue Neighbourhood >(2015)를 세상에 내놓았다. 일렉트로닉 소스로 장식한 팝 멜로디와 건조하고 나른한 보컬의 이색 조합! 여기에 패셔너블한 아트워크까지 동원해 신인답지 않은 완숙함을 뽐냈다. 치밀한 사운드 디자인의 'Youth'가 주요국 차트에 등장했고, 'Wild', 'Fools', 'Talk me down' 등 정교한 일렉트로닉 팝이 앨범의 완성도를 견인했다. 또한 지난 2013년에 스스로 게이임을 밝힌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을 뮤직비디오와 가사 등 음악 곳곳에서 떳떳이 드러내며 성 소수자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 개성 강한 비주얼 설정과 장르 친화적 팝으로 빠르게 지명도를 높이고 있는 그는 당분간 반드시 주목해야 할 기린아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최근 나란히 신곡을 공개했는데, 여기서도 각자의 캐릭터가 확실히 구분된다. 찰리 푸스는 리드미컬한 팝 알앤비 트랙 'Attention'에서 또 한 번 선명한 후렴을 꽂았고, 숀 멘데스는 록의 맛을 살린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으로 대중의 입맛을 겨냥했다. 초지일관 일렉트로닉인 트로이 시반은 톱 DJ 마틴 개릭스(Martin Garrix)의 신곡 'There for you'에 보컬로 참여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예정. 얼마 전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첫 공개된 노래는 폭발적 현장 반응과 함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셋이다. 국적은 물론 주력 장르와 음악적 스타일, 셀링 포인트에 겹치는 지점이 거의 없다. 연령대와 데뷔 과정, 뛰어난 멜로디 감각 정도가 이들의 공통분모다.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성격의 뮤지션이 셋이나 등장했으니 팝 팬들의 눈과 귀는 쉴 틈이 없다. 스타가 될 요건은 넘치도록 잘 갖췄다. 몸풀기를 충분히 마친 이들의 본격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장르와 성별, 시기를 막론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범 대중을 일시에 열광시킬 '핫' 감각, 다양한 취향의 듣는 이를 관통하는 '쿨' 뮤직. 한 해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가수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음악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가수들. 남다른 포지셔닝과 한 발 앞선 음악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톱 아티스트'입니다.
* 2017년 5월 IZM 기고 http://bit.ly/2pVKN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