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 리파에서 카밀라 카베요, 카디 비까지!
최근 팝 시장에서 모처럼 여성 솔로 가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특히 중견보다는 신인 가수들의 활약이 많은 것이 포인트다. 음악의 주된 소비 패턴이 스트리밍으로 옮겨간 후 한동안 고전하던 '디바' 시장이 신예들에 의해 활기를 되찾는 모양새다. 국적도, 장르도 다른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저마다 매우 독특한 음색을 가졌다는 점이다. 개성 있는 목소리로 두각을 드러내며 음악 시장을 사로잡은 6명의 라이징 스타를 소개한다.
두아 리파(Dua Lipa)
현재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 가수는 두아 리파다. 2015년, 아델의 공백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스무 살의 나이에 로컬 시장을 접수했다. 특히 그는 영국의 여성 가수로는 모처럼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빠르게 세력을 넓히고 있다. 그에 앞선 세대가 빈티지 소울을 앞세워 시장 지분을 확보했다면, 두아 리파는 트렌드에 걸맞은 일렉트로닉 팝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린다. 팝 장르에서는 흔치 않은 저음역의 콘트랄토 보컬도 그를 알리는 데 중요한 요소다. 보편적인 음악으로 대중에 다가가고, 특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한 것이다.
가파른 상승세의 또 다른 원동력은 여성으로서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담은 노랫말에 있다. 'Hotter than hell', 'Blow your mind(Mwah)'도 그랬지만, 'New rules'가 결정적이었다. 흐트러짐 없이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한 규칙'들을 되뇌는 모습에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까지 흔들렸다. 여성 팬들의 열띤 공감과 지지에 힘입어 노래는 빌보드 차트 6위까지 역주행했고, 뮤직비디오는 10억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떠난 너를 X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일갈하는 'IDGAF'은 '걸 크러쉬'의 결정판이다. 캘빈 해리스와의 신곡 'One kiss'로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에 이어 새로운 영국발(發) 팝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New rules', 'Lost in your light', 'IDGAF'
카디 비(Cardi B)
한동안 여성 래퍼의 대명사는 니키 미나즈 였다. 'Fancy'의 이기 아젤리아가 잠시 반짝했지만 그뿐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난공불락이었던 그의 아성은 신인 래퍼 카디 비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2017년, 'Bodak yellow'로 여성 래퍼로서는 20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그 시작이다. 미고스, 니키 미나즈와 함께한 'Motorsport', 브루노 마스의 원곡에 랩을 가미한 'Finesse(Remix)', 새 앨범의 수록곡인 'Be careful'과 'I like it'까지 신예의 히트 행진은 거침없다.
순식간에 특급 래퍼로 떠오른 이유는 분명하다. 니키 미나즈는 그동안 빌보드 핫 100차트에 70곡이 넘는 곡을 올릴 만큼 맹렬히 활동했으나, 그만큼 쌓여있던 피로감도 적잖았다. 때마침 제법 짜임새 있는 랩을 구사하는 신인, 카디 비가 등장해 자리를 꿰찬 것이다. 불우했던 과거부터 현재 음악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포장 없이 내뱉는 직설 화법도 인기의 요인이다. 니키 미나즈와 달리 첫 단추부터 팝보다는 힙합에 매진한 것도 마니아들의 지지를 샀다. 대중의 수요를 캐치하는 감각과 동료 힙합 아티스트, 힙합 팬들에게 인정받는 실력을 모두 갖춘 그의 활약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Drip', 'I like it', 'Be careful'
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
걸 그룹 피프스 하모니(Fifth Harmony)를 탈퇴할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스타덤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물론 그가 팀 내에서도 특히 높은 인기를 누린 주요 멤버였지만, 홀로서기를 할 만큼의 존재감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솔로 데뷔 이후 고전하던 그에게 대박을 안긴 곡은 'Havana'다. 99위로 차트에 진입한 노래는 무서운 중독성으로 역주행에 성공했고, 끝내 차트 1위에 등극했다. 또한 그는 같은 주에 첫 솔로 앨범 < Camila >까지 차트 정상에 올리며 2003년 비욘세 이후 15년 만에 '데뷔 앨범으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를 동시에 석권한 여성 가수'가 됐다.
라틴 팝으로 이름을 높였지만, 잠재력은 팝 전반을 아우른다. 'Crying in the club', 'Havana'에서 들을 수 있는 매력적인 중저음과 'Never be the same'의 깨끗하고 섬세한 가성, 흡사 시아(Sia)가 떠오를 만큼 파워풀한 'I have questions' 등 보컬리스트로서 운신의 폭이 넓다는 점이 강점. 여기에 무대를 꾸미는 솜씨와 춤 실력, 콘셉트를 소화하는 능력도 뛰어나 차세대의 팝 퍼포머로도 손색이 없다. 활동을 잠정 중단한 피프스 하모니와 달리 'Never be the same'까지 차트 톱10에 올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는 카밀라 카베요는 퍼렐 윌리엄스와 함께 살사, 레게의 영향이 진하게 풍기는 신곡 'Sangria wine'으로 입지 굳히기에 나섰다.
'Crying in the club', 'Inside out', 'Consequences'
앤 마리(Anne-Marie)
영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는 10대 시절 가라테 선수로 활약했던 이력이 있다. 그것도 단순 취미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유수의 대회에서 여러 번 메달을 땄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프로 선수였다. 그런 그가 엘튼 존이 이끄는 로켓 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고 가수의 길에 들어선 것은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과 유니크한 음색 덕이다. 무명 작곡가였던 그의 데모 테이프는 금세 관계자들에 눈에 띄었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Raized By Wolves), 루디멘탈(Rudimental) 등 여러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의 게스트 보컬로 발탁됐다. 클린 밴딧(Clean Bandit)의 2016년 대박 곡 'Rockabye'에 참여한 것은 이러한 행보의 연장선이었다.
주특기는 일렉트로닉과 다양한 팝 사운드의 접목이다. 'Ciao adios'에서는 댄스홀 스타일을 활용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고, 'Friends'에선 DJ 마시멜로(Marshmello)의 전자 음향에 지-펑크(G-Funk)식 신시사이저를 매치해 독특한 감상을 끌어냈다. 에드 시런, 줄리아 마이클스가 작곡에 힘을 보탠 어쿠스틱 팝 '2002',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를 중심으로 선명한 멜로디를 전개한 'Machine'은 또 다른 매력의 산물. 개성 있는 음색과 탄탄한 기본기의 발성, 감각적인 창작력을 가진 그는 두아 리파와 함께 영국의 차세대 팝 디바로 부상 중이다.
'Ciao adios', 'Friends', 'Machine'
시저(SZA)
독특한 이름의 아티스트 시저는 피비 알앤비로 대표되는 알앤비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2012년 데뷔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2017년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 Ctrl >은 그를 알앤비 샛별로 격상했다. 음색과 분위기의 연출이 중요시되는 작금의 알앤비 트렌드와 시저의 달란트가 맞아 떨어진 덕이다. 몽환적이면서도 힘 있게 귀에 꽂히는 보이스 컬러는 흉내 내기 힘든 그의 전매특허. 리아나('Consideration'), 마룬 파이브('What lovers do')와 같이 유행에 민감한 뮤지션은 진작 그를 알아보고 게스트 보컬로 초빙한 바 있다.
물론 목소리의 힘만은 아니다. 평단의 일치된 호평을 끌어낸 < Ctrl >은 피비 알앤비의 작법 아래 여러 장르를 재료 삼은 '알앤비의 청사진'과 같았다. 트랩과 신스 팝, 펑크(funk) 등에서 힌트를 얻었고 현악기와 드럼 머신, 신시사이저 등을 고루 활용했다. 다양하게 구축한 듣는 재미에 산뜻한 멜로디까지 갖췄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또래 집단인 20대 아프로-아메리칸 여성들의 공감과 전폭적 지지를 불러낸 가사는 덤이다. 길었던 무명의 설움을 한 방에 털어버린 그는 올해 초 켄드릭 라마와 함께한 < 블랙 팬서 > 사운드트랙 'All the stars'를 히트시키며 진정한 대세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Drew Barrymore', 'Doves in the wind', 'All the stars'
비비 렉사(Bebe Rexha)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비비 렉사는 최근 컨트리 남성 듀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과 함께한 'Meant to be'의 흥행으로 비로소 지명도를 얻었으나, 그간의 작업 이력은 만만치 않다. 그는 무명의 시기에 한국의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Lucifer', 에미넴과 리아나가 함께한 'The monster' 등을 작곡해 히트시키며 음악가로서의 발판을 다졌다. 창작만큼이나 재능을 나타낸 분야는 보컬이다. 래퍼 지-이지(G-Eazy)의 히트곡 'Me, Myself & I'에 피처링한 것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게타와 니키 미나즈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낸 'Hey mama', 마틴 개릭스와 호흡을 맞춘 'In the name of love' 등이 그의 '꿀 성대'를 널리 알렸다.
이처럼 그는 노래에 감칠맛을 더하는 목소리 덕에 게스트 보컬로 인기가 높다. 앞서 언급한 가수들 외에도 캐시 캐시('Take me home'), 원 디렉션 출신의 루이 톰린슨('Back to you'), 리타 오라('Girls') 등이 앞다투어 그를 섭외했다. 신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쟁쟁한 뮤지션들과 잇따라 작업하며 잠재력을 증명한 그는 솔로 가수로서도 부지런히 자리매김을 꾀하고 있다. 세 장의 EP를 발매한 끝에 첫 정규 앨범 < Expectations>의 출시를 앞둔 것. 컨트리와 기분 좋은 화학 작용을 보인 'Meant to be'부터 날 선 음색을 활용한 댄스 팝 'I got you', 리아나가 떠오르는 슬로우 넘버 'Ferrari' 등 다채로운 팝송으로 승부수를 띄울 전망이다.
'I got you', 'Meant to be', 'Back to you'
장르와 성별, 시기를 막론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범 대중을 일시에 열광시킬 '핫' 감각, 다양한 취향의 듣는 이를 관통하는 '쿨' 뮤직. 한 해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가수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음악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가수들. 남다른 포지셔닝과 한 발 앞선 음악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톱 아티스트'입니다.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기고 https://bit.ly/2sFbE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