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그야말로 ‘힙합의 시대’다. 이제 힙합을 빼놓고 지금의 음악을 이야기하기란 대단히 어려워졌다. 인기 차트를 석권한 것은 물론,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등 힙합을 소재로 삼은 방송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열풍의 기원을 찾기 위해선 홍서범과 현진영,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마땅하나, 이들의 업적은 힙합 개념의 전파 단계에 가깝다. 보다 직접적으로 한국 음악계에 본토의 ‘랩 음악’이 퍼지게 된 계기는 1999년 드렁큰 타이거의 주류 등장이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이전까지는 우리 대중 사이에서 ‘힙합’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바지를 조금 내려 입으면 힙합 바지라고 했고, 랩이 들어간 음악이라면 힙합 음악이라고 했다. 어렴풋이 뉘앙스만 알았을 뿐, 여전히 마니아의 문화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이거 JK, DJ 샤인으로 구성된 신인 가수 드렁큰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강렬했다. “음악 같지 않은 음악들 이젠 모두 다 집어치워 버려야 해/우리가 너희들 모두의 귀를 확실하게 바꿔줄게 기다려” 제목만큼이나 가사 또한 통렬했다.
사실 타이거 JK의 음악계 등장은 처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자란 그는 1992년, 힙합 그룹 N.W.A.의 아이스 큐브(Ice Cube)가 발표한 ‘Black Korea’라는 곡에 반박하는 ‘Call Me Tiger’라는 곡을 통해 힙합에 발을 들였다. 1995년에는 [Enter The Tiger]라는 앨범으로 한국에서 정식 데뷔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힙합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탓에 전곡이 랩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방송 금지 조치를 받았고, 결국 그는 별 소득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며 다시 돌아온 드렁큰 타이거의 1집 [Year of the Tiger](1999)는 혁신이었다. 이전까지 ‘힙합’으로 분류되던 가요와는 확실히 달랐다. 음반의 절반이 영어 가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흡사 본토의 랩 앨범을 듣는 듯했다. 타이틀곡 ‘난 널 원해’는 ‘눈 감아봐도’로 이름을 알렸던 가수 박준희가 참여해 비교적 친근한 매력을 발휘했고,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도발적인 제목과 가사로 인기를 얻었다. ‘진정한 힙합’의 쌍끌이 히트였다.
[Year of the Tiger]가 흥행에 성공하자 가리온, CB MASS 등 언더그라운드의 실력자들이 대거 수면 위로 부상했다. ‘뽕’ 멜로디가 강한 가요의 구성을 빌리지 않아도 대중에 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 리쌍, 다이나믹 듀오, 에픽 하이, TBNY 등이 잇따라 등장하며 힙합 융성의 발판을 다졌다. 그 흐름이 지금으로 이어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드렁큰 타이거의 등장이 한국 힙합 시대의 개막을 앞당겼다는 평가는 과언이 아니다.
마니아와 대중을 동시에 거머쥔 ‘Monster’
힙합 진영에서 드렁큰 타이거가 각별한 이유는 비단 ‘개국 공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총 9장의 정규 앨범을 낸 ‘호랑이’는 거의 매 앨범 히트곡을 배출했다. 힙합의 저변을 확대하면서도 대중과의 접점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과감한 일갈이었던 데뷔 앨범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와 ‘난 널 원해’가 그 시작이었다. 이후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던 ‘Good Life’(2001)부터 ‘남자기 때문에’(2003), ‘Liquor Shots(술병에 숟가락)’(2004),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2005), ‘8:45 Heaven’(2007), ‘Monster’(2009), ‘살자’(2013)까지 발표한 거의 모든 타이틀곡이 인기 차트에 올랐다. 이는 힙합 아닌 팝 가수로서도 쉽지 않은 성과다.
노래마다 다른 듣는 재미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Good Life’는 이렇다 할 멜로디 파트 없이도 애창곡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남자기 때문에’는 미니멀 프로덕션과 생활 밀착형 가사로 남성 팬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비장미가 철철 흐르는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는 어떤가. DJ 샤인의 탈퇴로 타이거 JK의 1인 체제가 된 후 처음으로 발표한 노래는 완성도 높은 프로덕션과 가사로 ‘한국 힙합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할머니의 작고 후 추모의 뜻을 담았던 ‘8:45 Heaven’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서정성을 조화한 수작으로, ‘발라버려!’를 하나의 유행어로 떠오르게 했던 ‘Monster’는 웅장미와 중독성으로 기억된다. 힙합 신에서 이 정도의 히트 레퍼토리를 가진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드렁큰 타이거의 음악은 대중을 아우르는 동시에 마니아의 욕구까지 능히 충족했다. CB MASS, 김진표, T(윤미래)가 함께한 2집 [위대한 탄생](2000)의 수록곡 ‘The Movement’는 무브먼트 크루의 초석이 되어 우리에게도 근사한 힙합 크루가 있다는 자부심을 안겼다. ‘코리안 스왜그(swag)’에 다름없었던 ‘엄지 손가락’(2003), 송곳 같은 사회 비판을 쏟아낸 ‘음주 Rapping(취중푸념)’(2005), ‘남자기 때문에’를 절묘하게 비튼 ‘TV속 나’(2007), H.O.T.와 젝스키스가 힙합으로 불리던 1990년대 풍경을 그린 ‘매일 밤01’(2007), 분기탱천의 메시지가 빼곡히 담긴 ‘내가 싫다’(2007), 여러 레퍼런스를 동원해 서늘한 풍자를 꽂아 넣은 ‘힙합간지남’(2009)과 ‘짝패’(2009) 등이 마니아의 절대 지지를 얻었다.
스스로 전설이 된 ‘호랑이’
결코 쉽지 않은 궤적이었다. 미국 LA에서 자신을 호랑이라고 부르라 외쳤던 타이거 JK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고국은 ‘힙합 호랑이’를 맞을 준비가 되기 전이었다. 애써 1집을 발표하고 흥행 가도에 오르는가 했더니 억울한 누명으로 활동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멤버의 탈퇴와 힘겨웠던 투병 후 믿었던 이들의 배신으로 입은 금전적, 정신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발표한 싱글 ‘YET’에는 지독했던 현실에 대한 분노가 들어차 있다.
모진 질곡의 세월에도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힙합 불모지’에서 처음부터 고집했던 ‘진정한 힙합’을 우직하게 밀어붙였다. 음악가로서 몸집을 키우면서 촘촘하게 히트를 거뒀고, ‘힙합 춘추 전국 시대’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동료 힙합 가수들은 물론 수많은 래퍼 지망생들이 드렁큰 타이거, 타이거 JK를 우상으로 꼽으며 칭송하는 이유다. 데뷔 후 20여년이 흐른 올해, 드렁큰 타이거는 팀의 명의로는 마지막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타이거 JK로서 전설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활동명이 무엇이든, 한국 음악 사상 첫 ‘대중 래퍼’의 행보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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