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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The Essential Will Young]

윌 영(Will Young)의 베스트 앨범

영국을 사로잡은 뉴 밀레니엄의 ‘팝 아이돌’ 윌 영(Will Young)

그의 이력을 수놓은 곡들을 모은 베스트 앨범 [The Essential Will Young]


앨라니스 모리세트(Alanis Morissette),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비욘세(Beyonce) 등 오디션 프로그램이 발견한 스타들은 1990년대에도 적지 않지만, 2000년대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약과다.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제니퍼 허드슨(Jennifer Hudson), 아담 램버트(Adam Lambert), 리오나 루이스(Leona Lewis) 등의 솔로 가수부터 원 디렉션(One Direction), 피프스 하모니(Fifth Harmony) 등의 보이, 걸 밴드까지 수많은 스타가 방송을 통해 선발됐다. [엑스 팩터](X-Factor),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더 보이스](The Voice) 등 그 경로도 다양하다. 이 모든 방송의 출발점은 2001년 영국 ITV에서 방영한 [팝 아이돌](Pop Idol)이며, 그 첫 번째 우승자가 이 작품의 주인공 윌 영(Will Young)이다. 


여기서 잠깐. 2000년대에 팝을 즐겨들은 이라면 가레스 게이츠(Gareth Gates)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Anyone Of Us’, ‘Listen To My Heart’ 등으로 잠시나마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영국 가수 말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적잖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바로 [팝 아이돌] 첫 시즌의 준 우승자다. 그를 꺾고 왕좌에 올랐던 윌 영은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억울한 대접을 받은 케이스다. 지명도와 인기도 측면에서 그는 이상할 정도로 가레스 게이츠에게 밀렸다. 심지어 해당 경연에서 3위를 차지한 다리우스(Darius)에 비교해도 결코 우월하지 않았다. 물론 윌 영의 노래 역시 국내에서 CM 송으로 사용되고 간간이 라디오 전파도 탔지만, 가레스 게이츠와 다리우스에 비교하면 섭섭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비교의 장을 본국인 영국으로 옮기면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넘버원 앨범이 단 한 장도 없는 가레스 게이츠와 달리, 그는 현재까지 발매한 6장의 정규 앨범 중 [From Now On], [Friday’s Child], [Echoes], [85% Proof] 등 총 4장을 영국 차트 정상에 올렸다. 나머지 [Keep On], [Let It Go] 등 2장도 2위를 차지했으니 실로 대단한 기록이다. 이외에도 그는 전 세계 음반 판매량, 영국 내 톱 텐 싱글 개수, 단독 공연 횟수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가레스 게이츠를 월등히 앞선다. 결정적으로, 가레스 게이츠는 현재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인 반면 윌 영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방송이 끝나고도 한동안 계속됐던 라이벌 전에서 그가 사실상 승기를 잡았음을 각종 숫자가 증명한다. 그는 [팝 아이돌]의 첫 우승자인 동시에 유일한 생존자인 것이다.


[팝 아이돌] 우승 당시의 모습

그의 흥행사는 2002년 데뷔 즉시 시작됐다. 보이존(Boyzone), 웨스트라이프(Westlife)로 대표되는 팝적 선율감과 테이크 댓(Take That) 출신의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를 떠오르게 하는 수려한 가창을 두루 갖췄다고 하면 과찬일까. 포근하고 따뜻한 목소리의 윌 영은 노래를 내는 즉시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양면 데뷔 싱글 [Anything Is Possible/Evergreen]은 발매 첫날 4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올렸고, 첫 주에만 11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는 역대 영국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된 데뷔 싱글이며, 2015년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Happy’가 제치기 전까지는 21세기에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었다.


이듬해 영국 음반 산업 협회(British Phonographic Industry)가 주관하는 브릿 어워즈(BRIT Awards)는 그에게 신인상을 수여했고 대중의 환호도 끊이지 않았다. 2003년까지 4장의 넘버원 싱글이 탄생했고, 2006년까지 발표한 9장의 싱글은 연속해서 톱 5 안에 랭크됐다. 그는 2007년 [콘서트 포 다이아나](Concert For Diana) 등 영국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공연에서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2008년 4집 [Let It Go]에서부터 폭발력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2011년 음악적 노선을 바꾼 5집 [Echoes]에서 ‘Jealousy’를 히트시키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캐치한 선율을 앞세우고 팝, 재즈에 바탕을 둔 보컬로 대개는 담백하게, 이따금 알앤비(R&B) 스타일 가창을 구사하며 영국 대중과 호흡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스타로서 윌 영은 비교적 오랜 기간 꾸준히 사랑받은 편에 속한다.


[The Essential Will Young]은 영국인이 가장 사랑한 ‘팝 아이돌’이자, 장르를 넘나드는 팝 보컬리스트 윌 영이 레이블을 옮기기 전인 2013년까지의 궤적을 담고 있다. 이는 2009년 [The Hits]에 이은 두 번째 컴필레이션으로, 데뷔 시기부터 최전성기는 물론, [The Hits]의 신곡과 이후 발매된 [Echoes]의 히트곡까지 알차게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보통의 베스트앨범이 연대기 순으로 노래를 배치하는 것과 달리, 본 음반은 감상에 역점을 둔 유기적 트랙 리스팅이 포인트다. 큰 틀은 발매 순서대로 구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트랙 전환을 위해 일부 곡의 순서를 조정한 식이다. 내용물의 만족도 역시 매우 높다. 데뷔 싱글부터 열여섯 번째 싱글까지 차례로 수록한 곡 대부분이 발표 당시 차트 최상단을 장식했던 그의 대표곡들일 뿐만 아니라, 디스코그래피 내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곡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윌 영의 ‘에센셜’을 하나씩 살펴보자.



Inside of [The Essential Will Young]

역발상의 결과일까. 앨범의 첫머리는 대표작이 아닌 그의 마지막 히트곡 ‘Jealousy’가 맡았다. 감미로운 보컬의 질감을 잘 살린 댄서블 팝 ‘Jealousy’는 [Echoes]의 리드 싱글로 발매되어 UK 차트 5위까지 오른 바 있다. 2006년 ‘All Time Love’ 이후 5년 만에 톱 10의 쾌거를 이룬 노래는 주로 발라드, 소프트 팝에 머물던 그의 스펙트럼이 댄스 팝까지 확장되는 본격적인 기점이 되기도 했다. 이어지는 ‘Leave Right Now’는 2003년 2집 [Friday’s Child]의 리드 싱글로, 곡 전반을 장식한 스트링을 중심으로 명료한 선율을 전개하며 큰 인기를 얻은 그의 대표곡이다.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노래는 2010년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9에서 탈락한 참가자의 공식 퇴장 음악으로 쓰이며 뒤늦게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급기야 그가 결승전 방송에 등장해 ‘Leave Right Now’를 열창하자 일시적으로 판매량이 증가하여 그의 이력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8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 데뷔 앨범 [From Now On]에 수록된 ‘Evergreen’과 ‘Light My Fire’는 각각 웨스트라이프와 더 도어스(The Doors)의 오리지널 송으로, 당시 싱글로도 발매되어 차트 1위에 오른 인기곡이다. [팝 아이돌] 경연에서 첫선을 보인 노래들은 원곡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그의 진가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vergreen’은 몇 년 후 우리나라의 한 아파트 광고에 삽입되며 국내에서도 잘 알려졌고, ‘Light My Fire’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전설적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José Feliciano)가 1968년 커버해 히트한 버전을 윌 영의 해석으로 재탄생시키며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에서 열띤 호응을 얻었다. 영국 출신의 알앤비 가수 타이오 크루즈(Taio Cruz)가 정식 데뷔 전 작곡에 참여한 ‘Your game’은 2집 [Friday’s Child]에 수록된 곡으로 엔싱크(*NSYNC)를 연상케 하는 부피 큰 코러스가 인상적인 댄스 팝이다. 발라드를 부를 때와는 전혀 딴판인 윌 영의 날렵한 가창을 반드시 확인할 것.


1집 [From Now On] 활동을 마무리하며 발매한 양면 싱글 [Don’t Let Me Down/You and I]가 그 뒤를 잇는다. 당시 웨스트라이프 등의 보이밴드들에게서 흔히 듣곤 했던 이지 리스닝 계열의 팝 발라드 ‘Don’t Let Me Down’과 ‘You and I’에서는 그가 어떻게 영국 대중의 마음을 일시에 훔쳤는지 잘 나타난다. 노래 자체의 신선도는 높지 않았지만, 편안한 발성으로 매끄럽게 노래하는 목소리가 곡의 가치를 높였다. 반면 소포모어 앨범 [Friday’s Child]의 동명 수록곡 ‘Friday’s Child’는 그가 반드시 쉬운 곡만을 추구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장장 9분에 달하는 노래는 그의 초반 작업물 중 단연 수작이다. 레전드 싱어송라이터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영향을 받은 정교한 편곡으로 좋은 선율을 포장했고, 조금의 버거움도 없이 노련하게 곡을 소화해냈다. ‘Friday’s Child’는 그가 ‘팝 아이돌’로 출발했지만 절대 음악성을 간과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Friday’s Child’가 그의 전반기 이력의 정점에 있다면, [Echoes]의 수록곡 ‘Come On’은 윌 영 후반기의 꼭짓점에 있다. 영국의 일렉트로닉 팝 듀오 키쉬 모브(Kish Mauve)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는 차트에선 높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오리지널과는 거리가 먼 편곡으로 곡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사례다. 일렉트로니카와 밴드 사운드를 골자로 하는 원곡은 윌 영을 거쳐 차분한 신시사이저와 공간감을 부여하는 퍼커션을 재료로 하는 색다른 신스 팝으로 변모했다. 특유의 음색과 곡 해석력 역시 탁월했다. 2005년 3집 [Keep On]의 리드 싱글이었던 ‘Switch It On’은 로큰롤의 문법을 동원해 새로움을 선사하며 영국 차트 5위까지 올랐다. 1986년도 영화 [탑 건](Top Gun) 속 톰 크루즈(Tom Cruise)로 분해 [Hot Gun]이란 타이틀을 띄웠던 뮤직비디오도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3집 [Keep On](2005)


그러나 정작 앨범의 세일즈를 견인한 곡은 두 번째 싱글 ‘All Time Love’였다. 그의 장기인 정통 발라드 형식의 노래는 피아노와 현악기의 밀도 높은 반주에 유려한 멜로디를 실어 히트를 기록했다. 달콤한 미성, 섬세한 감정 표현에 힘입어 영국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한 통신사 광고에 삽입되어 ‘Evergreen’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노래가 됐다. 한편 직전까지 나온 9장의 싱글을 모두 톱 5에 올려놓았던 그는 음반의 마지막 싱글로 발매한 ‘Who Am I’에서 처음으로 톱 10을 벗어났다.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 합창 세션을 동원해 고전적 팝 발라드의 작법을 따른 노래의 최고 성적은 차트 11위에 그쳐 아쉬움을 자아냈다. [Keep On]은 그의 앨범 중 2집 [Friday’s Child]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지만, 일각에서는 롱런을 위해선 운신의 폭을 넓힐 필요성이 있다는 우려 또한 대두됐다.


이러한 세간의 평가를 받아들이듯 2008년 4집 [Let It Go]의 리드 싱글 ‘Changes’는 제목처럼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Leave Right Now’를 만든 에그 화이트(Eg White)와 함께 발라드의 테두리를 벗어나 재즈의 터치를 가미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했다. 비록 차트 성적은 10위에 만족해야 했으나, 음악관 확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남겼다. 단순히 장르를 넓힌 것뿐만 아니라 음향에서 이룬 발전도 눈에 띄었다. 음반의 두 번째 싱글 ‘Grace’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악기, 보컬 세션을 활용해 그려낸 곡의 사운드 스케이핑은 완성도 측면에서 이전의 수준을 압도했다. 여러모로 음악적 진일보를 이루면서도 과거 자신의 히트 공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동명의 싱글 ‘Let It Go’가 여기 해당하는데, 데뷔 초반 발라드의 기조를 닮은 노래는 마니아들을 만족하게 하기 충분했다.


[Let It Go]를 통해 윌 영의 음악적 성장 기록을 좇던 본 작이 느닷없이 ‘Grace’와 ‘Let It Go’ 사이에 데뷔곡 ‘Anything Is Possible’을 배치한 것은 흥미롭다. ‘Anything Is Possible’은 각종 대기록을 수립하고 윌 영 음악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던 그의 대표곡 아닌가. 이는 앞서 말했듯, 감상의 맥을 고려한 트랙 리스팅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Grace’에서 과거로 돌아가 ‘Anything Is Possible’로, 다시 ‘Let It Go’로 이어지는 흐름은 청자의 선형적 감상을 유도한다. 한 갈래에 있는 ‘Anything Is Possible’과 ‘Let It Go’를 나란히 두고 보면 그가 5년 사이에 가창과 만듦새를 얼마만큼 갈고닦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히트곡 모음집 [The Hits]의 신곡이었던 ‘Hopes & Fears’는 [Let It Go]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렉트로닉 팝을 향한 그의 관심을 나타내는 곡으로, 이는 2년 후 [Echoes]에서 본격화된다.


앨범은 오랜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던 가레스 게이츠와 1집 [From Now On]에서 호흡을 맞춘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마무리된다. 비틀스(The Beatles)의 1970년 원곡이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소리의 벽’(The Wall of Sound)을 필두로 촘촘한 소리 풍경을 그렸다면, 윌 영과 가레스 게이츠의 버전은 두 사람의 보컬 하모니에 초점을 두고 있다. 노래에선 백인의 어덜트 컨템포러리 창법과 흑인의 알앤비 창법 사이에서 양쪽의 이점을 취한 윌 영의 보컬 특색이 오롯이 드러난다. 2002년 발매 당시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한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앨범 말미에 둠으로써 음반은 윌 영의 강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윌 영과 가레스 게이츠


영국 간판의 ‘팝 아이돌’을 총 정리하는 [The Essential Will Young]

[The Essential Will Young]은 그를 대표하는 1집에서 6곡(그중 1곡은 싱글로만 발매된 ‘Don’t let me down’)을 수록하고, 2집부터 4집까지는 각각 3곡, 첫 번째 베스트앨범에서 1곡과 5집에서 2곡을 골라 총 18곡을 담았다. 디스코그래피를 균형 있게 재구성한 앨범은 윌 영이 지금까지 그려온 빛나는 궤적이자, 그가 펼친 다채로운 팔레트의 요약이다. 트랙을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의 능란한 보컬 퍼포먼스, 다양한 음악의 결, 팍팍 꽂히는 멜로디 감각에 새삼스레 감탄할 테다.


2000년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은 대부분 데뷔 초반에 반짝인기를 끌고, 그 힘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윌 영의 최전성기 역시 초반에 집중된 것이 사실이나, 그는 롱런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해 분투했고 실제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그들과 차이를 갖는다. [The Essential Will Young]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드디어 한국에서 정식 발매되는 본 앨범은 윌 영의 오랜 팬들과 팝 마니아들에게 더없이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윌 영의 주옥같은 명곡들을 감상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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