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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Everyday Is Christmas]

세상에 없던 시아의 오리지널 캐럴

[Everyday Is Christmas]
세상에 없던 시아의 오리지널 캐럴



누구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맛있는 음식, 트리 장식, 주고받는 선물도 크리스마스에 빠질 수 없지만, 캐럴이야말로 성탄절을 완성하는 꽃이다. 애창 캐럴 하나쯤 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고, 매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도 여럿 존재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가수가 커리어에 한 번쯤 캐럴 앨범, 홀리데이 앨범을 내는 이유다. 잘 알려진 명곡을 새로이 편곡하는 것만으로도 그 재미가 쏠쏠하며, 운이 좋으면 자신의 창작곡이 클래식으로 남아 매년 불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한다. 왬(Wham),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부터 최근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등이 그 사례다. 때문에 상당수의 홀리데이 앨범은 소수의 창작곡과 다수의 커버 곡으로 구성된다. 유명 곡이 한 곡도 없는 앨범은 극히 드물다.

오늘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시아(Sia)는 다르다. 파열음을 내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보컬, 아이코닉한 금발 단발과 페르소나인 어린 무용수 매디 지글러(Maddie Ziegler)까지 무엇 하나 평범한 것이 없는 그는 크리스마스 앨범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매디 지글러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시선을 끄는 표지는 그 내용물에 비하면 약과다. 이 정도면 눈치챘을 테다. 그렇다. 본 앨범 [Everyday Is Christmas]의 수록곡 중 익히 알려진 노래는 단 하나도 없다. 매끈한 멜로디 메이킹, 중독성 강한 후렴 만들기의 장인인 그는 단짝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Greg Kurstin)과 힘을 합쳐 10곡의 캐럴을 새로 만들었다. 지난 5집 [We Are Born](2010)부터 함께한 둘은 이번에도 좋은 호흡을 보인다.

[Everyday Is Christmas]는 시아가 레이블을 옮기고 내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전통의 레코드 레이블 ‘RCA’에서 [We Are Born]부터 메가 히트곡 ‘Chandelier’를 배출한 넘버원 앨범 [1000 Forms Of Fear](2014),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Cheap Thrills’가 수록된 [This Is Acting](2016)까지 총 3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이 시기를 거치며 세계적 지명도를 획득한 그는 최근, 또 다른 굴지의 레이블 ‘애틀란틱(Atlantic)’으로 이적을 알렸다. 비슷한 시기에 RCA에서 애틀란틱으로 터를 옮긴 켈리 클락슨이 새 정규 앨범으로 음악적 욕심을 드러냈다면, 그는 그만의 홀리데이 앨범으로 새로운 승부수를 띄운다. 감각적 싱어송라이터, 개성파 보컬리스트인 시아가 창조한 다채로운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나씩 살펴보자.


매일이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본 앨범의 정체가 처음 알려진 건 올여름이다. 애틀란틱과의 계약 사실 발표와 함께 커리어 내 첫 크리스마스 앨범을 제작 중이라고 밝힌 것이다. 시아의 캐럴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하던 이들에게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은 <Entertainment Weekl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힌트를 줬다. “나는 그녀가 어쩜 그렇게 빨리 가사와 멜로디를 내놓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이 모든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새롭게 썼죠. 난 여전히 그 이야기들이 새로워요. 예전에 같이 재즈 코드를 연주하던 때 생각도 나고요. 앨범에는 재미있는 업 템포 크리스마스 잼과 시아 표 발라드가 있답니다.” 

커스틴의 말처럼, [Everyday Is Christmas]는 이전의 크리스마스 앨범에선 흔히 볼 수 없던 새로움으로 차 있다. 물론 탄탄한 밴드 사운드, 브라스 세션에 첼레스타와 비브라폰, 멜로트론 등을 이용한 소리 장식 자체는 기성 캐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재즈의 주법을 따르는 연주도 낯선 방식은 아니다. 음반의 특별함은 선율에 기인한다.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부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비욘세(Beyoncé) 등 함께 작업한 이라면 누구나 극찬해 마지않았던 시아의 멜로디, 코드 워크가 앨범 전반에 가득하다. 단조 음계에서 높은 흡수력을 발휘하던 고유의 강점 또한 그대로 녹아있다. 이는 곧 메이저 선법으로 파티 분위기를 연출하는 곡과 균형을 이루며 감상의 즐거움을 높인다.

음반 타이틀과 동명인 ‘Everyday Is Christmas’가 대표적이다. “그대 곁이라면 날마다 크리스마스”라는 가사와 달리, 음악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 마치 그가 리아나(Rihanna)에게 선사했던 ‘Diamonds’처럼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비장한 음악에 담았다. 강렬한 전개, 금세 귓가에 맺히는 후렴이 과연 시아답다. “당신과 나, 여기 겨우살이 아래서”를 노래하는 ‘Underneath The Mistletoe’ 역시 비슷한 모양새다. 특유의 서정적 멜로디에 첼레스타, 글로켄슈필 등의 악기로 성탄의 색을 강조하며 남다른 캐럴을 만들었다. 기존의 시아 음악을 사랑했던 팬이라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스타일이다.

노래 속 독특한 내러티브도 눈에 띈다. 소재 선정과 스토리 구성에 탁월한 그는 겨울과 크리스마스 풍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아기자기한 동화를 꾸렸다. 언뜻 ‘Silent Night’와 같은 고전이 떠오르는 ‘Snowman’, ‘Snowflake’에는 각각 눈사람과 눈송이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앙증맞은 표현으로 그렸고, 미니멀 사운드 위에 목소리 질감을 강조한 ‘Underneath The Christmas Lights’에선 “울고 있는 유령들을 위해 선물을 포장해요, 죽기 전까지 행복은 우리 것이니까요.”라며 발상의 전환을 내보인다. 흔한 얘깃거리를 그만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재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그중 경쾌한 ‘Puppies Are Forever’의 이야기는 특히 재미있다. 노래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마음에 쏙 드는 강아지와 마주하곤 집에 데려가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강아지들은 크리스마스에만 있는 게 아니라며 그들이 늙고 둔해져도 사랑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반려견을 원하는 이들에게 산뜻한 방식으로 경각심을 주는 것이다. 스스로 산타의 조수를 자처하며 “당신의 두려움을 모두 걷어가 햇살로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Sunshine’도 퍽 따스하다. 사람은 물론 개와 눈사람, 심지어 유령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이러한 이야기는 보통의 시즌 앨범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것임이 분명하다.

풍부한 관악 사운드를 동원한 업 템포 넘버의 매력도 상당하다. 앨범의 리드 싱글로 먼저 공개된 ‘Santa’s Coming For Us’는 빅 밴드 사운드와 함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Underneath the tree’ 등 앞선 히트 캐럴 팝이 부럽지 않은 강력한 멜로디로 벌써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당신의 가장 신나는 꿈이 이뤄지길 바라요!”라는 희망찬 가사는 덤이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노랫말이 인상적인 ‘Candy Cane Lane’, 목소리와 어울리는 중독적인 코러스를 탑재한 ‘Ho Ho Ho’ 또한 크리스마스 파티용 플레이리스트에 제격이다.

음반의 성취에는 빼어난 가창도 한몫을 한다. 유니크한 음색과 창법, 너른 음역과 안정적인 발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노래에 어울리는 해석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Santa’s Coming For Us’와 ‘Candy Cane Lane’, ‘Puppies Are Forever’와 ‘Ho Ho Ho’ 같은 곡에선 통통 튀는 캐릭터를 부각했고, ‘Snowflake’와 ‘Sunshine’ 등의 발라드에선 섬세한 표현력을 내세웠다. ‘Snowman’에서의 숨 조절, ‘Underneath The Christmas Lights’의 단단한 팔세토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명암이 공존하는 보이스 컬러와 흉내 낼 수 없는 테크닉이 듣는 이를 빨아들이는 ‘Underneath The Mistletoe’와 ‘Everyday Is Christmas’는 그 정점이다.


독창적으로 구성한 고품격 홀리데이 레코드
매해 연말이 다가오면 수십, 수백 장의 캐럴 앨범이 쏟아진다. 그중 단발성 기획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작품은 극소수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리메이크, 뻔한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 앨범은 그러한 맹점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캐럴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요건들을 모두 갖춘 동시에 대단히 독창적이다. 오리지널 신곡만으로 앨범을 구성하면서도 잘 들리는 멜로디와 색다른 스토리텔링,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를 놓치지 않은 것이 포인트다. 

[Everyday Is Christmas]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올해도 홀리데이 앨범은 줄을 잇겠지만, 이만큼 근사한 오리지널 앨범은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시아의 디스코그래피 사상 첫 시즌 앨범이라는 의미를 차치하고 작품성만을 고려해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차세대의 클래식이 될 앨범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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