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온 세련된 '뽕'이 지금 영미 음악계를 뒤흔들고 있다.
셀린 디온, 비욘세, 리아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팝을 주름잡는 이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호주 출신 작곡가 시아 풀러(Sia Furler)가 쓴 곡을 음반에 수록했다는 것. 팝스타들뿐만이 아니다. 에미넴, 마룬 파이브, 카이고(Kygo) 등 합작의 폭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아델, 케이티 페리, 데미 로바토 등 소위 '잘 나가는' 가수들은 그의 곡을 원한다.
그는 재능 있는 작곡가인 한편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다. 1990년대 중반, 호주 애들레이드 지역에서 밴드 크리스프(Crisp)의 보컬로 활동한 것을 제외해도, 풀 네임 시아 풀러로 낸 1집이 1997년, '시아(Sia)'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기 시작한 것이 2001년이니 어느새 데뷔 20년 차의 베테랑. 긴 경력에 비하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은 시기는 다소 늦다. 솔로 데뷔 앨범은 모국 내에서도 1000여 장의 판매고를 거두는데 그쳤다.
이 시기에 시아 풀러의 개인사는 비극으로 얼룩졌다. 몸담고 있던 밴드 크리스프가 와해된 1997년, 생의 첫 남자친구가 런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던 중 듣게 된 비보에 그는 망연자실했다. 2001년 발매한 2집 < Healing Is Difficult >에는 여기서 비롯된 상실의 정서가 배어있다. 음반의 리드 싱글 'Taken for granted'는 영국 차트 10위에 오르는 성과를 얻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훗날 그는 영국의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남자친구의 사망은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이후 6년간 술과 마약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고 밝혔다.
소포모어 후에도 무명의 시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그나마 세 번째 앨범 < Colour The Small One >(2004)에서 싱글로 발매한 'Breathe me'가 미약한 반응을 얻었다. 조금씩 마니아가 형성된 것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면서부터다. 2008년 발매한 4집 < Some People Have Real Problems >와 'Clap your hands'가 포함된 5집 < We Are Born >(2010)을 거치며 그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팝으로 인지도를 넓혀나갔다. 특히 2010년에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 Bionic > 수록 곡 중 4곡을 쓰고 보컬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계기는 2011년 프랑스 출신 DJ 데이비드 게타와 함께한 'Titanium'이다. 비슷한 시기, 래퍼 플로 라이다(Flo Rida)의 노래에 힘을 보탠 'Wild ones'가 쌍끌이 히트를 기록하며 피처링 가수 시아에 관심이 집중됐다. 거친 파열음을 내는 목소리의 임팩트는 대단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 We Are Born > 활동 중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회복기 중 발매한 이 두 곡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병치레 후 은퇴를 번복한 그는 2014년, 별안간 가발을 뒤집어쓰고 등장했다. 찰랑이는 금색 단발로 얼굴을 숨겼지만 강렬한 음색은 가려지지 않았다. 4년 만의 정규 신곡 'Chandelier'에서 그는 12살의 무용수 매디 지글러(Maddie Ziegler)를 페르소나로 삼았다. 노래는 어린 댄서의 광기 어린 현대 무용과 함께 차트를 강타했다. 풍성한 저음과 자신 있게 뻗어나가는 진성 고음, 높은 음에서 소리를 긁어내는 '보이스 브레이킹'까지. 'Chandelier'는 보컬리스트 시아의 강점을 드러내기에 적격이었다.
후렴에서 드라마틱하게 음정을 도약시키는 작법은 복귀 후 시아의 시그니처다. 'Chandelier', 'Alive' 등 자신의 곡은 물론, 데이비드 게타의 'Titanium', 셀린 디온의 'Loved me back to life', 리아나의 'Sledgehammer' 등 다른 가수에게 선사한 곡에서도 그만의 터치는 진하게 묻어난다. 당초 'Alive'를 자신의 앨범 < 25 >에 수록하려던 아델이 노래가 지나치게 시아스럽다는 이유로 포기한 일화는 그가 지닌 개성이 상당함을 증명한다.
특히 그는 감성을 자극하는 매끈한 팝에서 빛을 발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리아나의 보컬을 조명한 'Perfume'과 'Diamonds', 니요에게 오랜만에 톱10 히트의 기쁨을 안긴 'Let Me Love You (Until You Learn to Love Yourself)', 지난해 때아닌 커버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국내 팬들의 사랑을 받은 제시 제이의 'Flashlight', 영화 < 주토피아 >의 주제가로 쓰인 샤키라의 'Try everything'이 모두 시아의 작품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 낙차가 큰 음계로 빚어내는 감동이 그의 특 장점. '호주의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는 그에게 < Kiss Me Once >(2014)의 프로듀싱을 맡기며 두터운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한 2014년 이후, 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는 금색 가발이다. 가수로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컨트롤하고, 얼굴을 가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한 것이었다. 효과는 상당했다. 'Chandelier'부터 쓰기 시작한 가발은 그 색과 모양을 다양화하며 여전히 그를 대표하는 소품으로 쓰이고 있다. 같은 시기부터 함께한 매디 지글러 역시 그를 차별화 시키는 인물이다. 시아와 같은 가발을 쓰고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보여준 전위적인 춤사위, 표정 연기는 그에게 비주얼 가수의 지위를 부여했다. 화려한 무대 의상과 메이크업, 무대 장치 없이도 작은 체구의 디바는 그렇게 매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 초 발매한 시아의 정규 7집 < This Is Acting >은 다른 가수들을 위해 제작했다가 반려된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리아나의 < Anti > 수록을 위해 작곡했던 'Cheap thrills'는 자메이카의 댄스홀 래퍼 션 폴(Sean Paul)의 피처링에 힘입어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40대 여자 가수의 싱글 차트 1위는 마돈나의 'Music'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신보 < We Are Your Children >의 리드 싱글로 낙점된 'The greatest'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지난 6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한 게이 클럽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어 더욱 각별하다. 이쯤 되면 지금은 음악인 시아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탁월한 음감과 스킬, 개성을 두루 갖춘 보컬과 팝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내는 송라이팅은 단연 독보적이다. 여기에 퍼포머 매디 지글러를 통해 구현한 비주얼 요소가 그를 여타 가수들과 구분 짓는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을 동시에, 그것도 자신만의 컬러로 풍족하게 만족시킨다. 호주에서 온 세련된 '뽕'이 지금 영미 음악계를 뒤흔들고 있다.
장르와 성별, 시기를 막론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범 대중을 일시에 열광시킬 '핫' 감각, 다양한 취향의 듣는 이를 관통하는 '쿨' 뮤직. 한 해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가수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음악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가수들. 남다른 포지셔닝과 한 발 앞선 음악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톱 아티스트'입니다.
* 2016년 10월 IZM 기고 http://bit.ly/2cKtK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