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재 Jan 29. 2017

마돈나(Madonna) - 반항의 여신

팝의 여왕 마돈나의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 “그렇게 말했건만... 왜 다른 여자 아이들처럼 될 수 없는 거니?”

난 대답했어. “아뇨, 그건 내가 아니에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Rebel heart 中, < Rebel Heart >


 

독보적인 팝의 여왕 마돈나가 데뷔한 지 33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전 세계 많은 여가수들의 롤 모델이자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는 디스코와 댄스, 알앤비와 어덜트 컨템퍼러리, 일렉트로니카와 포크를 오가며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어왔고, 키치 패션과 콘 브라, 십자가 액세서리 등 일명 ‘마돈나 워너비’들을 탄생시키며 패셔너블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재 진행형 전설이 된 것이 아니다. 마돈나는 지난 30여 년간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논쟁거리가 될 만한 화두를 제시하며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MTV가 등장하고 남녀평등과 인종 차별 금지, 에이즈와 10대 미혼모, 동성애, 종교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설전이 오가던 격동의 80년대에 등장한 마돈나는 사회적 이슈를 끊임없이 건드렸다. 대단한 시대정신으로 터부에 도전한 것이 아닌 저항 그 자체를 수단 삼아 마케팅했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온 매체가 연일 그를 보도했고 교황청까지 그를 견제하고 나섰다. 금기에 도전하며 당연시되던 관습에 반기를 들었던 마돈나는 이미 록스타의 지위를 얻고 있었다.

 

"당신을 표현하세요, 스스로를 억누르지 말아요.

내가 뭘 잘못 말했나요?

어머, 내가 섹스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걸 몰랐네요."

-Human nature 中, < Bedtime Stories >




70년대부터 이어진 페미니즘 운동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던 남성우월주의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에 ‘처녀처럼, 마치 처음인 것처럼’ 날 만져달라 노래하는 마돈나의 ‘Like a virgin’이 불씨를 지폈다. 제 1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웨딩드레스에 보이 토이(boy toy : 나이 든 사람과 관계 맺는 미소년)가 적힌 벨트를 매고 바닥을 구르며 온 몸으로 섹스어필을 표현하던 그의 모습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정숙하지 못한 ‘창녀’라고 표현했고, 일부는 여성도 주체적인 사랑과 섹스를 논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처녀와 창녀로 여성을 나누던 양분법적 섹스 이데올로기에 정면충돌한 것이다.

 

성의 권력구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던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섹스 화신 마돈나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졌다. 사랑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소녀들에게 자신을 억누르지 말고 표현하라고 독려하는 ‘Express yourself’는 시작에 불과했다. 1990년 < Blond Ambition > 월드투어 무대에 빨간 침대를 설치한 그는 콘 브라를 입고 ‘Like a virgin’을 부르며 자위행위 퍼포먼스로 절정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했다. 당시 토론토에서는 공연 전 마돈나를 공연음란죄로 체포하겠다며 경찰이 출동했지만, 그는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보란 듯이 공연을 강행했고 심지어 이 모습을 다큐멘터리 필름에 담아 막대한 수익까지 올렸다.

 

뒤이어 발매된 히트곡 모음집 < The Immaculate Collection >의 신곡 ‘Justify my love’의 비디오는 MTV에서조차 방영이 금지될 정도로 적나라한 수위로 제작되었고, 결국 VHS 싱글로 발매되어 비디오 싱글 사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기조를 이어 그는 1992년 < Erotica >로 명명된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을 누드집 < SEX >와 함께 발매하는 극단의 파격을 선보였다. 흔히 남성의 시선에서 보는 여성의 누드가 아닌 페티시즘과 동성애 등 그야말로 섹스의 모든 것을 다룬 이 책은 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섹스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것이라는 마돈나의 주장이 투영된 이 책은 지극히 포스트 모더니즘다웠다.

 

"그래요. 난 천사도, 성녀도 아니에요.

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어요.

천국에서건 지옥에서건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살아갈 거예요."

-Survival 中, < Bedtime Stories >



마돈나가 다룬 주제는 성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돈나 이전 최고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의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를 훌륭하게 오마쥬한 ‘Material girl’에서는 물질만능주의를 여과 없이 다뤘고, 아이를 갖게 된 10대 소녀가 아빠에게 자신은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니 잔소리 말라고 소리치는 ‘Papa don’t preach’는 10대 미혼모 문제를 공론화했다. 그는 1987년 < Who’s That Girl > 월드투어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백드롭 화면에 백악관과 레이건 대통령, 격동하는 80년대의 영상을 담고 엔딩에 ‘Safe Sex’라는 문구를 띄우며 주제의식을 확고히 했다. 이후 투어 중 화면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것은 마돈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001년 9.11 테러 후 대테러 전쟁을 선포한 부시 정부에 맞서며 2003년 마돈나는 < American Life > 앨범을 출시했는데, 동명의 싱글 ‘American life’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보이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패션쇼에 빗댔다. 비디오에서 런웨이에 등장한 소년병과 전쟁포로, 피 흘리는 병사 등에게 환호하고 플래시를 터뜨리는 백인 관객들에게 마돈나는 물대포를 쏘고 부시 전 대통령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테러 집단을 향한 복수심에 강하게 사로잡혀있던 미국인들은 격렬하게 항의했고, 결국 천하의 마돈나조차 뮤직비디오를 철회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어진 < Re-Invention > 월드투어에서 ‘American life’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반전과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줬다.

 

마돈나는 자신을 페미니스트가 아닌 휴머니스트라고 불러달라고 했을 만큼 사람은 누구나 차별당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함을 노래했다. 팝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게이 아이콘인 그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되던 80년대부터 그들의 편에 섰다. 대표적인 게이 댄스였던 보깅을 'Vogue'를 통해 유행시키며 음지의 게이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는 것이라며 소수자들을 격려했다. 2012년 < The MDNA > 월드투어에서는 백스크린에 동성애로 왕따 당하다 자살한 어린 학생들의 사진을 띄우고 추모하며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임을 강조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그건 마치 작은 기도처럼 들려요

나는 무릎을 꿇어요.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가고 싶어요.

고요한 밤중에 난 당신의 힘을 느껴요

마치 기도처럼 내가 당신을 천국에 데려가겠어요."

-Like a prayer 中, < Like A Prayer >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마돈나에게 보수적인 종교는 넘고 싶은 또 다른 금기의 영역이었다. 데뷔 초부터 십자가를 액세서리로 활용하며 대중적으로 이를 유행시켰던 그는 1987년 < Who’s That Girl > 월드투어 도중 무대 스크린에 교황의 모습을 띄우며 처음으로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다. ‘Papa don’t preach’ 무대 도중이었는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대표적 인물로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를 지목한 것이다. 이에 격분한 교황은 이탈리아 팬들에게 그의 공연을 보이콧하라고 강력히 권고했으나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운집하며 공연은 성황리에 개최됐다.

 

종교계와의 갈등은 1989년 ‘Like a prayer’에서 본격화됐다. ‘Like a prayer’의 뮤직비디오에는 예수가 흑인으로 등장했고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불에 탔으며 마돈나의 손바닥에는 신성시 여기는 성흔(聖痕)이 찍혔다. 신을 찬미하는 가사는 관점에 따라 섹슈얼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성녀와 같은 이름의 가수가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섹스 심벌이라는 것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던 기독교인들은 마침내 대대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이들은 당시 마돈나와 광고 계약을 맺은 펩시를 보이콧하겠다고 나섰고 결국 펩시는 어마어마한 계약금만 지불한 채 마돈나와의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Like a virgin’ 이후 최대 논란을 불러일으킨 ‘Like a prayer’는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바티칸과 마돈나는 2006년 < Confessions > 월드투어에서 또다시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에이즈로 사망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위해 대형 크리스털 십자가에 매달려 ‘Live to tell’을 노래했다. 그는 좋은 취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가장 강력한 사랑의 상징인 십자가를 이용했다고 밝혔지만 교황청은 마돈나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공연을 중단하라고 촉구했고, 러시아의 마피아들은 그를 암살하겠다며 협박했다. 철의 여인 마돈나는 교황에게 공연 초대권을 보내는 것으로 응수했고, 모든 월드투어 일정을 변경 없이 강행하며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솔로 가수의 투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이게 바로 내 모습이에요.

당신이 날 좋아하든 말든

날 사랑하든지 떠나가든지

난 절대 멈추지 않을 거예요."

-Like it or not 中, <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

 

마돈나는 최근 새 앨범 < Rebel Heart >를 발매하며 여전한 반골 기질을 드러냈다. 그가 최근 돌파하고자 하는 터부는 여성에 대한 연령차별(ageism)이다. 50대 남성 배우, 가수가 잘 가꿔진 몸매를 과시하며 젊은 여성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쿨’하다고 여기면서, 50대 여성의 섹스어필은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이는 여성차별(feminism)과 결합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성녀-창녀 콤플렉스에 갇힌 보수적인 성 관념을 비웃듯 등장했던 마돈나는 5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며 나이 든 여성은 고상하고 점잖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영리하게 읽어내어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았고, 이를 음악에 녹여내며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던 팝의 여왕 마돈나의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장르와 성별, 시기를 막론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뮤지션은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범 대중을 일시에 열광시킬 '핫' 감각, 다양한 취향의 듣는 이를 관통하는 '쿨' 뮤직. 한 해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가수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음악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가수들. 남다른 포지셔닝과 한 발 앞선 음악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톱 아티스트'입니다.


* 2015년 5월 IZM 기고 http://bit.ly/1UwJy5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