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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24K Magic]

1990년대를 향한 21세기의 팝 노스탤지어

Bruno Mars [24K Magic]

1990년대를 향한 21세기의 팝 노스탤지어



MTV 시대에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있었다면 오늘날의 유튜브(YouTube) 시대에는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있다. 하와이 출신의 그는 근사한 가창력과 칼 같은 박자감을 바탕으로 한 춤 솜씨는 물론, 뛰어난 창작력과 악기 연주 능력까지 갖춘 만능 재주꾼이다.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으니 요즘 세대의 언어로 ‘사기 캐릭터’와 다름없다. 다수의 언론은 이러한 그를 가리켜 ‘제2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별명을 붙이길 주저하지 않는데, 잭슨의 공인된 별명이 ‘팝의 황제’임을 생각하면 현재 음악계에서 브루노 마스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결코 허울뿐인 칭호가 아니다. 2009년에 래퍼 비오비(B.o.B)와 함께한 ‘Nothin’ On You’ 이후 그는 현재까지 7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렸고, 총 14곡의 톱 10 히트곡을 배출했다. 남성 가수로서는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이후 최단 기간 내에 가장 많은 1위 곡을 탄생시킨 기록이다. 데뷔 앨범 [Doo Wops & Hooligans](2010)와 소포모어 앨범 [Unorthodox Jukebox](2012) 단 두 장으로 기록한 전 세계 음반 판매량은 총 1천만 장을 웃돈다. 2014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공연자로 나서며 형성된 파죽지세의 분위기는 마크 론슨(Mark Ronson)과 함께한 ‘Uptown Funk’(2014)의 대히트로 절정을 맞았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펑크(Funk)의 흐름을 그대로 재현한 노래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4주 연속 1위에 머물렀고, 지금까지 총 5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2015년 연간 차트 정상에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질주였다.


‘Uptown Funk’ 신드롬은 브루노 마스에게 많은 영광과 동시에 깊은 고민을 안겼다고 전해진다. 기타와 피아노, 드럼을 직접 연주하며 곡을 쓰는 그는 ‘Uptown Funk’의 대성공 이후 한동안 곡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2016년 2월경 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던 새 앨범의 발매가 그해 11월까지 밀린 이유다. 인기 DJ이자 프로듀서인 스크릴렉스(Skrillex)와 작업한 곡을 포함, 수록이 유력했던 여러 곡이 앨범에서 누락되었고, 편곡과 사운드 디자인에도 마지막까지 수정을 거듭하며 신중을 기울였다. 1, 2집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앨범에는 ‘더 좋은 노래를 쓰고 싶고, 더 좋은 공연을 하고 싶고, 더 멋진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담겼다. 2016년 11월에 발매되어 2017년 한 해의 곳곳을 수놓은 브루노 마스의 세 번째 앨범 [24K Magic]의 이야기다.



Inside of [24K Magic]

“9곡으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면 19곡을 싣는다 해도 무슨 의미겠어요.”라는 브루노 마스의 당찬 한 마디가 [24K Magic]의 꽉 찬 매력을 설명한다. 음반의 주원료는 그가 어린 시절에 듣고 사랑에 빠졌던 알앤비(R&B)와 펑크(Funk) 사운드. 자신이 듣고 싶은 그루브, 스윙감을 빼곡히 채웠다는 앨범에는 지미 잼 앤 테리 루이스(Jimmy Jam and Terry Lewis), 뉴 에디션(New Edition)부터 보이즈 투 멘(Boyz Ⅱ Men)과 베이비페이스(Babyface) 등 당대를 사로잡은 알앤비 스타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을 정조준한 기획의 결과다.


방향성이 뚜렷한 만큼 [24K Magic]은 이전 두 장의 앨범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데뷔 앨범과 뒤이은 2집이 로큰롤 골격에 포크, 팝 발라드, 댄스 등을 매치했다면, 본 음반은 언뜻 ‘Uptown Funk’의 확장판처럼 느껴질 만큼 펑크(Funk), 디스코의 색깔이 강하다. 응집력 측면에서 좋은 통일성을 갖춘 장르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스타일 변화에는 프로듀싱 팀의 재정비도 한몫을 했다. 브루노 마스의 앞선 디스코그래피를 함께한 프로듀싱 팀 스미징톤스(The Smeezingtons)를 샴푸 프레스 & 컬(Shampoo Press & Curl)로 업그레이드한 것. 브루노 마스와 필립 로렌스(Philip Lawrence), 아리 르빈(Ari Levine)의 스미징톤스에서 아리 르빈이 빠지고 브로디 브라운(Brody Brown)이 합류하면서 한층 견고한 프로듀싱 팀으로 거듭났다.


앨범과 동명의 리드 싱글이자 첫 번째 트랙인 ‘24K Magic’에는 본 앨범의 지향점이 담겨있다. 미스터 토크박스(Mr. Talkbox)의 이펙터로 꾸민 인트로와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의 ‘The message’가 떠오를 정도로 지극히 1980년대 적인 신시사이저 리프, 쉴 새 없이 댄스 그루브를 주조하는 촘촘한 비트에 호쾌한 브루노 마스의 보컬 퍼포먼스까지. 원형에 가까운 레트로 작법에 가수의 뛰어난 기량을 오롯이 녹여낸 이 노래는 음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에 해당한다. ‘Uptown Funk’ 이후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24K Magic’은 직전의 상승세를 무난히 이어가며 빌보드 싱글 차트 4위까지 올랐고, 싱글 발매 이듬해인 2017년에만 52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2017년에 미국 내에서 일곱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 됐다.



미드템포 비트에 앙증맞은 신시사이저로 포인트를 준 ‘Chunky’를 지나면 고전 소울(Soul)의 창법으로 취입한 ‘Perm’이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빠른 박자에 맞춰 랩을 하듯 가사를 내뱉고 거센소리로 마구 질러대는가 하면, 날 것 그대로의 샤우팅도 그럴듯하게 소화하는 브루노 마스의 가창은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유산과 같다. 반면 1990년대 초반의 힙합,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비트에 서정적 알앤비를 접목한 ‘That’s What I Like’는 비교적 최신의 트렌드인 트랩(Trap)의 요소까지 일부 차용하며 신구의 조화를 꾀했다. 과거와 현재를 매끈히 엮은 노래는 싱글 발매 이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6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와 함께 2017년에 미국에서 네 번째로 많이 팔린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빌보드 차트 10위권에서만 무려 28주를 머물렀으니, 이 노래가 받은 거대한 사랑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1990년대 보컬 그룹 샤이(Shai)의 1993년 히트곡 ‘Baby I’m Yours’를 샘플링 한 ‘Straight Up & Down’과 21세기를 대표하는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제프 베스커(Jeff Bhasker)가 작곡에 참여한 ‘Calling All My Lovelies’, 스무 개가 넘는 다른 편곡 버전을 만들면서까지 공을 들였다는 ‘Finesse’ 모두 앨범을 탄탄하게 지탱하는 수록곡이다. 그러나 앨범의 가치를 높이는 하이라이트는 단연 ‘Versace On The Floor’와 ‘Too Good To Say Goodbye’다. 보이즈 투 멘과 베이비페이스로 대표되는 1990년대식 발라드 문법이 브루노 마스 특유의 호소력 짙은 멜로디 라인을 만나 색다른 결과물로 재탄생했다. 키보드 등 악기 활용부터 곡의 전개까지 매우 복고적인 형태의 곡에 개성 강한 해석과 세련된 코드 진행이 더해져 고유성을 획득한 것이다. 덕분에 두 곡은 ‘When I Was Your Man’, ‘Talking To The Moon’ 등 기존 브루노 마스의 발라드와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Too Good To Say Goodbye’에는 재미있는 제작 비화가 있다. 노래는 브루노 마스가 수년 전에 써둔 곡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완성을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스튜디오에 놀러 온 베이비페이스에게 이 노래의 후렴을 피아노로 들려줬고, 단숨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베이비페이스가 곡 작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 앨범에 실을 수 있었다. 협업 후 브루노 마스는 베이비페이스를 자신의 ‘영웅’이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소회를 밝혔다. “음악은 제게 감각적인 거예요. 가사나 비트, 새로운 드럼 머신 같은 것들 이전에 그냥 느낌이죠. 베이비페이스는 이 방면에서 최고였어요. 마치 음정과 코드를 어떻게 집어넣고 빼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죠.”



2017년을 빛낸 재창조의 모범 사례

2016년 말에 발매된 [24K Magic]은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으며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음반은 앨범 차트와 싱글 차트를 동시에 휩쓸었고, 2017년 3월 시작된 [24K Magic World Tour]는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지난 2017년 11월에 열린 제45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에선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석권하며 활약상을 인정받았고, 2018년 1월에 열리는 제60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는 6개 부문에 후보에 지명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후보에 오르기만 해도 영광이라는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24K Magic]), ‘올해의 노래상’(‘That’s What I Like’), ‘올해의 레코드상’(‘24K Magic’) 등 주요 부문에 각각 다른 작품으로 이름을 올려 더욱 의미가 있다.


21세기를 전후로 레퍼런스와 오마주는 대중음악에서 빠트릴 수 없는 기법이 됐다. 그 경향은 현대에 이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있다. 완전히 색다른 음악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지자, 이미 검증된 스타일을 인용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문법에 갇히거나 색깔 없는 단순 재현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4K Magic]은 이 지점에서 남달랐다. 경험과 애정을 기반에 둔 접근, 현대적 감각의 영민한 송라이팅이 주효했다. 기막힌 보컬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해석을 갖춘 것도 결정적 한 수다. [24K Magic]은 브루노 마스의 위치를 다시 한번 공고히 한 음반이자 공허한 레트로 남발 풍조를 환기한 모범 사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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