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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M A  N   I    A]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팝 펑크 아이콘의 야심작

Fall out Boy [M A    I    A]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팝 펑크 아이콘의 야심작



‘폭발하는 젊음의 사운드’라 불리던 록은 어느 순간 동력을 잃었다. 2000년대를 전후로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에 패권을 넘겨주면서부터다. 신인 랩스타, DJ가 등장해 인기를 얻고 세력을 키우는 동안 신진 록스타의 계보는 사실상 끊긴 지 오래다. 한때를 호령했던 굴지의 밴드 중 명맥을 잇고 있는 팀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의 존재감은 각별하다. 시카고에서 결성된 폴 아웃 보이는 2003년에 이모코어(Emocore; Emotional Hardcore), 팝 펑크(Pop Punk)의 선두주자로 등장해 빠르게 궤도에 올랐고, 데뷔 15년에 이르는 현재에도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 등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얻었던 팀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인 위치다.


남다른 지속력은 부지런히 쌓아온 특유의 스타일에 기인한다. 인디 시절에 발매한 1집 [Take This To Your Grave](2003)와 메이저 데뷔 앨범 [From Under The Cork Tree](2005)는 직선적 사운드와 분명한 후렴으로 대표되는 팝 펑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었다. 거친 음향과 고감도의 멜로디, 댄서블한 진행을 앞세운 이들은 단숨에 주목해야 할 밴드로 떠올랐다. 반면 팀에게 처음으로 전미 앨범 차트 1위를 안겨준 3집 [Infinity On High](2007)와 뒤이은 4집 [Folie à Deux](2008)는 이러한 전형에서 탈피하려는 과도기적 앨범이었다. 하드 록부터 힙합, 오케스트라 등을 동원해 외연을 넓히고자 한 이 시기는 지금의 폴 아웃 보이 양식의 주요한 밑바탕이 됐다. 


5년의 휴식 후 돌아온 밴드는 5집 [Save Rock And Roll](2013)과 6집 [American Beauty/American Psycho](2015)를 모두 차트 1위에 올리며 한결같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이전 앨범들을 통해 시도한 스펙트럼의 확장을 온전히 이룬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초기의 이모 코어부터 뉴 웨이브, 아레나 록과 댄스 록 등을 한데 모아 고유의 ‘폴 아웃 보이 스타일’을 확립한 것이다. 힙합 소스와 브라스 세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등 다양한 소리 요소를 운용하는 솜씨도 정교해졌다. 한 곡 한 곡 강력한 팝 멜로디를 탑재한 것은 물론이다. 디스코그래피가 늘어날수록 노련미를 더한 리드 보컬 패트릭 스텀프(Patrick Stump)의 가창도 이들만의 개성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Centuries’, ‘Immortals’, ‘Uma Thurman’, ‘Irresistible’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성공리에 마무리된 [American Beauty/American Psycho] 활동은 멤버들에게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불어넣었다. 당시의 강한 의지는 월드 투어가 끝난 지 채 1년 만인 2017년 4월, 각종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새 앨범에 관한 청사진을 공개한 데서 엿보였다. 첫 싱글 ‘Young And Menace’를 발표하고 2017년 9월 15일에 통산 7집 [M A    I    A]를 발매할 것임을 알린 이들은 또 다른 신곡 ‘Champion’을 6월에 공개하며 새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이어갔다. 제동이 걸린 것은 신보 발매를 한 달 앞둔 8월이었다. 밴드의 프런트 맨 패트릭 스텀프는 “앨범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우리가 그동안 매우 성급했던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2018년 1월까지 공개를 연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3년 만의 새 앨범 [M A    I    A]는 5, 6집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한층 능숙하게 팝과 결합한 모양새다. 종래의 폭발력, 댄서블 리듬 패턴, 패트릭 스텀프의 강렬한 보컬 퍼포먼스, 톡 쏘는 후렴의 맛을 대부분 이어가면서 일렉트로닉을 포함한 팝 사운드를 입힘으로써 전작에서 한 발 나아갔다. 첫 싱글로 공개된 ‘Young And Menace’가 대표적이다. 앨범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노래는 흡사 스크릴렉스(Skrillex)로 대표되는 덥스텝(dubstep)을 연상시킬 만큼 탄력 있는 당김음과 거친 전자음, 보컬 샘플로 장식한 후렴이 전에 없이 인상적이다. 주류의 음악 트렌드를 명민하게 캐치하고 자신들의 음악에 도입한 감각의 승리다. 팀의 베이시스트 피트 웬츠(Pete Wentz)의 말에 따르면, 과거와 다른 스타일의 곡이 설왕설래를 일으킬 것을 예상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곡이었기에 자신있게 첫 번째 싱글로 공개했다고 한다.


‘Young And Menace’에서 폴 아웃 보이만의 팝 멜로디를 듣지 못해 아쉽다면 두 번째 싱글로 공개된 ‘Champion’을 권한다. ‘Young And Menace’와 함께 음반을 대표하는 곡으로 꼽을 만한 ‘Champion’은 선명한 전개와 기타 리프, 잘 들리는 선율로 출중한 매력을 갖췄다. 이는 작곡에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시아 풀러(Sia Furler)의 공이기도 하다. 여기에 패트릭 스텀프의 목소리와 육중한 비트, 자신을 ‘챔피언을 믿지 않는 자들의 챔피언’이라 칭하며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가사가 어울리자 젊은이의 앤썸으로 손색없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한편 이 곡은 지난 12월에 한국의 보이 밴드 방탄소년단(BTS)의 멤버인 RM이 랩 피쳐링에 참여한 리믹스 버전이 싱글로 공개됐는데, 원곡의 서사에 호소력을 더했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시너지를 발휘해 평단과 대중의 높은 주목을 받았다.



수록곡으로 눈을 돌려도 앨범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파워풀한 도입부로 귀를 사로잡는 첫 곡 ‘Stay Frosty Royal Milk Tea’는 평소보다 볼륨을 높여 들어보자. 일렉트로닉 루프와 공격적인 퍼커션의 프로그래밍에서 이들이 사운드 디자인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건반과 그런지 기타 사운드를 뼈대 삼은 ‘The Last Of The Real Ones’와 휘파람 리프로 개성을 획득한 ‘HOLD ME TIGHT OR DON’T’는 앨범에서 가장 빼어난 코러스를 지닌 곡으로, 이미 그 히트 잠재력을 인정받아 각각 세 번째와 네 번째 싱글로 발매된 바 있다.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멜로디로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폴 아웃 보이의 저력이 이 두 곡에 꿈틀댄다. 


[M A    I    A]의 확실한 강점은 구석구석 견고해진 내실이다. 오르간과 종소리, 가스펠 풍 합창을 활용한 대곡 지향의 ‘Church’는 이들이 대형 편성에도 끄떡없음을 증명하고, 느린 템포로 록발라드의 형태를 취한 ‘Heaven’s Gate’에선 물오른 패트릭 스텀프의 가창력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전부터 돋보였던 밴드의 장르 간 결합 시도는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부르나 보이(Burna Boy)와 함께한 ‘Sunshine Riptide’의 이야기다. 부르나 보이가 지닌 레게, 댄스홀의 컬러가 폴 아웃 보이의 팝 록과 만나 독특하고 아름다운 퓨전이 탄생했다. 그동안 밴드가 주력한 속도감 넘치는 댄스 록과는 다른 지점에서 그루브를 그리는 노래는 폴 아웃 보이의 새로운 면을 조명한 뜻깊은 곡이다.


본 앨범에서 이전과 같은 빠르고 뾰족한 노래들을 기대했다면 꽤 당황할 수 있겠다. 기존의 과격하고 통쾌한 작법보다는 한결 정돈된 톤과 구성미 위주의 접근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베이시스트 피트 웬츠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두 장의 앨범을 연이어 만든 탓에 그 기간이 마치 거대한 한 장의 앨범을 작업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패트릭이 ‘Young And Menace’를 처음 들려줬을 때 몹시 획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 역시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고, 그래서 이번 앨범은 음향 측면에서 지난 두 앨범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전에 공표한 발매 계획을 철회하고 작업 중이던 프로젝트를 과감히 뒤엎을 만큼 팀의 진일보에 뜻을 모은 것이다.



심기일전 끝에 내놓은 [M A    I    A]는 폴 아웃 보이의 실속을 다지는 야심작이다. 올드팬을 열광케 할 기존의 색깔과 팀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영리한 시도가 근사하게 조화를 이뤘다. 록이 저무는 시대에 일곱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도 여전히 그 앞날이 궁금한 밴드는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을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자가 최종의 승자’라는 말이 떠오를 때쯤, ‘Champion’의 가사가 머리를 스친다. “만약 내가 버텨낸다면, 내가 살아남는다면,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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