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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Made In The A.M.]

글로벌 톱 보이 밴드가 가장 빛나던 순간

One Direction [Made In The A.M.]

글로벌 톱 보이 밴드가 가장 빛나던 순간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리암 페인(Liam Payne), 나일 호란(Niall Horan), 루이 톰린슨(Louis Tomlinson), 제인 말리크(Zayn Malik). 원 디렉션(One Direction)으로 뭉친 영국과 아일랜드 출신의 다섯 청년은 2010년대 글로벌 음악 시장을 이끈 주역 중 하나다. 2010년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X-Factor)]에서 결성되어 이듬해에 데뷔한 이들은 활동 내내 정상을 지켰다. 테이크 댓(Take That), 보이존(Boyzone), 웨스트라이프(Westlife)로 이어지는 영국, 아일랜드 출신 보이 밴드 계보 중에서도 원 디렉션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수많은 ‘디렉셔너(Directioner)’를 탄생시킨 원 디렉션 신드롬은 본국과 유럽 전역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 일대까지 휩쓸었다. 특히 앞선 보이 그룹들이 이루지 못한 이들의 전미 제패는 비틀스(The Beatles)의 미국 상륙에 견줄 만했다. 전형적인 보이 밴드와는 거리가 멀었던 음악도 특징이었다. 이들은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 엔싱크(NSYNC)로 대표되는 미국식 댄스 팝이 아닌 록에 기초한 작법으로 다수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거침없는 쾌속 질주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5년이었다. 정규 4집 [Four](2014) 프로모션을 위한 월드투어 [On The Road Again Tour](2015)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제인 말리크가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데뷔 직후부터 5년간 쉬지 않고 앨범 제작과 월드 투어를 연달아 진행하며 누적된 피로의 부작용이었다. 남은 네 명의 멤버들은 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히며 투어와 새 앨범 작업을 이어갔지만, 신보 활동 후 이들이 잠정 휴식기에 돌입할 것이라는 소문은 끊이질 않았다. 루머는 어느 정도 사실과 부합했다. 실제로 원 디렉션은 본 앨범 [Made In The A.M.](2015)을 끝으로 무기한 활동 중단을 선언했고, 일환의 콘서트 투어 역시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그룹 단위의 활동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멤버 이탈에 따른 우려와 달리 앨범에서 확인한 네 명의 호흡, 보컬 에너지가 전과 비교해 조금도 뒤지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컸다.



원 디렉션 디스코그래피의 정점 [Made In The A.M.]

통산 다섯 번째이자 현재까지 발매된 이들의 마지막 음반인 [Made In The A.M.]은 그동안의 디스코그래피를 아우르는 최상의 결과물이다. 초기부터 고수한 경쾌한 팝 록 스타일부터 유행을 반영한 팝송, 브릿 팝(Brit Pop)과 체임버 팝(Chamber Pop), 어쿠스틱과 발라드 등을 다양하게 배치해 감상의 폭을 넓혔고, 단숨에 라디오를 강타할 만한 선율과 중독성 강한 후렴으로 인기 차트를 겨냥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노련해진 멤버들의 보컬 표현력과 하모니는 본 앨범에서 정점을 보였는데, 주요 가창 멤버였던 제인 말리크 없이 이룬 성취였기에 더욱 놀라웠다.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미국의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 (Rolling Stone)]이 앨범에 별 다섯 개 중 네 개를 부여하며 호평하는 등 평단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대중 역시 뜨겁게 호응했다. 앨범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차트 1위,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 2위에 올랐고, 11월 둘째 주에 발매된 음반임에도 2015년 전 세계 연간 판매 순위에서 9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이 밴드로서는 드물게 비평과 흥행을 모두 충족한 앨범이었다.


[Made In The A.M.]은 원 디렉션의 지난 어떤 앨범보다도 멤버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17곡이 수록된 디럭스 에디션을 기준으로 ‘Hey Angel’, ‘Drag Me Down’, ‘Infinity’, ‘I Want to Write You a Song’ 등 4곡을 제외한 모든 수록곡의 크레디트에 각기 다른 멤버들이 이름을 올렸다. 전작 [Four]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창작 지분이 본 앨범에서 더욱 확장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멤버들은 음반 발매 후 출연한 한 TV쇼에서 대다수 곡에 직접 가사와 선율을 붙이며 주도적으로 참여한 끝에 지금까지의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됐다고 밝혔다. 물론 작곡가 줄리안 버네타(Julian Bunetta) 등 오랜 조력자들의 공을 빼놓을 수 없지만, 멤버들의 솔로 작업물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 현재 시점에서 보면 각자의 스타일과 취향이 상당수 반영되고 잘 어우러진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성장과 진화의 측면에서는 단연 리드 싱글 ‘Drag Me Down’이 돋보였다. ‘What Makes You Beautiful’, ‘Live While We’re Young’ 등 이전 음반들의 타이틀곡이 밝고 활기찬 정서를 담았다면, ‘Drag Me Down’은 미디엄 템포에 단조 선율을 탑재해 소년 아닌 성인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부각하고자 했다. 마치 영국의 록 밴드 폴리스(The Police)의 1978년 히트곡 ‘Roxanne’을 연상시키는 탄력적 기타 운용과 은근한 댄스 그루브, 해리 스타일스의 강성 보컬을 중심으로 개편된 넷의 새로운 하모니가 세상을 사로잡았고 발매와 함께 차트 상단으로 직행했다. 노래는 영국과 아일랜드, 호주와 뉴질랜드 등 12개 국가에서 인기 차트 1위에 올랐고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3위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노래는 ‘새로운 원 디렉션’의 탄생 선언과도 같았다.


두 번째 싱글로 공개됐던 ‘Perfect’ 또한 주목해야 할 곡이다. 이펙터를 가한 기타 사운드와 부피감 큰 퍼커션으로 음향을 디자인하고 매끈한 팝 멜로디를 붙인 노래는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히트곡 ‘Style’(2014, [1989] 수록)과 닮은 것으로 화제가 됐다. 유사한 비트와 조성, 특별한 편곡 없이 이어붙이기만 해도 한 곡처럼 어울리는 선율, 군데군데 서로 호응하는 가사가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두 곡의 관계에 눈길이 쏠린 것은 해리 스타일스와 테일러 스위프트가 한때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Style’이 해리 스타일스의 이름을 딴 곡이며, 그와의 일화를 담은 노래란 것이 기정사실이었던 상황에서 마치 그에 대한 답가처럼 들리는 ‘Perfect’가 발매되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에 대해 곡 작업에 참여한 해리 스타일스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지만, 노래의 강한 매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변 정황은 영국 차트 2위,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이르는 히트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앨범의 면면은 웰메이드 수록곡으로 가득하다. 콜드플레이(Coldplay) 식의 브릿 팝으로 음반의 포문을 여는 ‘Hey Angel’, 싱어롱을 유도하는 특유의 코러스가 인상적인 ‘Infinity’와 ‘End of the Day’는 이들의 성공이 탄탄한 실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웅변한다. 현악기의 감각적 활용이 돋보이는 ‘If I Could Fly’, 록 발라드의 전통 구성을 따른 ‘Long Way Down’과 ‘Love You Goodbye’, 어쿠스틱 팝 ‘I Want to Write You a Song’ 등 감성 발라드의 흡인력도 적지 않다. [Made In The A.M.]의 세 번째 싱글이자 현재까지 원 디렉션이 발표한 마지막 싱글이 된 ‘History’는 시종 밝은 악곡의 분위기와 그와 상반되는 뭉클한 메시지, ‘떼창’에 최적화된 후렴의 합이 상당하다. 이들은 2015년 12월, 자신들이 결성된 [엑스 팩터]에서 휴식 전 마지막 무대를 가지며 이 노래를 불러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Made In The A.M.]의 하이라이트는 과거의 유산을 영리하게 재활용한 업 템포 곡들에서 발견된다. ‘The Lion Sleeps Tonight’가 떠오르는 두왑(Doo-Wop) 코러스를 활용해 듣는 재미를 높인 ‘Never Enough’, 1970년대의 엘튼 존(Elton John)과 해리 닐슨(Harry Nilsson) 등을 소환하는 체임버 팝 ‘Olivia’,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흔적이 역력한 ‘What a Feeling’, 블론디(Blondie)와 언더톤스(The Undertones)를 매쉬 업 했던 ‘One Way or Another (Teenage Kicks)’의 연장선인 파워 팝(Power Pop) ‘Temporary Fix’가 모두 강력하다. 특히 ‘What a Feeling’의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후렴의 아름다운 화음이 매우 근사한데, 그 매력을 증명하듯 2015년 말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이 독자를 상대로 진행한 ‘원 디렉션 최고의 노래’ 투표에서는 이 노래가 여타 타이틀곡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오래도록 기억될 궁극의 앨범

[Made In The A.M.]은 앨범 단위의 짜임새와 곡 단위의 신선함을 겸비한 수작이다. 원 디렉션의 최고작일 뿐 아니라, 근대의 보이 밴드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퀄리티다. 치열했던 5년의 활동 끝에 기약 없는 침묵에 들어간 것이 더욱 아쉬운 이유다. 한 방향을 바라보던 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지금은 이른 시일 내의 재결성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나일 호란, 리암 페인 등 멤버들이 각종 인터뷰를 통해 ‘재결합은 시간문제일 뿐, 반드시 다시 뭉칠 것’이라 지속해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말대로 언젠가 팀이 신보로 돌아오기 전까지 [Made In The A.M.]은 원 디렉션이 가장 눈부시게 빛나던 모습을 포착한 음반으로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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