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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Speak Your Mind]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싱어송라이터의 데뷔작

Anne-Marie [Speak Your Mind]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싱어송라이터의 데뷔작



2016년의 ‘Rockabye’ 열풍을 기억한다. 현악기의 감성적 활용으로 이름을 알린 영국의 일렉트로닉 그룹 클린 밴딧(Clean Bandit)이 발표한 노래는 영국과 호주를 포함,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차트 1위에 올랐고,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도 9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팀의 대표곡이었던 ‘Rather Be’(2014)의 기록을 앞서는 것이었다. 경쾌한 업 비트와 특유의 사운드,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자메이카 출신의 래퍼 션 폴(Sean Paul), 그리고 생소한 이름의 보컬리스트 앤 마리(Anne-Marie)의 조합이 신선했다. 특히 전에 들어본 적 없는 음색으로 존재감을 뽐낸 앤 마리의 공이 컸다.


1991년 영국 에식스주에서 태어난 앤 마리는 어려서부터 예체능적 재능을 보였다. 6살의 나이에 뮤지컬 [레미제라블] 무대에 올랐고, 12살에는 뮤지컬 [휘슬 다운 더 윈드]에 출연했다. 10대 시절에는 가라테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단순히 취미로 즐긴 수준이 아니라 유수의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의 실력자였다고 하니, 타고난 끼가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을 수련하고 집중하는 힘을 길러준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가라테 선수로서의 경력이 가수로서 경력을 이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자평했다.


넘치는 재능은 곧 앤 마리를 음악계로 이끌었다. 팝의 거장 엘튼 존(Elton John)이 이끄는 매니지먼트사 로켓 뮤직(Rocket Music)은 그의 데모 테이프를 듣고는 주저 없이 계약을 체결했고, 레이즈드 바이 울브스(Raized By Wolves), 고르곤 시티(Gorgon City) 등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들은 그를 게스트 보컬로 초청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영국의 일렉트로닉 밴드 루디멘탈(Rudimental)은 결국 그들의 두 번째 앨범 [We The Generation](2015)에 앤 마리를 주요 피처링 보컬로 섭외하기에 이른다. 음반 제작 당시 자신 명의의 오리지널 송 한 곡도 없던 신인에게 앨범 14곡 중 4곡을 맡긴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숨에 주목받는 차세대 팝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다.



한 번 궤도에 오르자 커리어는 급물살을 탔다. 루디멘탈과의 협업 직전에 발매한 첫 EP [Karate](2015)가 발표 자체에 의미를 둔 수준이었던 것과 달리, 이후 발표한 일렉트로닉 팝송 ‘Alarm’(2016)은 유럽 전역에서 반응을 얻으며 그의 이름을 알렸다. ‘Rockabye’로 각국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고는 솔로 곡 ‘Ciao Adios’(2017)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댄스홀 장르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와 바람을 피운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통쾌한 가사로 영국 차트에서 9위까지 오른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DJ 마시멜로(Marshmello)와 함께한 ‘Friends’로 다시 한번 주요 국가의 차트를 접수했다. 특히 모처럼 빌보드 차트에서도 25위까지 오르며 저력을 증명했다.


제대로 된 앨범도 내기 전인 신인으로서는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송라이팅 실력도 준수했지만,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목소리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리아나(Rihanna)의 등장 이후 리타 오라(Rita Ora), 제스 글린(Jess Glyne)부터 두아 리파(Dua Lipa)에 이르는 최근 여성 팝스타의 흐름과도 부합했다. 정통파 보컬리스트는 아니지만 탄탄한 기본기와 트렌디한 음색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겼다. 유행을 십분 반영한 사운드 메이킹, 친근한 멜로디도 수준급이었다. 이렇게 2년에 가까운 치열한 예열 끝에 앤 마리는 자신의 색깔을 오롯이 담은 본 작 [Speak Your Mind]를 세상에 내놓았다.



[Speak Your Mind]

아티스트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지만 미숙한 점은 찾기 힘들다. 이미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완벽히 파악했다는 듯, 매끈하고 정교한 만듦새다. 과하지 않은 일렉트로니카를 주요 재료로 밑그림을 그리고, 이에 어울리는 가창으로 목소리의 맛을 살렸다. 특급 제작진의 참여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에드 시런(Ed Sheeran)과 줄리아 마이클스(Julia Michaels)가 작곡에 참여했고,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 등을 제작한 스티브 맥(Steve Mac), 이기 아젤리아(Iggy Azalea)와의 작업으로 대표되는 인비저블 멘(The Invisible Men), 드레이크(Drake)와 안정된 호흡을 보였던 나나 로그스(Nana Rogues),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 두아 리파 등의 곡을 작곡한 에밀리 워렌(Emily Warren)을 비롯한 베테랑들이 모여 앨범의 완성도를 담보했다.


첫 곡 ‘Cry’를 비롯해 앨범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활용한 슬로우 템포의 곡들이 중심을 잡는다. 공간감이 큰 전자 음향과 캐치한 멜로디를 배치하고, 매력적인 보컬 톤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다. 솔로 곡으로는 처음으로 그를 세상에 알렸던 ‘Alarm’, 서정성을 극대화한 ‘Then’, 섬세한 가창에 역점을 둔 ‘Some People’이 그렇다. 그 사이사이를 채우는 건 최신의 EDM 경향을 따른 곡들이다. 중간 박자의 은근한 댄서블 진행과 총성 효과음을 활용한 것에서 엠아이에이(M.I.A.)의 히트곡 ‘Paper Planes’(2007)가 떠오르는 ‘Trigger’, 달콤한 건반 사운드를 축으로 한 전개가 인상적인 ‘Perfect’, 프레이즈의 반복을 통해 중독성을 획득한 ‘Bad Girlfriend’가 그 예다. 이러한 트랙 배열의 균형감에서 오는 감상의 재미는 요즘 언어로 ‘단짠단짠’에 버금간다.


앨범 발매 전 싱글로 공개한 ‘Ciao Adios’와 ‘Friends’는 [Speak Your Mind]의 하이라이트다. 음악적 완성도와 더불어 앤 마리만의 독특한 보컬 퍼포먼스를 만끽할 수 있는 곡이기 때문. 탄력 있는 비트와 이국적인 선율이 근사한 ‘Ciao Adios’에서는 빠른 템포에도 매끄럽게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솜씨가 빛난다. 특히 다소 거센 질감의 진성과 대비되는 가성의 매력이 상당하다.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해 랩에 가까운 보컬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EDM의 드롭으로 흘러가는 ‘Friends’는 다채로운 구성과 그에 걸맞은 싱잉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에 마지막에 흐르는 지 펑크(G-Funk, Gangster Funk) 풍 신시사이저가 방점을 찍는다. 뛰어난 송라이팅, 프로덕션의 승리다.


나머지 곡과는 또 다른 의외의 매력을 느끼기엔 ‘2002’와 ‘Machine’이 적합하다. 팝 슈퍼스타 에드 시런과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줄리아 마이클스가 작곡에 참여한 ‘2002’에서 앤 마리는 11살이었던 2002년의 여름을 불러내 추억을 곱씹는다. 그는 마치 스스로 어른인 것 같았던 당시의 기억을 꺼내기 위해 제이지(Jay Z)의 ‘99 Problems’(2003), 엔싱크(NSYNC)의 ‘Bye Bye Bye’(2000),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Baby One More Time’(1998) 등 그 무렵의 히트곡을 인용해 재미를 더했다. 당장 에드 시런이 불러도 위화감이 없을 듯한 어쿠스틱 팝이 앤 마리와 이루는 케미스트리도 제법 훌륭하다. 일렉트릭 기타와 키보드의 프로그래밍이 조화를 이룬 ‘Machine’은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골든 레퍼토리를 연상케 할 만큼 멋스러운 코러스를 가졌다. 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차세대 팝 시장을 이끌어갈 싱어송라이터

앤 마리는 ‘Rockabye’로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자신의 영토를 넓히고 있다. 기반이 된 감각적 송라이팅과 유니크한 목소리는 최근의 신예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이미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여러 뮤지션들이 그와 협업을 마쳤고, 에드 시런은 2017년부터 진행 중인 월드 투어의 유럽 일정 중 거의 모든 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앤 마리에게 맡겼다. 지난해 두아 리파가 첫 번째 앨범 [Dua Lipa]로 자신의 브랜드를 공고히 했다면, 올해 매스컴과 대중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오르내릴 이름은 마침내 첫 앨범 [Speak Your Mind]를 발매하는 앤 마리가 될 공산이 크다. 그가 보여줄 놀라울 음악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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