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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n 29. 2018

[Voicenotes]

한층 성숙해진 찰리 푸스의 새로운 챕터

Charlie Puth [Voicenotes]

한층 성숙해진 찰리 푸스의 새로운 챕터



2015년 개봉한 영화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에 삽입된 ‘See You Again’은 영화 팬과 음악 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곡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는 애틋한 노래는 주연 배우 폴 워커(Paul Walker)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제작진과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팬들을 위로했고, 즉각 미국 빌보드 차트를 비롯한 글로벌 히트로 이어졌다. 노래가 인기를 얻자 사람들의 시선은 래퍼 위즈 칼리파(Wiz Khalifa)와 함께한 신인 보컬리스트 찰리 푸스(Charlie Puth)에게 쏠렸다. 커버 곡을 주로 부르던 유튜버 출신이라는 이력, 호감형 외모와 블루 아이드 소울 보컬이 먼저 이목을 끌었고, 곡을 직접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송라이팅 능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영화 주제곡 공모에서 절친한 친구를 잃은 경험을 녹여낸 노래로 수많은 경쟁자를 제친 그는 그렇게 대중과 마주했다.


성대하게 열어젖힌 메인스트림 커리어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메간 트레이너(Meghan Trainor)와 함께 모타운 사운드를 재현한 ‘Marvin Gaye’, 매력적인 멜로디로 라디오를 사로잡은 ‘One Call Away’, 팝 가수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호흡을 맞춘 ‘We Don’t Talk Anymore’ 등 싱글로 발표한 곡들이 모두 각기 좋은 성적을 거두며 데뷔 앨범 [Nine Track Mind](2016)의 흥행을 견인했다. 능숙한 무대 매너와 흔들림 없는 라이브 실력 역시 인기의 요소였다. 빠르게 주목해야 할 신예로 떠오른 그는 두 차례의 소규모 솔로 투어에 이어 숀 멘데스(Shawn Mendes)의 북미 콘서트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팬덤을 확장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차기작으로 집중됐다.



스윗한 어법, 친근한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던 그는 의외의 반전을 시도했다. 지난해 4월, 기대 속에 공개된 신곡 ‘Attention’이 기존의 이미지를 뒤집는 곡이었던 것. 목소리를 부각하고 서정적 선율에 집중했던 이전과 달리, 록과 펑크(funk)의 성분을 함유한 노래에는 성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가사와 뮤직비디오 역시 가볍지 않았다. 꽤 용감한 시도였음에도 곡은 빌보드 차트 5위에 오르며 ‘See You Again’을 제외한 찰리 푸스의 노래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펑키한 기조를 이어받은 두 번째 싱글 ‘How Long’ 역시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개별 곡의 흥행으로 라이징 스타가 공개할 새 앨범은 금세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2018년 1월 발매를 앞두고 몇 곡의 노래가 추가로 공개됐고, 반응은 매번 뜨거웠다. 새해 벽두의 문제작 자리를 예약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아티스트의 입장은 달랐다. 모든 곡의 창작부터 프로듀싱까지 음반 제작의 전면에 참여하고 있던 찰리 푸스는 발매를 코앞에 두고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아직 앨범이 완벽하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음반은 4개월이 지난 5월 11일이 되어서야 전 세계 팬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만전을 기한 끝에 세상에 공개된 본 앨범, [Voicenotes]의 이야기다.



[Voicenotes]

발매까지 2년이 넘게 걸린 신보 [Vocienotes] 곳곳에는 담금질의 흔적이 역력하다. 새 앨범은 다소 치기 어렸던 1집 [Nine Track Mind]와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성숙해진 모습이다. 전작이 밝고 활력적인 곡들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면, 본 앨범은 진중하고 감각적인 팝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색깔을 정돈하는 와중에도 ‘Marvin Gaye’, ‘Left Right Left’, ‘One Call Away’ 등에서 보여줬던 코러스의 힘을 고수해 더욱 의미가 있다. 한층 정제되고 다듬어진 보컬 또한 특기할 점이다. 소울에 기반을 둔 가창법을 유지하면서도 날렵한 팝과 접점을 마련하기 위해 ‘엣지’를 더했다.


이러한 변화는 먼저 공개된 ‘Attention’과 ‘How Long’에서 두드러진다. “그녀는 그저 관심을 원했을 뿐.”이라는 프레이즈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Attention’은 베이스 기타를 바탕으로 한 펑키한 리듬 패턴, 중독성 강한 선율이 돋보인다. 특히 베이스 연주와 퍼커션만을 반주 삼아 흥얼대듯 가성으로 진행하는 후렴에선 더욱 깔끔해진 보컬 퍼포먼스가 빛난다. 놀라운 곡은 ‘How Long’이다. 반주를 제거함으로써 긴장감을 연출한 프리 코러스와 미끄러지듯 코러스로 나아가는 전개 방식, 빼어난 멜로디 라인과 이를 풀어낸 가창이 모두 탁월하다.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가 유소년의 이미지를 벗고자 ‘Boyfriend’를 발표했듯, 찰리 푸스는 이 곡들로써 1집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이외의 수록곡도 다채롭다. 일렉트릭 기타 리프로 전주를 장식한 첫 곡 ‘The Way I Am’에선 리드미컬한 박자에 따라 막힘없는 멜로디를 들려주고, 전작의 ‘Up All Night’에서 스케일을 줄인 듯한 ‘Patient’는 팝 발라드의 구성을 따른다. 목에 힘을 빼고 낭랑한 신시사이저에 맞춰 부른 ‘BOY’는 최신 경향의 팝송과 일맥상통하고, 피아노를 중심으로 가스펠 콰이어를 동원해 무게감을 더한 ‘Through It All’에서는 영국의 블루 아이드 소울 아티스트 샘 스미스(Sam Smith)가 떠오른다. 이번 앨범에서 코드 워크만 두고 본다면 가장 훌륭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Slow It Down’의 유려함은 또 어떤가. 대표곡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수록곡이 빈약했던 지난 앨범에 우월한 지점이다.



이외에도 매끈한 팝송은 여럿 존재한다. 지난 앨범에서 메간 트레이너, 셀레나 고메즈와의 듀엣으로 여성 보컬과의 케미스트리를 자랑했다면, 이번에는 알앤비 신예 켈라니(Kehlani)와 합을 맞춘 ‘Done For Me’가 그 맥을 잇는다. 작업하면서 1980년대를 수놓은 전설적인 팝 듀오 왬(Wham!)을 떠올렸다는 그의 말처럼, 빈티지한 키보드, 신시사이저로 연출한 1980년대의 분위기가 그럴듯하다. 켈라니와의 호흡도 이전 파트너들을 능가할 만큼 안정적이다. 레트로 감성에 닿아있는 또 다른 곡 ‘LA Girls’ 역시 뛰어나다. 미니멀 구성으로 구현한 끈적이는 팝 펑크(funk)에 특유의 팔세토로 구석구석을 장식했는데, 그 기량이 1집의 수준을 가뿐히 능가한다. 곡 전반에 흐르는 리듬감과 중후반의 가성 애드립은 마치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듣는 듯하다.


뜻밖의 베테랑과 함께한 의외의 컬래버레이션도 재미있다. 1990년대 알앤비, 소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보이스 투 맨(Boyz II Men)과 함께한 ‘If You Leave Me Now’,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를 초빙한 ‘Change’의 얘기다. 록 밴드 시카고(Chicago)의 명곡과 같은 제목으로 눈길을 끈 ‘If You Leave Me Now’는 아델(Adele)의 ‘When We Were Young’, 시아(Sia)의 ‘Alive’를 함께 작곡해 이름을 알린 토비아스 제소 주니어(Tobias Jesso Jr.)가 작곡에 참여해 멜로디 감수성을 높였다. 언제 들어도 안정적인 보이스 투 맨의 아카펠라와 찰리 푸스의 가창이 이루는 하모니가 퍽 근사하다. 찰리 푸스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싱어송라이터로 재차 언급한 바 있는 제임스 테일러는 사랑을 나누고 변화를 이루자는 앤썸 ‘Change’에 목소리를 보탰다. 1970년대 제임스 테일러의 레퍼토리와 닮은 이 노래를 작업한 후에 제임스 테일러는 “재능 있는 동료 가수와 함께 작업해 기뻤다”는 소감을, 찰리 푸스는 “함께 작업하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이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음악적 완성도와 개성적 캐릭터를 겸비한 작품

오직 강력한 후렴 위주였던 1집과 달리 전반적 완성도를 챙긴 것에 박수를 보낸다. 감상의 흐름, 개별 트랙의 만듦새, 특기인 캐치한 코러스와 멜로디, 더욱 정교해진 가창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곳이 마땅히 없다. 성숙해진 찰리 푸스의 [Voicenotes]는 진득한 블루 아이드 소울이면서 맵시 있는 팝이다. 동시에, 전에 없던 관능적 매력을 담았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 앨범에 헐렁해 보였던 신인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완성도 높이기와 색깔 넓히기,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일을 야무지게도 해냈다. 전도유망한 이 젊은 싱어송라이터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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