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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ul 07. 2018

[Expectations]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의 기대작

Bebe Rexha [Expectations]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의 기대작 



설령 비비 렉사(Bebe Rexha)의 이름이 낯선 사람일지라도 그가 만든 노래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샤이니가 부른 ‘Lucifer’(2010), 에미넴(Eminem)과 리아나(Rihanna)가 함께한 ‘The Monster’(2013)가 비비 렉사의 작품이다. 자신 명의의 히트곡을 배출하기 전에 게스트 보컬로서 인기 차트에 오른 적도 적지 않다. 래퍼 지-이지(G-Eazy)의 이름을 알린 ‘Me, Myself & I’(2015), DJ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와 래퍼 니키 미나즈(Nicki Minaj)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 ‘Hey Mama’(2015), 네덜란드의 DJ 마틴 개릭스(Martin Garrix)와 함께한 ‘In the Name of Love’(2016)가 여기 해당한다. 


198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비비 렉사의 본명은 블레타 렉사(Bleta Rexha)다. 알바니아계인 그는 자신의 본명과 발음이 비슷한 알바니아의 단어 ‘Bletë’가 벌(bee)을 뜻하는 데서 착안, 자신의 예명을 ‘비비’라고 지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재능은 어려서부터 포착됐다. 어린 시절에는 트럼펫과 피아노, 기타를 연주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합창단원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이 무렵에 그는 미국 레코딩 예술 과학 아카데미 협회(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가 주최한 ‘그래미 데이’ 행사에서 700여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고의 10대 작곡가 상’을 받았다. 비비 렉사는 이를 계기로 음악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의 베이시스트 피트 웬츠(Pete Wentz)가 조직한 프로젝트 밴드 블랙 카즈(Black Cards)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뒤인 2013년, 그는 워너 브러더스 레코드와 솔로 아티스트 계약에 성공한다. 이후 그는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니키 윌리엄스(Nikki Williams) 등의 곡을 쓰며 작곡가로서 입지를 넓혔고, 미국의 DJ 캐시 캐시(Cash Cash)의 곡 ‘Take Me Home’(2013)을 쓰고 보컬리스트로 참여하며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에미넴의 ‘The Monster’가 순위권에 오른 것도 이 시기다. 이때부터 그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주목해야 할 루키로 떠올랐다. 


이에 비하면 솔로 가수로서의 존재감은 비교적 늦게 발현됐다. 2015년에 발표한 첫 번째 EP [I Don’t Wanna Grow Up]은 설익은 완성도로 혹평을 면치 못했고, 곡 단위의 조명 역시 없었다. 상황은 2017년에 이르러 나아졌다. 그동안 게스트 보컬로 인지도를 획득한 덕에 6개월 차를 두고 발표한 두 장의 연작 EP [All Your Fault Ⅰ]과 [All Your Fault Ⅱ]가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음반에 앞서 싱글로 공개한 댄스곡 ‘I Got You’(2016)의 히트가 신호탄이었다. 솔로 곡으로는 처음으로 팝 차트에 진입한 노래는 유튜브에서 2억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스타덤을 예고했다. 


결정적 한 방은 ‘Meant to Be’(2017)였다. 컨트리 남성 듀오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Florida Georgia Line)과 함께한 컨트리 팝은 감미로운 하모니를 앞세워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뒀다. 컨트리 차트에서는 무려 29주간 1위를 차지하며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를 앞지르고 해당 차트에서 가장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한 여성 가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세 장의 EP를 거쳐 마침내 대중에 자신을 각인시킨 비비 렉사는 첫 번째 정규 앨범 [Expectations]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노린다. 



[Expectations] 

비비 렉사를 대표하는 두 가지는 감각적 송라이팅과 개성 강한 음색이다. 그는 이름이 미처 알려지기 전부터 탁월한 창작력으로 인상적인 곡들을 써냈고,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목소리로 유수의 가수들과 협업을 펼쳤다. 대망의 1집 [Expectations]는 이러한 두 장기를 충분히 발휘한 결과물이다. 앞선 두 장의 EP에 수록되어 인기를 견인한 ‘I Got You’, ‘Meant to Be’를 포함해 총 14곡을 수록한 앨범은 일관된 톤, 치밀한 짜임새로 부드러운 감상을 유도한다. 기타를 사운드 디자인의 핵심으로 삼고, 미디엄 템포에서 승부수를 띄운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음반에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흐른다. 


자신을 이탈리아의 슈퍼 카 페라리에 빗댄 첫 곡 ‘Ferrari’부터 귀를 사로잡는다. ‘속력을 내며 사는 것이 점점 외롭다’며 ‘속도를 좀 늦추고 현재를 충분히 느끼자’고 말하는 노래는 ‘떼창’에 적합한 싱어롱(singalong) 파트를 갖춰 특히 공연에서 사랑받을 곡이다. 히트 작곡가 저스틴 트랜터(Justin Tranter)가 참여한 ‘I’m a Mess’는 앨범에서 가장 친근한 매력을 지녔다. 메레디스 브룩스(Meredith Brooks)의 1997년 히트곡 ‘Bitch’의 후렴을 훌륭하게 재활용해 곡의 중독성을 높인 것이 포인트다. 비비 렉사 특유의 독특한 발음법이 만드는 리듬감도 재미있다. 노래는 높은 대중성과 만듦새 덕에 앨범의 첫 번째 싱글로 결정됐다. 


음반 전반부의 주제는 기타의 활용이라고 부를 만하다. 대세 힙합 트리오 미고스(Migos)의 퀘이보(Quavo)가 힘을 보탠 ‘2 Souls on Fire’에선 일렉트릭 기타 위주로 반주를 편성해 두 사람의 호흡과 반복되는 후렴에 초점을 맞췄고, 역시 일렉트릭 기타가 중심이 되는 ‘Shining Star’에선 곡의 시작과 끝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감칠맛을 냈다. 감정적인 보컬 연기와 차분한 기타 연주가 대비를 이루는 ‘Knees’도 흥미롭다. 이처럼 곡의 색깔과 분위기를 고려한 트랙 배치가 정돈된 감상을 끌어낸다. 


수록곡 중 가장 댄서블한 ‘I Got You’부터의 구성은 한층 다채롭다. 댄스의 기조를 이어가는 ‘Self Control’, 드럼 패드를 사용한 트랩 비트와 몽롱한 신시사이저로 몽환경을 연출한 ‘Sad’, 독특한 목소리에 이펙터까지 입혀 신비로움을 배가한 ‘Mine’, 래퍼 토리 레인즈(Tory Lanez)가 가세한 힙합 트랙 ‘Steady’, 전조 되는 후렴과 보컬의 카리스마가 특징적인 ‘Don’t Get Any Closer’까지, 개별 곡들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듣는 이를 매혹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운드를 아우르면서 산만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재주다. 


 하이라이트는 앨범 말미의 근사한 발라드 두 곡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동원해 전통적인 발라드 작법에 도전한 ‘Grace’와 미디엄 템포의 산뜻한 팝 발라드 ‘Pillow’다. 리아나(Rihanna)의 ‘Stay’(2012)가 그랬듯, 유니크한 목소리에서 배어나는 감수성과 호소력이 상당하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한국 음악 팬들에게 특히 사랑받을 곡들이다. 음반의 대미는 플로리다 조지아 라인과 화음을 맞춘 기분 좋은 컨트리 팝 ‘Meant To Be’가 장식한다. ‘I Got You’와 마찬가지로 기존 발매작에 실린 곡이지만, 흐름에 신경을 쓴 짜임 덕에 겉돌지 않는다. 



신인답지 않은 완성도를 갖춘 1집 

곡 단위, 앨범 단위의 완성도가 고루 탄탄하다. 수록곡에는 가수의 캐릭터와 선율의 힘을 생동감 있게 담았고, 이를 유기적인 한 장의 앨범으로 엮었다. 신인 아닌 베테랑으로 보일 만큼 정교한 솜씨다. 유명 가수들의 히트곡을 쓰고 여러 장의 EP를 발매하며 보낸 시간이 [Expectations]에서 빛을 발했다. 비록 컨트리 장르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의 잠재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의 주류 팝 시장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비비 렉사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은 뮤지션이다. 본 앨범이 그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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