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감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가왕' 조용필이 음악 인생 50주년을 맞았다. 그저 음악이 좋아 시작했다는 그는 반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히트곡으로 온 국민을 웃기고 울렸다. 그 영향력은 한국을 넘어 일본에까지 미쳤고, 심지어 휴전 상태의 북측 동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공연을 위해 평양을 거듭 방문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앨범이었던 < Hello >(2013)에서는 만 63세의 나이로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며 세대 통합의 위업까지 달성했다.
조용필은 지난 5월 12일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을 시작으로 50주년 기념 전국 투어 < Thanks To You >를 개최했다. 이를 한 달여 앞둔 4월 11일, 5년 만에 성사된 기자 간담회 자리에는 그의 히트곡 '어제, 오늘 그리고'의 제목처럼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앞으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사회로 총 다섯 개의 해시태그(#)에 따라 진행된 조용필 50주년 기자 간담회 “차 한 잔 할까요?” 현장을 소개한다.
50년을 맞이했는데 이 자리를 함께하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정말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지난 반세기, 5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답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깊은 관심에 대단히, 대단히 감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어떤 호칭이 좋을까요?
그냥 조용필 씨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선생님, '가왕' 부담스럽습니다. (웃음)
가왕이나 국민가수, 최고가수 이런 타이틀이 부담스러우시겠어요.
사실 그러려고 노래한 거 아니고 음악한 것 아니거든요. 그냥 저는 음악이 좋아서 했던 것인데 그러다 보니까 별의별 호칭이 나오고... 사실 그것이 저한테는 부담으로 옵니다.
먼저 50년을 있게 한 역사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최초, 최다,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는 '기록의 사나이'가 조용필 씨입니다. 국내 최초 단일 앨범 100만장, 누적 음반 천만 장 최초 기록을 갖고 있는데, 당시 지구레코드에서 공식적으로 집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몇 장 나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일본 내 한국 가수 단일 앨범 최초 100만 장, 대중 가수로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것도 최초였고, 미국 뉴욕에 있는 라디오 시티 홀에서도 국내 가수 중 최초로 공연을 했습니다.
라디오 시티 홀에서 이 사람이 여기 설 수 있는 자격이 되나 이런 걸 본다고 하더군요. 근데 그 날짜에 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전 세계에 열셋이었는데 제가 됐어요.
그게 몇 년도였죠?
2009년 같은데요. 홀에 자료를 줄 때 최고로 좋은 자료를 줘야 하잖아요? 저는 2003년, 2005년에 서울의 주 경기장에서 공연한 걸 보여주니까 바로 통과가 되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라디오 시티 홀에 한 번 서면 그다음에 또 설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 사인도 공연장에 남겨져 있어요.
'친구여'가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교과서에 수록되었습니다.
맞아요.
'오빠 부대'라는 타이틀도 최초, '국민가수' 타이틀도 최초인 것으로 압니다.
그랬던 것 같아요. (웃음)
최다 기록도 대단합니다. 최단기간 최다관객 10만 명 동원, KBS < 가요톱텐 > 통산 69주 1위 최다 수상. 당시 '골든 컵' 제도 기억하시나요. 너무 오랫동안 1위를 해서 작위적으로 잘랐던 제도였죠. 처음에 몇 주 1위를 해서 잘랐죠?
기억이 잘 안 나는데 10주인가 11주 정도를 했어요. 라디오는 그런 게 없었지만, TV는 저 사람만 계속 1위를 하나 이런 게 있으니까... 그래서 10주, 11주 1위를 하다가 7주로 제한했고, 이후에는 또 5주로 제한했어요.
조용필 씨와 함께 5주 1위 하면 '골든 컵'을 받는 제도가 생긴 거네요. 상도 안 받으셨잖아요
네. 1986년까지 받았습니다.
KBS, MBC, TBC 방송 3사 가수왕 11회도 최다 기록이죠. 여기에, 1988년 MBC 정부수립 50년 최고 스타상, 1998년 20세기 역사상 최고의 가수, 1998년 건국 이후 최고의 가수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으니 정말 오랫동안 정상에 계신 겁니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제가 뭐 정상이 뭔지, 기록이 뭔지 이런 거 잘 모릅니다. 그냥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그런 거죠. 솔직히 무엇을 위해 음악을 했고 저는 전혀 그런 거 없어요. 음악이 좋아서 듣기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은 음악을 내면 감동 받고 '왜 나는 안 될까' 고민하고... 그렇게 음악이 좋아서 했던 거죠.
아까 2003년 콘서트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비가 많이 와서 우비를 나눠주고 했던 공연인데,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우선 비가 너무 와서 이걸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공연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또 무대에 물이 차서 미끄러웠어요. 걸으면 첨벙첨벙할 정도로. 악기가 손상되고 모니터가 손상되고...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모니터잖아요? 그게 잘 안 들리기 때문에 정말 힘들긴 했지만 끝까지 했습니다. 당시 관객 중 몇 분이야 집에 가셨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아무도 안 가신 것 같더라고요.
현재 19집까지 낸 앨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은 어느 앨범인가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앨범이 가장 좋다고 말하기는 정말 어려워요. 곡으로 따지자면 있을 수 있겠죠. 예를 들어 '꿈' 같은 경우 '추억 속의 재회'라는 곡과 '꿈'이라는 곡을 같이 만들었는데, 두 개를 한꺼번에 내기는 너무 아까우니까 주위에 음악 하시는 분들께 어떤 곡을 먼저 낼까 물어봤죠. 그런데 '꿈'이 더 좋다고 해서 반대로 '추억 속의 재회'를 먼저 냈어요. 그래서 '꿈'을 1991년에 냈습니다. 1989년에 녹음했지만 2년 후에 낸 거죠.
가요계의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데 기여하신 분이 조용필 씨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장르 통합뿐만이 아니라 세대 통합의 아이콘이 되었는데요. 특히 'Bounce'를 통해서 확실하게 굳힌 것 같아요.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전부 조용필을 알고 있고 또 그 음악을 들었습니다. 젊은이들 또한 19집을 통해서 조용필의 위상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젊은 세대가 조용필에 열광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셨나요?
열광은 아니죠. (웃음) 그냥 'Bounce'를 통해 몰랐던 사람 알 수 있었다, 그 정도일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런 얘기를 많은 분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많이 해왔지만 사실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방법이 없어요. 딱 한 가지 생각한 건, 젊은이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으면 그들이 나이가 들어서, 예를 들어 열다섯 살이 날 기억하면 앞으로 이 사람이 육십, 칠십 살까지 오십 년 육십 년 나를 더 기억할 수 있잖아요. 그걸 계산해봤어요. 그럼 내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느냐. 물론 평소에 제가 팝, 록, 소프트 록도 많이 듣지만, 막상 제가 하려고 스튜디오 들어가 보면 나하고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찾고, 찾다가 'Bounce', 'Hello'라는 곡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곡들로 젊은 친구들이 저를 알게 되고 '저 사람이 이런 음악도 하는구나' 생각하겠죠. 그럼 저는 그 사람으로 인해서 50년, 60년 더 기억될 수 있잖아요.
당시 조용필 씨 나이가 만 63세, 우리나라 나이로 64세였어요. 기록을 찾아보니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보다 2개월인가 늦습니다. 전 세계 최고령 1위인 겁니다. 저는 그때 젊은 세대와 접점을 마련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기자회견에서도 “내 안에 새로운 나, 또 다른 내가 있을 거고 그걸 찾으려 했다.”는 얘기를 하셨잖아요. 항상 젊은 유전자를 갖고 계신 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꼰대'란 말 아세요?
네. 꼰대죠 제가(웃음)
우리 세대가 꼰대 소리를 듣는다는 것에 대해 조용필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냥 생각할 때 꼰대라는 건 누구나 당연히 오는 거잖아요. 그걸 쉽게 받아들이면 되고, 꼰대라고 하면 그냥 “나 꼰대지” 하면 편해요. 그걸 거부하는 건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일부러 “내가 내일모레면 칠십이야”라는 얘기를 해요. '내가 이 정도로 나이 많아도 열심히 하고 있어. 음악 좋아하고 있어' 그런 의미에서요. 저는 나이를 내리고 이런 건 안 해요.
조용필 씨는 후배 사랑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승철, 신승훈, 신해철 등이 “조용필 씨에게 인정받아서 가장 뿌듯했다”고 얘기를 했어요. 최근 후배 중에는 누가 보이시나요.
이 자리에서 누구다 얘기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저는 지금 현재 유명하면 그 사람이 뭔가가 있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뭔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고 열광하고 많은 팬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분명 이유가 있는 거예요. 음악을 들어보면 '그래 맞아' 하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조용필 씨도 방탄소년단, 엑소 들으세요?
그럼요. 엑소, 방탄소년단, 빅뱅 이런 팀들 공연도 좀 보고, 물론 유튜브로 보겠지만. 그런 친구들이 왜 유명한가 그걸 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노래를 잘한다든지 잘 생겼다든지 아무튼 그 매력이 있어요.
케이팝이 글로벌로 약진하게 된 것이 최근이라고 하지만 조용필 씨 같은 씨앗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뻗어 나갔다고 봅니다. 현재의 케이팝을 보면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이 대부분이고 비주얼이 강합니다. 이거에 대해 어떤 느낌이신가요.
그건 좋은 거 아닌가요? 저는 '정말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지금 활동했으면 안 됐을 것 같아요. 옛날에 일찍 태어나서 그때 음악을 하고 노래를 했기 때문에 됐지, 지금 태어났으면 안 됐죠. 비주얼 적으로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웃음) 키도 작고. 요즘 애들은 너무 잘생겼잖아요 솔직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나이가 많아지고 몸도 늙고 하지만 음악적인 감각은 되도록 음악 듣는 걸 통해서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음악을 매일 듣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튜브에서 클릭하면 연관 음악이나 콘서트, 최근 콘서트 이런 것들이 쭉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걸 많이 보고... 그렇게 해서 유지를 하는 것 같습니다.
20집에 대한 정보를 주신다면요.
저는 사실 50주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요. 작년에도 올 9월에 체육관에서 한 2, 3번 공연하는 거로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50주년이 쉽사리 오는 것도 아니고...” 등등. 그때 제가 음악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어요. 20집은 어쨌든 꼭 내야 하는 앨범이기 때문에. < Hello > 앨범 이후 부담이 너무 커서 이번 앨범은 더 잘 해야지 하는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 같아요. 수많은 곡을 접했고 만들기도 했는데 제 마음에 그렇게 들지 않았고 현재 되어 있는 건 6, 7곡 정도입니다. 지금은 5월에 공연해야 한다는 주위의 압력 때문에 모든 걸 중단한 상태고요.
공연을 먼저 하시고 앨범은 올해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올해 못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음원은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근데 음원을 발표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웃음)
디지털 싱글은 어떠신가요.
그 생각도 했고 주위에서 얘기도 했지만... 이건 개인적인 얘긴데 전 한 번 꽂히면 아무것도 못하고 그것만 하는 성격이라서 음악 작업을 하면 음악 작업, 콘서트 준비면 콘서트 준비밖에 못 해요. 콘서트 준비하면서 음악 작업, 음악 작업 하면서 콘서트 준비는 못 합니다.
얼마 전 평양 공연을 하고 돌아오셨는데 오랜만에 방문하고 소감이 어떠셨나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자책을 많이 했고 안타까웠던 것 같아요. 제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요. 물론 의료진도 따라갔지만 잘 먹지도 못하고 그랬을 정도였는데, 아무튼 '최악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런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우선 2005년도에 다녀와서 그런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어요. 2005년도에 평양 시내 왔다 갔다, 호텔에서 공연장 이거밖에는 다니질 못했지만 이번에 가보니까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이번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옥류관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웃음) 다들 갔는데 호텔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냉면을 못 먹었습니다. 아무튼, 그쪽 음악이 우리하고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 음악을 쉽게 받을까 어떻게 생각할까 봐 굉장히 궁금했어요. 그래서 표정도 보고 했는데 그 사람들 마음은 제가 잘 모르죠.
몸 상태를 제외하면 영상으로는 좋아 보였습니다.
무대 나갈 때 어지러워서 굉장히...(웃음)
나이에 비해 동안이신데 비결이 있으신가요. 주름이 없어 보이시는데.
메이크업 했어요. (웃음) 저는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죠. 그 이유가 뭐냐고 한다면... 저는 소식을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간식 같은 건 전혀 안 하고요. 아침 꼭 먹고 점심 조금이라도 먹고 저녁은 일찍 조금 먹고. 그럼 밤에 음악 듣다가 열한시, 열두시, 한시가 되면 배가 너무 아파요 배가 고파서. 그런데도 참아요.
술 좋아하는 거로도 유명하신데요. 술도 안 하시는 건가요.
술 안 하죠. 술 안 한 지도 꽤 됐어요. 갑자기 끊은 건 아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줄이면서 한 2년 전부터는 몇 달에 한 번 정도 먹죠. 먹어봐야 저희 공연 관련 스태프들이 찾아와서 난리 치니까 (웃음) 그래서 먹게 되고 그렇습니다.
'신의 목소리'라는 평가도 듣는데 관리 중에 제일 중요한 건 목소리일 것 같아요.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나이 먹으면 제일 안 되는 거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제일 중요한 거는 내가 소리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취약한가, 나빠졌느냐는 것은 연습을 하다 보면 나옵니다. 나이가 들면 중저음이 떨어집니다. 힘이 떨어져요. 그래서 사무실 위에 스튜디오가 있는데 스튜디오에서 중저음 곡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중저음 연습을 해요.
받쳐주는 힘 같은 건가요.
그렇죠. 힘이죠. 어떻게 하면 힘을 받쳐줄 수 있을까 하는. 이런 걸 하면서 자기가 느껴야 해요. 이렇게 하니까 중음, 저음이 좀 낫더라 이런 건 본인이 느껴야지 중저음만 무조건 연습하라 이런 얘기는 아닙니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들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게 예전에 “나는 68년 데뷔 이래 그해에 주요한 유행이나 흐름 놓친 거 없다”고 말씀하신 것 기억합니다. 요즘 플레이리스트, 좋아하시는 가수가 궁금하네요.
노래가 좋으면 다 좋은 거죠. 요즘 라틴 쪽이 대세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 쪽에서 현재 음악에 지쳐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아마 라틴 쪽에 귀를 기울이는 거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합니다. 라틴 음악이 길게 갈 것 같진 않고... 가끔씩 듣는 건 스크립트(The Script), 개인적으로 음악적으로 좋다는 건 'Chandelier'를 불렀던 호주의 시아(Sia). 저는 이 가수 좋다 하면 앨범으로 들어가서 발표한 앨범을 전부 다 들어보거든요. 어렸을 때는 이렇게 했고 어떻게 변해가고 있구나. 특히 코드를 봅니다. 화음을 어떻게 처리를 하는가 이런 걸 듣죠.
평소에 뵙기가 어렵잖아요. 일상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사실 심심한 하루하루를 보내죠. 심심하면서도 아주 바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아요. 왜냐면 할 게 너무 많은 거죠. 공연이 있으면 보통 6, 7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잖아요. 그거 때문에 굉장히 바쁘고요. 작년엔 안 했지만 공연을 거의 매년 했잖아요. 투어는 계속하고 있으니까 그거만 해도 1년 금방 지나가요.
음악 말고 다른 취미는 없으신가요.
없어요. 수집 같은 취미도 없고 저는 취미 물어보면 아주 곤란해요. (웃음) 없어요 전혀. 옛날에 어렸을 때 당구를 쳤는데 처음에 큐대 잡으면 80이라고 하더라구요. 120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요 젊었을 때. 120은 다마도 아니라고 하던데(웃음)
텔레비전은 안 보시는지요.
드라마 같은 건 계속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안 보게 되고, 저는 아프리카 세렝게티를 한번 다녀와서 동물에 대한 프로그램을 좋아해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 와일드 >, SBS의 < TV 동물농장 >도 자주 보고.
이날 현장에는 가수 배철수와 아이유의 50주년 축하 영상이 공개됐다. “용필이 형, 잘 지내시죠?”라며 인사를 건넨 배철수는 송골매 시절에 곁에서 지켜본 조용필의 모습과 2003년 조용필의 < 배철수의 음악캠프 > 출연 당시를 회상하며 그를 'Natural Born Singer'(타고난 가수)로 정의했다. 조용필은 한 군데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한 뮤지션이며,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그의 음악은 가요사에 비틀스와 같은 고전으로 남을 것이라고도 했다.
아이유는 2013년 대중문화 예술상 당시 조용필이 있는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신기했다고 추억하며 동시대의 가수라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용필의 노래 '나는 너 좋아'를 좋아한다고 밝히며 언젠가 함께 부르고 싶다는 뜻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에 조용필은 배철수와 아이유의 영상이 끝날 때마다 화면을 향해 엄지를 번쩍 치켜들며 감사를 표했다.
아이유가 '나는 너 좋아' 부른다고 하면 저작권 허락해주실 거죠?
그럼요. 부르는 건 상관없어요. (웃음) 저는 후배들이 제 노래 부른다고 하면 마음대로 하라고 해요. 요즘은 뮤지션들이 좋아지고 음악도 좋아졌잖아요. 그래서 맡길 수 있어요. 옛날에는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면 황당하잖아요. 그래서 승낙 안 한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음악을 너무 잘 만드니까.
신보에 대해 조금이라도 힌트를 듣고 싶습니다. 공연 때 한 두 곡이라도 볼 수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하고 싶죠. 하고 싶지만 이미 중단한 상태라서. 제 성격이 완벽하지 않으면 내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아마 못할 것 같고요. 6월에 봄 투어 끝나고 잠시 한 2개월, 2개월 반 쉬고 가을로 다시 시작되는데 그 중간에 또 준비해야겠죠. 사실 작업이라는 게 악기를 갈고 가사도 뒤집어엎고, 안되면 다시 뒤집어엎고 이 작업이 아무리 해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만드는 곡도 있고. 자꾸 사람들이 그래요 “그 나이 되면 인생에 대한 그런 음악을 발표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그럼 저는 속으로 '웃기고 있네' 생각해요. 음악은 음악이고, 그 자체가 세월이 지나면 역사거든요. 인생에 대해서는 시인들이 논하고 문학 작품에서 논하는 거고, 노래는 노래일 뿐이에요.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지금 하고 있는 건 전부 미디움에서 빠른 곡들입니다.
19집에도 그런 요소가 나타나는데 최신 경향인 EDM이나 힙합은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그렇습니다. 뭐 지금 음악 사운드가 전부 EDM 사운드죠 으쌰으쌰하는. 전부 그런데, EDM에도 여러 갈래가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알란 워커(Alan Walker)가 깨끗하게 잘 하는 것 같아요. 제 취향에 맞아요.
< Thanks To You >가 50주년 공연의 타이틀입니다. 5월 12일 잠실 주경기장 공연이 시작인데, 대략 5만 가까이, 4만 5천 명 정도 들어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죠. 벌써 이게 일곱 번째네요.
그렇게 됐네요.
이번 50주년 콘서트 총연출하신 김서룡 감독님, 50주년 추진위원회 안호상 위원장님을 모셔서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공연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김서룡 : 50년이라는 숫자가 당사자로서는 벅차기도 하면서 부담이 가실 것 같았는데, 팬들하고 주위의 스태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이번 공연 콘셉트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뭐 다른 사족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마움을 표현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부분, 앞으로의 미래를 함께하자는 약속. 그 부분이 제일 중요한 콘셉트인 것 같습니다.
그런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선 선곡도 이전과는 다르겠습니다.
조용필 : 곡의 수가 더 많아지겠죠. 아마 공연시간도 좀 길어질 것 같기도 하고요.
팬들은 좋으시겠습니다.
조용필 : 네. 그래서 오프닝과 엔딩을 두고 두, 세 가지 안을 갖고 좁혀가고 있는 중입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연출자분께 질문 드립니다. 젊은 층을 포함해서 많은 분이 50주년 콘서트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출자로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서룡 : 이번 공연만이 아니라 공연마다 늘 선곡이 고민이었는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설문을 했습니다. 팬클럽, 50주년 추진위원회, 연령대별로도 설문을 하고 음원 사이트의 공식 데이터도 활용하면서 빅 데이터 분석을 하려고 했어요. 다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최대한 선곡을 잘 해서 여러 연령대 여러 팬들이 다 감동하실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50주년 추진위원회는 어떻게 결성이 된 건가요.
안호상 : 2년여 전부터 50주년에 맞는 의미 있는 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극구 반대를 하셔서 진행을 못 했습니다. 본인이 50주년에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추앙받고 그런 걸 부끄러워하시고 아주 심하게 질책도 하셨어요. '세계적인 음악가들 중에 그런 거 한 사람 없더라, 근데 왜 내가 해야 하느냐'고 하실 정도로요. 그렇지만 50주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조용필 선생님의 음악적 작업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적 측면, 역사적 측면, 학문적 의미 이런 걸 조명해야 하지 않겠냐 말씀을 드렸습니다. 조용필을 높이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50년을 같이 해온 사람들을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기억하고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그런 50주년을 만들어보자고 했더니 겨우 하겠다고 하셔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조용필 씨 공연은 7, 8번 갔는데 웬만한 팝스타보다 화려합니다. 이번 콘서트에서 눈여겨볼 것을 미리 알려주신다면요.
글쎄요. 어쨌든 무빙 스테이지를 볼 수는 있습니다.
마지막 곡이 궁금합니다. 전에는 '여행을 떠나요' 주로 했던 것 같은데요.
가끔은 그렇게 했죠. (웃음) 신나면서 돌아가시라 하는 의미에서. 이번에는 마지막 곡이 슬로우 노래가 될 것 같아요. 근데 이걸 다 발표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웃음)
LP로 데뷔해서 카세트테이프, CD, MP3, 디지털 음원까지 매체가 변했어도 모든 시대를 석권한 가수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가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하나를 꼽는다면요.
가수면 다 똑같을 것 같아요. 공연을 했을 때 관객이 만족스러워하면 그게 너무 행복하죠 저는. 물론 열심히는 하겠지만, 관객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관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없습니다. 제일 행복합니다 그때가.
P.T 바넘의 말을 인용하면, '진정한 예술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관객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조용필의 예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에 'Thanks To You'로 타이틀을 정한 이유도 50년 동안 지금까지 팬클럽이 있었고 많은 국민들께 사랑도 받고 즐거움도 같이 음악을 통해서 같이 나누고 제가 노래할 수 있었잖아요. 당신이 있었기에 내가 있어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전주만 딱 들어도 아는 곡이 70, 80곡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정도면 뮤지컬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주크박스 뮤지컬이 또 유행인데 뮤지컬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많이 좋아합니다. 음악이 들어있는 건 다 찾아다니거든요. 한때는 브로드웨이 쪽에 한 달 동안 가서 한 달 내내 본 그런 경험도 있었어요. < 맘마미아 >도 브로드웨이 들어오기 전에 보스턴에서 시험 공연을 할 때 보스턴까지 가서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만큼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뮤지컬을 한 번 해야겠다 싶어서 어떤 뮤지컬은 11번씩 보면서 하루는 무대 보고 하루는 세트 보고 하루는 음향 보고 하루는 조명 보고 반복하면서 메모도 해놓고 했었는데, 결국 실패했죠. 언젠가는 해보고 싶습니다.
50년 동안 환경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힘드신 순간도 많았을 텐데 아직도 음악을 사랑하시고 외국 음악도 많이 들으시고 있습니다.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음악을 연구하다 보면 계속 끊임없이 가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그게 왔던 겁니다. 비결이나 이런 건 없고 하다 보니까 새로운 걸 발견하고, 그럴 때의 충격을 계속 받고 있는 거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아마 결국은 죽을 때까지 배우다가 끝날 것 같습니다. (웃음)
< Hello > 앨범 인터뷰 때 “나한테는 이제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폭탄을 들고 뛰어들어야 한다. 벽이 깨지든 내가 깨지든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시간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인간으로서 음악인으로서 가장 두려운 것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 말씀 맞습니다. 저는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폐 끼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이 항상 떠오르냐면, '평생을 저 사람 노래를 들으면서 살아왔는데 저 사람이 그만두면 난 뭐야, 난 뭐가 되는 거야' 이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래가 안 될 때 지금까지 좋아했던 분들이 어떤 실망을 할까 그것이 가장 두려워요. 하지만 실망도 좋다면 해야죠. 제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지막 공연을 볼 때 '난 저렇게는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바꿔 생각하면 팬들은 제가 그만두면 배신당하는 느낌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되는 날까지, 허락하는 날까지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동안의 얘기를 하자면 밤을 새워도 못하겠죠. 지금까지 제가 50년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저의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사랑해주신 여러분들에게 정말 감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