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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Sep 21. 2018

이곡만은 듣고 가 #5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어느새 가을이다.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음악의 계절이기도 하다. 높은 가을 하늘을 보며 많은 사람이 우수에 차는 것처럼, 음악가들 또한 지는 낙엽에 영감을 얻기 때문일 테다. 서구에 ‘고엽’(Autumn Leaves)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을이면 사랑을 받는 ‘가을 클래식’이 여럿 있다. 한국인의 마음 깊숙이 저장되어 있는 가을 명곡들을 소개한다.



양희은 – ‘가을 아침’ | [양희은 1991](1991)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양희은의 명반 [양희은 1991]에 실린 노래다. 앨범에 수록된 다른 노래처럼 이 곡 역시 이병우의 기타와 양희은의 보컬만으로 이루어졌지만,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노래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 최근 아이유의 커버로 더욱 잘 알려졌지만, 푸근하고 여유로운 가을 아침을 만끽하기에는 오리지널이 적격이다.



패티김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한줄기 사랑](1983)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가을과 패티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의 노래 중 ‘가을의 연인’, ‘9월의 노래’도 있지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35년 전에 나온 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선율, 조금의 낡음도 없는 패티김의 스탠다드 창법이 놀랍다. ‘초우’, ‘못 잊어’ 등으로 그와 콤비 플레이를 펼쳤던 박춘석 작곡가의 작품이다.



김민기 – ‘가을편지’ | [김민기 1](1993)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시인 고은의 가사에 김민기가 곡을 붙였고, 1971년에 최양숙이 먼저 발표했다. 원곡자 김민기의 버전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인 1993년이 되어서야 서울음반의 시리즈 앨범 [김민기 1]을 통해 세상의 빛을 봤다. 양희은, 보아, 박효신, 최백호, 솔라(마마무) 등 여러 가수의 재해석이 존재하지만, 이병우의 기타 연주와 짝을 이루는 김민기의 묵직하고 나지막한 저음은 대체 불가능하다.



이문세 – ‘가을이 오면’ | [이문세 4](1987)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

‘가을이 오면’은 가을의 신호탄과 같다. 이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여름은 끝났다는 얘기다. 가요 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인 이문세의 4집은 타이틀곡 ‘사랑이 지나가면’부터 고은희와 함께한 ‘이별 이야기’,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여러 메가 히트곡을 냈는데, ‘가을이 오면’ 역시 그중 하나다.



이용 – ‘잊혀진 계절’ | [이용 지구전속제1집](1982)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 노래가 나온 36년 전부터 10월의 마지막 날은 단연 이용의 것이다. 발표 당시 노래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용은 이 노래 덕에 ‘가왕’ 조용필부터 송골매, 전영록, 민해경 등 당대의 스타들을 모두 꺾고 그해의 MBC 가수왕을 차지했다. 당초 ‘9월의 마지막 밤’이었던 가사는 발매가 늦춰지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이 되었고, 독보적인 10월의 송가 반열에 올랐다.



윤도현 – ‘가을 우체국 앞에서’ | [윤도현1 가을 우체국 앞에서](1994)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사랑 Two’와 함께 윤도현의 초기를 대표하는 곡이다. 비록 발매 후 한참이 지난 2002년 월드컵 시즌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에게 발굴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가을이면 리퀘스트 되는 대표적 가을 노래로 사랑받고 있다. 노래는 윤도현이 멤버로 있던 노래 동아리 종이연의 앨범에 먼저 실렸으나, 곡이 마음에 들었던 그의 의지로 솔로 앨범에도 실리게 됐다.



한영애 – ‘가을 시선’ | [불어오라 바람아](1995)

“모든 것 이해하며 감싸 안아주는 투명한 가을날 오후”

‘누구없소’, ‘조율’에서의 카리스마를 생각하면 ‘가을 시선’은 특별하다. 이병우의 곡에 한영애가 가사를 붙이고 김광민이 피아노를 연주한 ‘가을 시선’은 더없이 관조, 서정적이다. 특유의 개성 강한 목소리와 달관한 듯 초연한 태도의 노랫말, 어딘지 서글픈 멜로디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소라는 이 노래를 커버해 자신의 4집 [꽃](2000)에 실기도 했다.



김광석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김광석 다시부르기1](1993)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다시 부르기’라는 제목처럼, 앨범은 커버 곡으로 구성됐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는 김광석이 멤버로 함께 했던 그룹 동물원의 2집 [두번째 노래 모음](1988)의 타이틀곡이었다.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었으나, 김광석의 버전은 또 한 번 대중을 사로잡았다. 모두가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얘기할 때, ‘흐린 가을 하늘’을 챙긴 것만으로도 이 노래는 각별하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 살고 있지만, 나만을 위한 알짜 정보는 놓치기 쉽다. 음악도 그렇다. 하루에 발매되는 노래만 100여 곡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모두 들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늘 뭐 듣지?’ 고민하는 당신, 여기 있는 노래만 들어도 당장의 고민은 해결이다.


* 텐아시아 뷰티텐 2018년 10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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