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평가된 청춘에겐 희망이 있다”
영블러드(YUNGBLUD)는 잉글랜드 동커스터(Doncaster)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1997년생인 도미닉 리처드 해리슨(Dominic Richard Harrison)은 레이블에서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젊은 피’(young blood)라고 불렸고, 이 별명을 재밌게 여긴 그는 철자를 약간 바꿔 자신의 아티스트 명으로 삼았다. 음악을 향한 그의 애정은 집안 내력이다. 아버지는 기타 가게를 운영했고 할아버지는 1970년대에 영국의 전설적인 글램 록 밴드 티 렉스(T. Rex)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을 만큼 음악과 밀접했다. 음악 집안에서 자란 그는 11살 때부터 곡을 쓰고 기타, 피아노 등의 악기를 연주했으며 런던에 위치한 예술 교육 학교(Arts Educational Schools)에 다니며 활동의 기반을 다졌다.
그가 관계자들의 눈에 띈 건 2017년이었다. 열아홉 소년은 신인답지 않게 대담했다. 인터뷰, 화보 등에서는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노래만 부르면 눈빛이 바뀌었다. 그의 눈에는 반골 기질이 번뜩였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등한시하는 기득권층을 날 세워 비판하는가 하면(‘King Charles’), 대중음악의 성지인 미국 뉴욕의 틴 팬 앨리(Tin Pan Alley)를 허물고 재개발하려는 이들의 탐욕을 매섭게 일갈했다.(‘Tin Pan Boy’) 이 시대에 화가 나서 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노랫말로 엮어 보수적인 기성세대에 분노를 쏟아냈다. 음악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포부였다.
강성 메시지는 비교적 대중적인 음악에 담겼다. 이모코어 음향과 귀에 잘 들어오는 팝 멜로디, 강렬한 랩과 가창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와 비스티 보이스(The Beastie Boys), 악틱 몽키스(Arctic Monkeys)와 폴 아웃 보이(Fall Out Boy)가 한자리에 모인 듯했다. 기대 속에 발표된 정규 1집 <21st Century Liability>(2018)에서는 ‘21st Century Liability’, ‘Psychotic Kids’, ‘Die for the Hype’ 등 의미심장한 얼트 록 트랙들이 열성 팬을 모았다. 여기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시즌 2>(2018)에 삽입된 ‘Falling Skies’가 그의 인지도를 한층 높였다.
미디어의 주목과 마니아의 결집으로 활동에 가속이 붙었다. 앨범을 발매한 지 불과 6개월여 만에 또 다른 신곡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여느 곡처럼 반항적, 선동적인 앤썸 ‘Loner’도 근사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노래한 ‘Hope for the Underrated Youth’의 매력이 상당했다. 더 나은 세상, 더 평등한 세상을 갈망하며 싸우는 젊은 세대에게서 희망을 봤다는 뮤지션은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노래에 한마디 긍정의 말을 심었다. 그는 “과소평가된 청춘에겐 희망이 있다”고 노래하며 또래 집단에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최근에는 동료 가수와도 활발히 교류했다. 팝 가수 할시(Halsey)와 블링크 182(Blink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Travis Barker)가 함께한 ‘11 Minutes’, 래퍼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와 트래비스 바커가 의기투합한 ‘I Think I’m Okay’가 차례로 나왔다. 각기 다른 개성의 뮤지션들이 근사하게 어우러진 가운데, 할시와의 탁월한 하모니가 돋보인 ‘11 Minutes’는 빌보드 록 차트 5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정규 앨범 이후 1년 3개월 만에 나온 EP <The Underrated Youth>는 아티스트의 역량이 집약된 작품이다. 사운드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날 것 그대로의 가사는 듣는 이의 마음을 깊게 파고든다. 공격적인 전주와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압도적인 ‘Braindead!’는 물오른 팝 감각의 증거다. 부모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며 성 소수자를 옹호하고 청년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Parents’는 ‘Hope for the Underrated Youth’와 함께 음반의 중추 역할을 한다.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의 댄 레이놀즈(Dan Reynolds)가 힘을 보탠 ‘Original Me’는 ‘나’를 강조한 노랫말과 캐치한 후렴으로 차트에서도 히트를 기대할만하다.
메인스트림 팝 시장에 한동안 영블러드 같은 신인이 없었다. 사사로운 감정을 나누고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싱어송라이터가 주를 이뤘다. 반면 ‘젊은 피’로 무장한 그는 세상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자신의 신념을 말하고, 기성 질서에 적극적으로 항거하면서 동년배 젊은이들의 사회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거창한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내 생각을 말할 뿐이며,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기탄없이 말할 때 세상은 바뀌고 사회는 진보할 거라 믿는다.”고 했다. 단순히 메시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까지 빈틈없이 꾸린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영블러드가 Z세대의 총아로 떠오를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