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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Jan 21. 2020

내 인생의 음악 10곡

나는 어떻게 음악의 길로 접어들었나

대중음악웹진 이즘(IZM)에서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라는 기획 기사를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 노래'를 10곡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음악 마니아에게 10곡을 골라내라는 건 가혹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노래를 고르면서 소중한 추억을 돌아볼 수 있어 행복했다. 솔직하게 고른 제 인생의 노래 10곡과 이에 담긴 이야기를 부디 재밌게 읽어주시길.



조수미 ‘Caro mio ben’

나에게 노래의 멋을 알려준 가수는 조수미다.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 휘트니 휴스턴보다 조수미에게 먼저 빠졌다. 그의 1998년 이탈리아 가곡집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합창단의 누나들은 독창 기회만 생기면 이탈리아 가곡집 1번 트랙에 실린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다. 지금도 ‘Caro mio ben’을 들으면 쿰쿰한 냄새가 나던 반지하 연습실의 공기가 떠오른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Tears in heaven’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아버지가 틀어놓은 에릭 클랩튼과 친구들의 1999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실황에서였다. 라인업에는 메리 제이 블라이즈, 밥 딜런도 있었는데 유독 구슬펐던 이 노래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한참이 지나 이 노래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된 후로는 이 곡이 더욱 각별해졌다. 나도 에릭 클랩튼의 애달픈 노랫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너는 내 이름을 알까?” 궁금증이 풀리려면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한다는 게 슬프다.



본 조비(Bon Jovi)  ‘Livin’ on a prayer’

나의 10대 시절은 또래 친구들보다 훨씬 아날로그에 가까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방안에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없었고, 휴대폰도 스무 살에 처음 생겼다. 자연히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레코드 가게를 가까이했다. 본 조비를 알게 된 계기도 라디오였다. 이 노래가 방송에 나오던 순간 나는 마음을 뺏겼다. 메탈리카를 좋아하던 친구는 곡을 받아 부르는 밴드는 록이 아니라며 이들을 깎아내렸지만, 나는 본 조비를 통해 록에 접속했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 내게 전인권은 “인권이 라이프”를 외치는 이상한 아저씨였다. 인식이 바뀐 건 중학생 때다. 그가 십여 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장충체육관에서 개최한 단독 공연을 뒤늦게 찾아봤다. 전율이 일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는 그를 보며 나는 얼어붙었다.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샤우팅이었다. 그날 이후 난 전인권과 들국화의 팬이 됐고,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열린 들국화의 재결성 콘서트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마돈나(Madonna) ‘Vogue’

사실 마돈나의 노래로 내 인생의 10곡을 채워도 모자라다. 케이블 음악 채널에서 우연히 ‘Frozen’의 뮤직비디오를 본 이후 난 마돈나에게 서서히 스며들었다. 결정적인 노래는 ‘Vogue’였다. 발매 시기를 짐작할 수 없는 세련미에 먼저 놀랐다. 데이비드 핀처가 만든 뮤직비디오, MTV 시상식의 마리 앙투아네트 퍼포먼스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노래로 LGBT를 알았고, 미국의 아이콘들을 배웠다.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마를렌 디트리히, 조 디마지오, 말론 브란도... 순서도 잊히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Beat it’

마이클 잭슨과의 추억은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내한 공연 당시 텔레비전 중계를 보던 날, 30주년 공연에 총출동한 스타들을 보며 감탄하던 날, < This Is It > 공연 발표 기자회견을 보며 설레던 날, 황급히 날아든 사망 속보에 새벽부터 어머니가 잠을 깨우던 날... 마이클 잭슨은 내게 팝 스타이자 록 스타였고 어린 날의 우상이었다. 그와 처음 만난 곡이 ‘Beat it’이었다. 그땐 나도 크면 빨간 가죽 재킷과 검은 슬랙스, 하얀 양말과 까만 구두가 어울리는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Overprotected’

그 시절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독보적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잠시나마 우리 시대에 마돈나가 생긴 기분이었다고 할까. 카리스마로 무장한 퍼포먼스부터 한국에 와서 보여준 친근한 모습까지 순간순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하자면 그는 내 인생 최초의 동시대 팝스타였다. 우리 집에선 ‘I’m a slave 4 u’, ‘Toxic’ 등 그의 노래 중 상당수가 ‘야한 노래’로 낙인이 찍혀 감상 금지 대상이 됐지만, 팝 멜로디의 진수를 들려준 ‘Overprotected’만은 어머니도 허락한 좋은 노래였다.



퀸(Queen) ‘Bohemian rhapsody’

세상 모든 사람이 그랬듯, 어린 나 역시 이 노래를 처음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어떤 합창단이 이렇게 멋진 오페라 파트를 불렀을까. 나중에 멤버들끼리 부른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당혹감이란! 구성의 측면에서도 여태껏 이보다 놀라운 노래는 없었다. 대체 이 노래는 발라드인가, 하드 록인가, 오페라인가. 결국 난 이 노래의 장르를 퀸 그 자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가야 했다. 내게 이 노래만큼의 충격을 안길 노래는 죽을 때까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보아 ‘No.1’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자넷 잭슨을 좋아하던 내가 보아에게 끌린 건 당연하다. 그들 못지않은 춤꾼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고, 나이 차이도 몇 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노래까지 잘 부르는 것 아닌가. 보아의 ‘No.1’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보며 나는 넋을 잃었다. 곧바로 그의 행보를 좇기 시작했고, 그를 발판 삼아 음악에 더욱 몰두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마이클 잭슨, 마돈나와 더불어 보아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당시 이 일화를 듣고 뿌듯하다는 듯 미소를 짓던 그가 문득 생각난다.



엘리 골딩(Ellie Goulding) ‘How long will I love you’

운전병 시절 유일한 낙은 라디오였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지루한 대기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을 테다. 야간 순찰을 나간 어느 날, 산골짜기 소초에 차를 세워두고 심야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별들이 하늘에 떠 있는 동안,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오래.” 마침 별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이 노래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때 그 마음은 진작 사라졌지만, 노래만은 그대로 남아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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