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달, 지구를 도왔다?

by 김민재

밤하늘에 달이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빛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밤, 별빛만으로 이루어진 하늘. 어떤 면에서는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달의 부재는 밤하늘의 풍경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달이 없었다면 지구는 지금과 근본적으로 다른 행성이 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 같은 복잡한 생명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달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전에 잠깐 이야기했지만 여기서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거대 충돌설입니다. 약 45억 년 전, 테이아라고 불리는 화성 크기의 천체가 원시 지구와 비스듬히 충돌했습니다. 하지만 이 충돌이 너무 격렬해서 충돌체와 지구 맨틀의 일부가 증발하면서 거대한 잔해 구름이 지구 주위를 덮었고, 그 구름이 식고 뭉치면서 달이 되었습니다. 달의 암석이 지구 맨틀과 조성이 매우 유사하면서도 철이 적다는 사실이 이 이론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충돌 당시 지구의 핵은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잔해에는 철보다 맨틀 성분이 주로 포함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Screenshot 2026-03-01 at 16.20.13.png 사실 매일 밤 올려다보는 저 달이 그토록 폭력적인 충돌의 산물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 Getty Images

사실 매일 밤 올려다보는 저 달이 그토록 폭력적인 충돌의 산물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그 사실이 달을 더 경이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달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석력입니다. 달의 중력이 해수면을 끌어당기면서 밀물과 썰물이 생깁니다. 이 조석 작용이 초기 생명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해안 지대에서 유기물이 농축되고, 건조와 수화가 반복되면서 복잡한 분자들이 만들어지기에 좋은 환경이 형성되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전에 이야기했던 소행성과 혜성이 실어온 유기물들이 이 조석 웅덩이에서 더 복잡한 분자로 발전해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규칙적인 조석이 없었다면 이 과정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달의 역할 중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지구 자전축을 안정시킨다는 것인데, 지구의 자전축은 현재 약 23.5도 기울어져 있고, 그 기울기 덕분에 사계절이 생깁니다. 골디락스 존 이야기를 하면서 지구의 환경이 수많은 요소들의 조합으로 유지된다고 했는데, 달도 그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Screenshot 2026-03-01 at 16.20.44.png 달은 그 안정성을 수십억 년 동안 묵묵히 지켜온 것입니다. © Getty Images

그렇다면 지구의 자전축과 관련하여 달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구들은 달이 없는 지구의 자전축이 수백만 년에 걸쳐 0도에서 85도까지 크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전축이 그렇게 흔들리면 기후가 예측 불가능하게 변합니다. 적도가 극지방처럼 차가워지기도 하고, 극지방이 적도처럼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수백만 년에 걸쳐 복잡한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달은 그 안정성을 수십억 년 동안 묵묵히 지켜온 것입니다.




달은 또한 지구의 자전 속도를 서서히 늦추는 역할도 해왔습니다. 약 14억 년 전 지구의 하루는 18시간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달의 조석 마찰이 지구의 자전 에너지를 조금씩 빼앗으면서 하루가 점점 길어졌습니다. 지금도 1세기에 약 1.7밀리초씩 하루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너무 느린 변화이지만, 수십억 년이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늘 하루 24시간이 사실은 달과 지구가 수십억 년에 걸쳐 주고받은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Screenshot 2026-03-01 at 16.21.08.png 재앙처럼 보였을 그 충돌이 결국 생명의 조건을 만들었다는 이 역설은 사실 쉽게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 Getty Images

따라서, '달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은 단순한 상상 실험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지구의 지금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의 정교한 조합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46억 년 전 일어난 하나의 충돌이 자전축의 안정과 조석의 리듬과 하루의 길이를 만들었습니다. 재앙처럼 보였을 그 충돌이 결국 생명의 조건을 만들었다는 이 역설은, 우주의 역사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를 겸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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