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행성들을 보며 지구를 봅니다

by 김민재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때로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구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가 다른 행성들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역설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구를 알고 싶은데 왜 다른 곳을 봐야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비교행성학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사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비교 없이는 기준을 알기 어렵습니다. 다른 행성들의 극단적인 사례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지구가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 잡힌 세계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금성은 지구의 쌍둥이처럼 자주 불립니다. 크기, 질량, 밀도가 비슷하고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행성이 걸어온 길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금성의 표면 온도는 약 465도입니다. 납이 녹을 정도의 온도가 행성 전체에 고르게 유지됩니다. 낮이든 밤이든, 적도든 극지방이든 온도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가 열을 완벽하게 가두기 때문입니다. 대기압은 지구의 약 92배입니다.

Screenshot 2026-03-04 at 00.24.19.png 초기 금성에도 액체 상태의 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Getty Images

초기 금성에도 액체 상태의 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태양에 조금 더 가까운 위치 때문에 기온이 오르면서 물이 증발하고, 수증기가 온실효과를 강화하고, 그것이 다시 기온을 올리는 고리가 한번 작동하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구도 같은 방향으로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얼마나 돌이키기 어려울지를 금성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성은 또 다른 방향에서 교훈을 줍니다. 화성에는 물이 흘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강줄기가 새긴 계곡, 홍수가 만든 지형, 과거 호수 바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분지들. 퍼서비어런스 탐사 로버가 활동 중인 예제로 크레이터(Jezero Crater)도 한때 삼각주가 있던 호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Screenshot 2026-03-04 at 00.24.26.png 화성에는 물이 흘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 Getty Images

한때 강과 바다가 있었을 그 행성이 지금은 평균 기온 영하 60도의 붉은 사막입니다. 대기압은 지구의 0.6퍼센트, 표면에는 액체 물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기장을 잃으면서 대기가 태양풍에 서서히 벗겨진 결과입니다. 지구에 물이 도착한 이야기, 자기장이 생명을 지켜온 이야기를 기억하신다면, 화성이 걸어간 길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목성의 위성 유로파는 생각지도 못한 다른 방향에서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로파 표면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그 얼음 아래에 액체 상태의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목성의 조석력이 유로파 내부를 가열하면서 얼음이 녹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태양에서 그토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태양에너지 없이도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다면, 생명의 가능성도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골디락스 존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생각보다 좁은 기준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유로파가 조용히 열어놓고 있습니다.

Screenshot 2026-03-04 at 00.24.46.png 골디락스 존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생각보다 좁은 기준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유로파가 조용히 열어놓고 있습니다. © Getty Images

토성의 위성 타이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타이탄에는 강과 호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액체는 물이 아니라 메탄입니다. 두꺼운 질소 대기를 가진 타이탄은 어떤 면에서 초기 지구의 화학 환경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Screenshot 2026-03-04 at 00.24.34.png 생명의 조건이 꼭 지구와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이탄이 열어 놓고 있습니다. © Getty Images

물 대신 메탄을 용매로 사용하는 전혀 다른 종류의 화학이 타이탄에서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조건이 꼭 지구와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이탄이 열어 놓고 있습니다.




이미 살짝 눈치채셨겠지만, 다른 행성들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지구를 바라볼 때, 이 행성이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가 비로소 실감됩니다. 금성은 균형이 한번 무너지면 얼마나 돌이키기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화성은 자기장과 대기와 물이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며, 유로파와 타이탄은 우리가 생명의 가능성을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을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 균형을 당연하게 여겨 왔다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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