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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Oct 06. 2017

헬싱키, 탈린, 리가, 빌뉴스, 투르쿠

2017년 여름

5년 전 갔던 헬싱키/탈린이 너무 좋았기에 발트해의 다른 도시들도 보고 싶다고 여행친구가 매년 희망했었다. 그래, 올해는 가자,라고 했는데 문제는 휴가 기간이 최대한 늘여도 7-8일 정도라는 것. 


헬싱키는 둘 다 너무 좋아하는 곳이라서 하루라도 머물고 싶다. 도착하는 날은 피곤하니까 그냥 쉬자(우리 이제 나이도 있고?), 출발하는 날도 헬싱키에서 자고 공항으로 가자 - 그래서 결국 이틀. 탈린은 둘째 날 배로. 그다음은? 그러고서야 알았는데 탈린-리가-빌뉴스는 아무도 기차를 언급하지 않으며 모두들 버스로 이동하고 있어... 각각 4시간 정도. 어렸을 때부터 차멀미에 시달렸던 나는 온갖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 여행을 기대하던 여행친구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버스 자체는 꽤 크고 편하다니까... 그래 타 보자. 그래도 빌뉴스-탈린의 8시간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비행기로 헬싱키로 가기로 하고, 그럼 투르쿠에 한 번 가볼까... 하며 끼워 넣었다. 왜 하필 투르쿠냐면... 글쎄. 아마 기타기리 하이리 책에서 본 기억 때문이려나. 


그래서 1일 1 도시를 지키며 여행을 하게 되었다 - 빌뉴스에서 이틀 지냈지만 트라카이에 갔기에 - 이거 휴가가 아닌 것 같은데. 


늘 그렇지만 별 준비 없이 돌아다닌 여행이라, 각 도시의 인상 같은 것을 남겨볼까 한다.


헬싱키. 


내가 여기를 왜 그렇게 좋아하냐면... 글쎄? 카모메 식당은 알고는 있었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 헬싱키에 처음 갔을 때 너무 좋아서 여행에 다녀온 후 영화를 찾아봤으니까. 북유럽이 처음도 아니었고 - 스톡홀름/웁살라를 그전에 갔었다 (두 도시다 좋아한다). 원래 이렇게 바다와 함께 하는 도시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북적이면서도 잔잔한 느낌이 좋아서일지도. 하늘을 배경으로 한 민트색/흰색이 잘 어울리는 거대한 성당이라던가, 아카데미아 서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던가... 


별로 예쁘지 않고 왠지 적막한 골목이 이상하게 좋다던가. 

이런 귀여운 메모를 길에서 발견한다던가 - 저 클립으로 집어놓은 디테일도 마음에 든다.



탈린.

여기도 이번이 두 번째 방문.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다짐했다. 다음부터 이 동네 와서 뭔가 살 생각이면 탈린에서 다 사자. 헬싱키 보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싸면서 예쁜 것이 가득했다. 나무로 뼈대를 잡고 양털을 씌운 양털 의자 (거대 양 인형이긴 했지만)를 살까 말까를 수십 번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고 왔다. 아직 여행 초반에다가 (갈 길이 멀었음)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이거 세탁 어떻게 해? 물어봤더니 직원들도 당황해서... 그래도 여기서 나무 스푼, 버터나이프- PUUPANK라는 가게에서 아주 예쁜 것으로 - 를 샀다. 

저 빨간 고깔모자 쓴 건물들을 다시 보니 매우 반가웠다. 

누가 판의 미로 전설이라도 이야기해 줘야 할 것 같다...


리가.

이 도시에 대한 내 인상은 헤닝 만켈의 리가의 개들에 멈춰있었다. 그게 아마 냉전 붕괴 상황을 그린 거였던 것 같은데... 나도 내가 이 도시에 대해 가진 그림이 뭐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도착해서 당황했다. 분위기가 너무 달라...? 

가져갔던 여행책에 소개된 올빼미 서점/카페의 핫초컬렛(말 그대로 핫초컬렛이다. 초컬렛을 녹여 에스프레소 잔에 담음. 지쳤을 때 딱 좋다. 종종 생각 남) 한 잔 마시고 도시에 대한 인상을 정리했다. 멋진 곳이야.


참 밤에 구시가지를 산책하는데 낮에 사람들이 얌전히 앉아 먹고 마시던 레스토랑에서 춤(?) 판이 벌어졌다. 구경만 해도 꽤 흥겨웠어. 


리가 - 빌뉴스.

탈린에서 리가도 버스를 탔는데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리가의 호텔 직원 빌뉴스 갈 때 뭐 타고 가? 하고 추천을 받아 예약한 버스는 (좀 더 비싸긴 했지만) 뭐랄까... 허니와 클로버에서 홋카이도로 카시오페아(야간열차)를 탔을 때 리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모두들 이 시간을 사는 거구나. 큼직한 창으로 보이는 풍경에 멀미도 안 하고,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에피톤 프로젝트) 멍하니 4시간을 보냈다.



빌뉴스 (빌니우스?).

여기 구시가지가 그렇게 예쁘다면서... 하며 갔는데 진정 예뻤다. 덤으로 숙소는 옛날 수도원 건물을 고친 곳인데 꽤 멋져서 마음에 들었다. 테마가 책이라 (이름이 bookinn) 지내는 내내 재밌었다. 냉장고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산책 삼아 아침에 우즈피스에 가서 멋진 빵집에서 크로와상을 먹었다. 

왠지 세상이 멸망할 것 같지만 좋은 곳이다. 


숙소가 대학가와 가까워서였는지 서점/북카페가 여기저기 있어서 기웃거리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도시든 서점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읽을 수 없어도 그림책을 찾아보는 재미도 꽤 크니까. 여기서는 리투아니아의 요정(?)들에 대한 (아마) 그림책을 샀다. 


빌뉴스에서 핀란드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데, 찾아보니 기차가 가장 좋대서 좀 놀라고 (탈린-리가-빌뉴스를 여행하며 기차가 괜찮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 그 기차가 1시간에 한 대 있다고 하는데, 공항까지 7분이며, 0.7유로(편도)라고 해서 다시 좀 당황.

게다가 이 기차 심하게 느려... 표는 기차에 타면 직원분이 재빨리 다가와서 파는데 불어와 독어를 섞어 말해서 다시 당황했다. eins quarante라고 한 듯 (두 명이라 1.4 유로니까). 


투르쿠.


뭐랄까, 우리 여기 왜 왔을까, 를 여러 번 되물었다. 진짜 딱히 할 거 없구나. 그냥 산책하고 쉬기에 좋은 곳, 이라는 정도의 느낌만 남았다. 



어느 도시나 꽤 독한 종류의 술이 많았는데 (맥주도), 어째서(!) 밤 9시/10시 이후로는 마트에서는 살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빌뉴스에서 밤에 마트에 이것저것 술을 담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사람이 "9시 넘어서 술 못사"라고 이야기해 주었고 - 그래도 카운터까지 가지고 가 봤는데 안 되더라는... - 헬싱키에서 보낸 마지막 날에 맥주나 한 캔 마실까 하며 사러 갔더니 편의점 직원이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설명해 주었다. 빌뉴스 꿀 리큐르가 그렇게 맛있대서 결국 공항에서 한 병 샀다. 홍차에 넣으니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든다. 


여행 가서 기념품은 평소에도 쓸 수 있는 것 위주로 사고 있다. 이번에는 나무, 린넨, 양털 + 이딸라 를 생각하며 돌아다녔다. 그래서 산 것들은


1. 나무 커트러리 - 스푼 (큰 것 작은 것), 버터나이프, 요리용 스푼

2. 리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서 산 린넨+실크 숄 (좀 비싸서 망설였는데 여행 내내 엄청 흡족하게 두르고 다녔다)

3. 빌뉴스에서 산 그림책

4. 이딸라 아라비카 찻 잔

5. 헬싱키 여행책에서 발견한 빈티지 가게에 찾아가서 산 샐러드볼(아마?). 매일 쓰고 있다. 일본 작가의 여행책을 번역한 것이어서, 이 가게에 일본인이 꽤나 많이 오는지 일본어로 뭔가 적혀 있기도 하고 계산하고 나갈 때 마릴라 같은 인상의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의외의 수줍음과 함께 일본어 인사를 건네셨다. 

6. 술(!), 초컬렛



발트 여행 노트 (책)

3 데이즈 in 헬싱키 (책)

리가의 개들 (책)

PUUPANK woodbank of Estonia 

VALTERS UN RAPA (Riga)

ETMO (Riga)

Bookinn B&B

Mint Vinetu (Vilnius)

Humanitas (Viln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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