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명사, 동사, 형용사
명사_엄마
나는 십 년차 엄마다. 첫 아이가 말을 떼고부터 ‘맘마, 마미, 마마, 엄마’ 하루에 천 번은 불리다가, 아이가 둘이 되고는 하루에 만 번씩 불린다. ‘엄마’ 소리에 상태가 좋으면 ‘왜 우리 아가?’, 피곤할 때는 ‘또 왜?’ 하고 답한다. 비단, 아이들만 나를 부르는 게 아니다. 선생님, 이웃, 아이 친구, 친구의 부모도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엄마!’ 하면 수많은 여자가 돌아볼 것이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하는 수많은 여성을 한데 지칭하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는 고유함이 담겨 있지 않고, 감정 없이 으레 쓰는 표현인 “죄송하지만⋯.” 같이 어떤 요구가 따라붙을 것만 같다.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낸 사슬 한 가닥으로서 연결된 다른 가닥이 흔들면 마땅히 반응해야 하는 기능적 호칭 '엄마'.
호칭 ‘엄마’는 살을 파고서 심은 음료 자판기의 버튼 같다. 산후조리원에서 밤낮 듣는 ‘00 엄마’ 수유 호출처럼, ‘엄마’라는 ‘인풋’이 들어오면 꼭 무엇이든 제공해야 할 것 같은 강박. 그것이 아직 가슴팍에 충분히 돌지 않은 젖, 아이가 찾지 못한 지우개, 남편의 양말 한 짝이든 간에.
‘엄마’가 아닌 다른 단어로 나를 표현해 보려 고심해 본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동사_발효하다
우리 집 부엌 왼편에는 ‘콤부차 스코비1)’와 ‘사우어도우 르방2)’이 자란다. 두 종류의 유산균이 우리 집 식구들의 장내 건강을 지켜주며 이 순간에도 무럭무럭 불어난다. 발효는 살아 숨 쉬고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발효된 것은 섭취하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곳의 움직임을 활발하고 충만하게 돕고, 배출하게 한다. 발효시키려면 유산균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고, 발효한 것은 비우고, 새로운 밥을 채워 넣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노력과 시간이 만난 생명의 선순환에 희망을 품는다.
1) 차와 산도가 높은 과일즙을 원료로 하는 발효식초를 만들기 위한 유산균 덩어리
2) 느린 방법으로 빵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연 숙성 효모
형용사_맹랑하다
내겐 좀 맹랑한 구석이 있다. 단란하게 끝나면 좋을 친목 모임 끝에 입을 열어 분위기 ‘쏴’ 하게 만들고, 불똥 맞을 수 있는 순간에 굳이 일어나 주변을 불안하게 한다. 사람 관심 밖에서 고유한 재미에 골몰하는 삶을 추구하는 나다. 나의 맹랑은 결코 소영웅심에서 기인하지 않았다. 사회적 위치나 순간의 정황상, 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존엄을 해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얼굴이 차가워지고 어깨 아래는 뜨거워져서 일어나는 동물적 움직임이다. 그동안 말과 행동으로 보인 맹랑함은 원하지 않는 사람도 견뎌야 하는 폭력이었음을 인정한다. 글은 읽으려는 사람의 의지가 들어가야만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에 용서받을 길을 찾는다. 이제는 글로 맹랑해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