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대구에서 상경했을 때, 통장 잔액은 몇 천원.
학자금 대출을 갚고 보증금 낼 돈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건 고시원뿐이었다.
창문이 없는 방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 동네를 살피며 걷다가 잘 때쯤 방에 들어갔다.
복도 끝에 공용 화장실이 있었는데, 샤워 중에 누군가 문 손잡이를 덜컹거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살고 싶어, 화장실 있는 방으로 옮겼다.
월세는 45만 원. 나를 안심시켜주는 최소한의 금액이었다.
담배 냄새가 스며든 벽지, 옆 방 사람 방구소리까지 들리는 좁은 방,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전부였던 시절.
그때의 나는 ‘언젠가’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달랬다.
어느 날 밤,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담배 냄새가 스며들어와 짐을 싸서 나왔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서성이다가, 서울에 사는 이모와 이종사촌언니가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지붕 아래에서 며칠, 아니 몇 달을 보냈다.
그 집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있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거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신림의 원룸으로 옮겼다.
보증금 100만 원, 월세 40만 원.
그때는 그게 내 공간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바닥이었다.
하지만 그 바닥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게 나의 출발선이었다.
부동산 공부도, 투자도, 결혼도
모두 이 불편한 현실을 바꾸고 싶었던 한 가지 욕망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