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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Dec 12. 2020

발화(發話)와 담화(談話)

그건 대화가 아니라고요


중2 국어 문법에 ‘담화의 개념과 특성’이라는 단원이 있다. 교과서에 나온 설명에 의하면 담화는 화자와 청자가 일정한 장면에서 주고받는 ‘발화’의 연속체를 뜻하고, 발화의 사전적 정의는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현실적인 언어 행위’이다. 그러니까 담화를 하기 위해서는 화자와 청자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을 준비하다가 새삼스레 깨달았다. 현대인에게는 담화보다 일방적인 발화의 순간이 더 많다는 것을.     


나에게는 ‘발화거두기병’이 있다. 발화거두기병이란 내가 만든 말인데, 청자 없는 화자가 발화하는 말이 공중으로 분해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거둬 대답하는 병이다. 청자를 자청하는 나쁜 버릇이랄까.     


누군가를 호명하지 않고 발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소는 교무실. 한 선생님이 발화를 시작한다.   

  

  “아니 땡땡이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하네.”     


삼 초의 정적. 교무실에는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선생님이 있다. 운을 뗀 선생님의 말엔 물음표가 붙었고, 누군가 그 말을 받아쳐야만 한다. 그렇다. 청자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그를 등지고 있다. 힐끔 옆쪽을 보아하니 다른 선생님도 교재 채점에 한창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침묵이 힘들어서 청자의 자리를 지킨다.    

 

  “아, 저는 땡땡이를 안 가르쳐서요.”     


보면, 습관적으로 발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대답이 필요 없는 혼잣말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텐데 물음표가 붙어있을 때는 참 난감하다. 대체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상대방은 명확하게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질문 자체가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참 애매한 순간들이다. 적어도 눈이라도 마주치고 있을 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무나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주워서 대답하라는 건가. 너무 속 편한 것 아닌가.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면 호명을 할 때도 본인들 편한 대로 부른다는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국쌤, (그래, 국어쌤은 나 한 명이니까 이해한다 치자), 수학쌤, (수학쌤이 옆에 세 명 있는데 누구한테 말씀하시는 건데요) 거기! 아들들아! (복도에서 중학생 남자애들이 우르르 지나가자 하는 소리.) 애들이 질색하는데요 선생님.  

   

뭐 대단한 준비를 하고 말을 시작하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화자는 청자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 “아, 내가 청자구나” 정도는 인식할 수 있게 말이다. 화자는 점점 많아지지만 청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 사람들에게 마냥 경청을 강조하기보다는 화자가 청자와 ‘담화’를 나눌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발화거두기병’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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