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Feb 20. 2020

쌤, 커피가 땡길 만하네요!

어른을 위로하는 어린이

출근길엔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있는 카페에서 가끔 돌체라떼를 사 먹는다. 여느 때처럼 단지 안을 걷는데 우리 학원을 다니는 초3 다인이를 만났다.      


“다인이 어디가?”

“학원 가요!”     


학원은 두 시 오픈, 시계를 보니 한 시 이십 분. 너가 가는 그 학원이 내가 출근하는 그 학원인데 어딜 간다고……. 다인이가 오픈 시간보다 일찍 온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겨울방학이 되자 다인은 놀이동산의 개장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학원 앞을 도착해 쭈그려 앉아있곤 했다.      


“다인아. 학원 두 시에 연댔잖아! 문 잠겨 있단 말이야. 천천히 와야지.”

“쌤이랑 가면 되죠!”

“나는 지금 어딜 좀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어디요?”

“카페.”

“같이 가요!”     


다인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얼떨결에 다인과 손을 잡고 카페로 향했다. 다인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은 아니지만 특유의 친화력과 생글생글한 미소로 모두와 친구가 되곤 했다. 다인은 뭔가 끄적이는 걸 좋아했다. 우울할 때는 내 보드마카를 빌려 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시를 몇 자 적곤 했다. 대표작으로는 ‘하건은 즐거워’, ‘아빠는 잠만 자’, '꽃님이 자꾸 똥 싸' 등이 있다. (꽃님이는 다인이네 집 고양이인데 똥을 정말 많이 싼다고 함.)     

“쌤은 원래 출근하기 전에 카페를 가요?”

“응. 가끔.”

“어디로요?”

“하삼동 카페로 가지.”

“거기 우리 엄마도 자주 가요. 돌로 만든 무슨 라떼만 먹어요.”

“아, 돌체라떼?”     


뜻밖에 다인이 어머님과 나의 공통점을 찾았다. 다인이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근데 쌤은 이 일 하기 전에 무슨 일 했어요?”

“음……쌤은,”     


아이들은 가끔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집요하게 질문이 이어질 때는 유연하게 대답을 받아쳐야 하는데, (다른 쌤들은 잘만 하던데) 나는 늘 그게 안 된다. 묻는 말에 정확한 대답을 해주고 싶어 진다. 나는 틈틈이 누군가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다인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럼 쌤, 자아악가에요요?”     


다인은 며칠 전에 작가라는 단어를 나에게서 배웠다. 다인이 자꾸 보드마카로 시를 쓰길래, 다인이는 작가를 해도 되겠다고 말했더니 다인이 되물었다. 작가가 뭐냐고.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작가라면,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작가는……, 나는 등단도 안 한 데다가, 요새 글도 안 쓰고, 써도 엉망진창 쓰레기 같은 것만 배설하는 나는 그러니까……     


“작가는 아직……음.”     


다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곧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녜요. 쌤은 작가예요!”     


밑도 끝도 없는 다인의 대답에 묘한 위로를 받았다. (너 나중에 사회생활 좀 잘하겠구나!) 다인은 그로부터 나에게 작가가 되려면 무슨 글을 써야 하냐, 오늘 출근하기 전에 뭘 했냐, 지하철 타고 오면서 이상한 사람 없었냐,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냐, 같은 다양한 질문을 늘어놨다.      


나는 대답했다. 작가가 되려면 무슨 글보다는 많은 글을 써야 하는 것 같고, 출근 전에는 침대에서 뒹굴었고, 지하철 타고 오면서 옆에 있는 아저씨가 자꾸 기침을 해서 흠칫흠칫 했다고. 나중에 무슨 일을 할진 모르겠지만 지금 하는 이 일을 열심히 하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고민들을 다인이에게 털어놨고 다인은 베테랑 상담 선생님처럼 내 얘기를 묵묵히 들어줬다.


이어 다인은 내 대답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아침에 할머니와 ‘정글의 법칙’에서 봤던 무서운 장면을 설명해줬고 이어 언니가 해준 간장계란밥이 얼마나 맛없었는지도 말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다.

    

“다인이 뭐 마실래? 쌤이 사줄게!”

“정말요? 그럼 저는 저거 마실래요!”     


다인이 가리킨 건 쇼케이스 안에 진열된 포도맛 뽀로로 음료수였다. 돌체라떼가 제조될 동안, 다인은 먼저 음료를 마셨고 잠시 묵묵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요. 쌤.”

“응?”

“들어보니까 쌤……커피가 땡길 만하네요!”     


다인의 말에 히죽 웃음이 났다. 너……솔직히 초3 아니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학원 강사 일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