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과거를 돌아보다: 감정을 억누른 삶의 뿌리
동료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 강렬한 감정들은 내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왜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을까?' 이 질문은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했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내가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가정에서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어린 시절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유하지
않았다. "착한 아이는 울지 않는다," "뭘 그런 일로 우느냐," "운다고 해결 안 된다"는 말도 아주 자주 들렸던 기억이 난다. 생존과 성공을 중시하며 살아오신 부모님에게 감정 표현은 어쩌면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가정에서 나는 자랐다.
우리 집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화를 내거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나약함'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가 칭찬받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일로 화가 났거나 슬픔에 잠겼을 때, 부모님은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셨다. 감정을 잘 통제하면 "우리 아이 참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믿었다.
학교에서도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교실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으로 여겨졌고, 많은 선생님은 이성적이고 차분한 태도를 선호했다. (미국이라고 다 자유롭지는 않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감정을 숨기는 법을 점점 더 익숙하게 되었다. 또래 집단에서도 감정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아이는 '유치하다'거나 '관심종자'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저학년 즈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적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부터, 나는 감정을 숨기는데 더 능숙해졌다.
내가 첫 번째 큰 상실을 경험했을 때도 비슷했다. 어린 시절 키우던 강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내 감정은 어린 내기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냥 개일 뿐이야, 너무 슬퍼하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강해 보이기 위해 눈물을 참았고, 그 순간 내 감정의 일부도 함께 묻어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 친구들과의 갈등이나 학교 생활의 스트레스, 작은 좌절과 실망들까지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함의 표시로 여겨졌기에 항상 강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런 억눌림이 쌓이면서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점차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었나보다.
이러한 감정 억제의 패턴은 사실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많은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특히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아이들은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 불릴 만한 성향을 보이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또래 관계에서 중재자나 평화 유지자 역할을 맡는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갈등을 피하려는 패턴으로, 겉으로는 바람직해 보이지만 내면의 진정한 욕구와 감정을 무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친구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A를 보자. 친구들이 다투면 그는 갈등을 해결하려고 애쓰고,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으며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한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아이처럼 보이지만, 점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데 익숙해진다. 이런 습관은 결국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학업 스트레스는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시킨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높은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많은 아이들은 감정을 무시한 채 오직 공부에만 매진한다. 시험 불안이 찾아와도 그것을 인정하거나 표현하지 않고 "감정은 나중에"라는 생각으로 억누른다. 좋은 성적을 받아도 진정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당연한 결과'로 여긴다. 이런 패턴은 성취 이면의 공허함을 키운다.
첫사랑의 경험도 비슷하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감정을 숨기고,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결국 이별을 겪었을 때도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내면에는 큰 상처가 남는다. 이 미해결된 감정은 이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착한 아이 증후군'은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을 타인의 기대에 맞추고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욕구를 무시하게 만든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우울증, 불안, 정체성 혼란 등의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억누르는 것은 장기적으로 심리적 안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인이 되면서 감정 억제는 더욱 심화된다. 직장 생활에서는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 표현에 대한 암묵적인 규칙들이 존재한다. 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것이 번아웃과 직결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가 쌓여도 표현하지 못하고 참다 보니 번아웃 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동료들과의 경쟁 속에서 승진과 인정을 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숨기는 일이 잦아진다.
결혼 후 가정을 이루면서도 이런 패턴은 계속되기 쉽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감정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부모가 되면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가족 내에서 진정한 감정 소통이 없으면 관계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부모님에게 배운 감정 억제의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내 가정에서도 재현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성공을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공허함은 점점 커진다. 외적인 성공 기준에 맞춰 살아가면서 진정한 내 욕구와 감정은 무시해왔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공허함과 무력감이 찾아오고, 이는 중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장기간의 감정 억제는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심신의학(psychosomatic medicine)에서는 억압된 감정이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될 수 있다고 본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나는 예를 보자.
-직장인의 두통과 소화불량:
직장에서 상사와의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 직장인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는 상사에게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적으로 분노와 스트레스를 억제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만성적인 두통과 소화불량을 겪게 되었다. 여러 의사를 찾아가 검사를 받아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다.
-학생의 불면증과 복통:
대학 입시를 앞둔 한 학생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공부에만 매진한다. 시험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감당하려고 한다.
이 학생은 점점 불면증과 복통을 겪게 되었다. 병원을 찾아가 여러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감정적 둔감화는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라는 심리학적 개념과 연관될 수 있다. 알렉시티미아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의 결핍을 의미한다. 이는 대인관계와 공감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알렉시티미아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단어가 없는 감정'을 의미한다. 이는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설명한다. 알렉시티미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식별하고 기술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이는 종종 사회적 애착과 대인 관계의 기능 장애로 이어진다.
알렉시티미아의 주요 특징
감정 인식의 어려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거나 명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자신이 화가 났는지 슬픈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할 수 있다.
감정 표현의 어려움: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해 대인 관계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대화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신체적 감각과 감정의 혼동: 감정을 신체적 증상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느낄 때 이를 단순히 두통이나 복통으로 인식한다.
상상력의 부족: 상상력이 부족하고, 꿈을 꾸는 빈도가 적거나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 문제: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관계가 표면적이거나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이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감 능력이 저하되면 관계의 질이 떨어지고, 피상적인 소통이 늘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렉시티미아를 가진 사람은 친구가 슬픔을 표현할 때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적절한 위로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친구와의 관계에 긴장을 초래하고, 결국 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알렉시티미아는 직장 내에서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팀 프로젝트에서 동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협업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우울과 불안 증상은 억압된 감정이 결국 표면화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말한 '그림자'의 개념처럼, 오랫동안 무시되고 억압된 감정들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무기력감과 의욕 상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과도한 걱정이 일상이 되는 것. 그동안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탓에 자기 위로의 능력도 부족해져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렇게 감정 억제의 뿌리는 다양하게 펼쳐져 있으며, 그 영향은 매우 넓고 깊을 수 있다. 감정을 억제하는 습관은 깊숙한 심리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의 일상적인 삶과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