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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Dec 12. 2024

넘어져도 괜찮아. 걸음마가 가르쳐주는 인생

심리학박사의 마음이야기

12월의 고요한 아침입니다. 글을 쓰기 바로 직전, 미국에 있는 동생 가족과 영상통화를 마쳤습니다. 그곳은 아직 전날 저녁이라, 포근한 실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을 더하면서 시끌시끌한 모습으로 통화를 했습니다. 15개월 된 조카가 드디어 첫걸음마를 시작했다며, 동생이 자랑하듯 보여준 영상 속에는 아기의 웃음소리와 함께 온 가족의 환호성이 가득했습니다.


"아가야, 잘 걷는구나! 이모한테도 걸어와 볼래?"

화면 속 조카는 비틀거리면서도 한 발, 한 발 내딛더니 결국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나 웃음 짓는 모습에, 제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울렸습니다. 서울의 차가운 겨울 아침이 한순간 봄처럼 포근해진 느낌이었지요.


20여 년간 심리학자로 살아오면서, 때론 지치고 힘들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인간의 놀라운 성장 과정을 연구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일은 제게 큰 축복이었으니까요.


특히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의 모습은 제게 늘 특별한 감동을 줍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에서, 인생의 모든 도전과 성장의 본질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기들은 넘어질 때마다 울음을 터뜨리지만, 그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일어나 걸음마를 시도합니다.


요즘 제 상담실은 연말을 맞아 더욱 분주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분들로 가득합니다. 나이 마흔에 퇴사를 결심한 분, 오십에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분, 예순이 넘어 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분... 차가운 바깥공기를 뚫고 찾아오시는 그분들은 하나같이 불안과 걱정을 안고 계십니다.


"선생님, 이 나이에 시작하는 게 무모한 걸까요?"

"다른 사람들은 벌써 많이 앞서 있는데... 저만 뒤처지는 것 같아요."

"실패하면 어쩌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를 떠올려보세요. 그때의 우리는 수없이 넘어졌지만, 한 번도 '난 걷기에 소질이 없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다시 일어났고, 결국 모두가 걷게 되었죠. 인생의 새로운 도전도 그렇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좌절하겠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해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제 방 창가에는 작은 크리스마스 캑터스가 있습니다. 가장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이 식물처럼, 우리의 도전과 성장도 때로는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꽃봉오리가 하나 맺혔네요. 마치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처럼 보여 미소 짓게 됩니다.


얼미잔 옛 앨범을 보다가, 제가 처음 걸음마를 뗐던 순간을 담은 흑백사진을 발견했습니다. 40여 년 전, 새 옷을 입고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많은 용기로 그 첫 발걸음을 내디뎠을까? 그리고 그 용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 용기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단지 잊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어쩌면 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 첫걸음마와 같은지도 모릅니다. 두렵고, 불안하고, 때론 넘어지지만... 우리는 언제나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연구실로 향하는 길에, 첫눈을 밟으며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들의 순수한 도전 정신, 실패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간직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상담실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걸음마를 배웠던 용감한 도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지금도 우리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답니다. 다만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죠."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이 겨울의 끝에는 분명 봄이 올 거예요.

당신의 새로운 걸음도 그렇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첫 발걸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아주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 보세요.


우리는 이미 한번, 그렇게 세상을 걷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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