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단어, “굳이”가 나를 성숙하게 했다.
요즘 ‘굳이’라는 단어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예전엔 굳이 말해야 했고,
굳이 이해받아야 했고, 굳이 인정받아야 했다.
그래야 내 자리가 안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내가 나로 서 있는 순간이라는 걸.
살다 보니 관계엔 적당한 거리가 있는 듯하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마음이 닿지 않는다.
나는 그 사이를 지키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상대의 눈치를 보며 말을 고르고,
내가 느낀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한 채 괜히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어쩌면 표정과 에너지는 드러났을지 모르지만..)
그땐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마음을 버티게 한 건
오히려 ‘침묵 속의 불안’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얼마나 편안한지 조금씩 배우고 있다.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믿어주는 사람,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편안한 관계.
그게 내가 요즘 배워가고 있는 사랑의 모양이다.
그리고 요즘은 이 단어를 관계뿐 아니라
‘내 안의 욕망’ 앞에서도 자주 떠올린다.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을 때,
순간적인 감정이나 충동이 올라올 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굳이 지금 해야 할까?”
그 짧은 질문 하나가 마음의 속도를 늦춰준다.
욕망을 참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된다.
그렇게 잠시 멈추면 하고 싶은 말 대신 고요가 남고, 채우고 싶은 욕망 대신 여백이 찾아온다.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결국 나를 더 깊게 만드는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느낀다.
그래서 오늘도 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돼.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돼.
굳이 지금 욕심내지 않아도 돼.
너는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어.'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은 용기,
요즘 나와 가장 친밀한 ‘성숙의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