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처음의 우리를 다시 데려왔다

함께 걷다 보니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

by 고민지

9년째 함께 살아가는 우리 부부.

비혼주의자라던 남자친구가 나와 결혼을 결심하고, 남편이 되어 있는 지금을 떠올리면 그 사실만으로도 기적인데..

시간이 흐르고 익숙함이 쌓일수록 감동은 흐려지고 서로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눈에 밟힐 때가 많았다.

이번 여행의 첫날엔,
출발 직전까지 바쁜 일상 탓에 예민해진 모습이 그대로 스며 있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넘기던 행동도 피곤한 날엔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왜 이렇게 인상을 쓰지?”

“왜 별거 아닌데 자꾸만 짜증을 내지?”

그렇게 인천공항에서 프라하 공항까지
우리의 눈치작전은 이어졌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낯선 도시의 공기를 함께 걷다 보니 서운했던 부분이 조금씩 말이 되고, 꺼냈던 말들이 조금씩 표정이 된다.

손을 내밀고,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어주며 렌즈 속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보면 괜히 미묘하게 웃어주는 남편, 그리고 그 웃음에 덩달아 풀려버리는 나.

결국,
마음 끝에는 여전히 서로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였다.


나를 위해 10일간의 자유투어를 설계한 남편.
나는 그걸 ‘예민함’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사람은 "가장 좋은 여행을 선물하고 싶어서" 날씨부터 음식, 동선까지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었던 거였다.

함께 걷고, 함께 먹고, 새로운 풍경을 함께 바라보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사랑의 모양이 하나둘 드러난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다는 걸,
조용히 챙겨주는 마음이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를 조금 늦게서야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번 여행이 가르쳐주고 있다.

서운했던 마음이 풀리고, 웃는 시간이 늘어나고,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그렇다면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

이제는 조금 더 힘을 빼고, 조금 더 기대고,
조금 더 나누면서 살아보려 한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의 언어를

서로에게 배워가면서..



25.11.09
유럽에서 맞이하는, 서른여섯 번째 생일날.



목요일 연재
이전 24화소탈한 게 좋았지만, 무탈함이 감사해진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