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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Jul 27. 2018

업그레이드된 '페미니즘'

( Upgraded Feminism by ME, Part 1 )



1. Rude Awakening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초,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당시 살아계시던 아버지와 새엄마, 나와 남동생이 두 세평 남짓의 반지하 방에서 살던 시절.


 사실 내가 기억하는 '취하지 않은 아빠'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가 학교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학교와 학원 숙제를 매일 잘해가는지를 매일 꼼꼼하게 검사하던 것은 새엄마가 아닌 아빠였을 만큼 그는 내 학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했었고, 남자가 집안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던 그 시절 아빠는 종종 가족을 위해 멋진 저녁을 만들어 내곤 했었고, 내가 하는 잘못된 행동들을 지적하고 훈육하는 데 있어선 마치 사대부 선비처럼 굴곤 하는 올곧은 아버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종종 아빠가 술에 취해 새엄마를 때리는 소리에 밤잠을 깨곤 했었다.  

처음엔 TV 소리인가? 혹은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날 시퍼렇게 얼굴이고 몸에 멍이 든 새엄마를 보고는 내가 밤새 들은 소리가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그런 일들은 좀 더 빈번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나도,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동생도, 혹시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말리거나 막았다가는 정말 더 큰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저 모른 척, 잠든 척 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엄마는 미안하다는 쪽지 하나만을 남겨두고 가출을 했고 그 이후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내가 맞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이 아닌, 이유도, 자비도 없는 불분명한 이유들로 온 몸과 얼굴에 멍이 들어 방학도 아닌데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숱하게 많이 생겼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던 시절 속에 아빠는 '이겨낼 수 없는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2. 세고, 독립적이고, 남자보다 강해 보이는 여자들을 동경하던 시절.

 (Craving the power myself.)



 1995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열한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십여 년간 나는 경기도 성남의 시멘트 공장 안에서 구내식당을 운영하시던 조부모님과 살았다.

  

 그때 할머니는 십 대인 나에게 딱 한 가지의 잔소리를 하셨었다.


"니 인생은 니 인생이다." 

(그러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알아서 잘 선택하고 잘 살으란 얘기죠.)


 부족한 것도, 가지지 못했던 것도 많았지만 그 시절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시는 안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장 자유롭게 많은 것을 꿈꾸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내가 가장 강력하게 끌린 것은 '강한 여자상'이었다.



마돈나.

프리다 칼로.

펄 벅.

신사임당.



 아마, 이 부분에선 아빠의 영향이 조금 크겠지만, 나는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받고 아이를 낳고 평화로운 가정을 꿈꾸는 평범한 여자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는 여자를 보고 꿈을 키워 본 적도 없을뿐더러 분명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나라는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남자'를 뛰어넘는 강하고, 독립적이고, 자신의 분야에서 독특한 입지를 다진 여성들의 이미지와 삶과 그들의 작품에 늘 크게 끌려왔고 감동했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동경하는 이미지를 가진 '강한 여자'가 내 미래, 내가 살고 싶은 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3. Sexual Subject (섹스의 대상)


 스물두 살, 2006년도, 필리핀.


당시 필리핀에서 가장 잘 나가는 클럽의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인도 출신의 사장은 나에게 그의 '공식적인 첩'이 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그는 금줄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아주 많이 비싸 보이는 롤렉스 시계와 그가 소유한 클럽에서 길 건너 새로 생긴 고층 빌딩의 펜트 하우스 열쇠를 테이블 위로 들이밀었다.


 돈은 당연히 필요했다.

당시 나는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게 된 계기인 '친엄마'와의 불화를 통해 금전적인 문제를 겪고 있었고 아마 학기가 끝나는 대로 한국으로 돌아가 학비를 벌어 돌아와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고 그는 내 앞으로 놓은 시계와 집 열쇠 이외에도 생활비, 학비, 용돈에 심지어 자신이 가진 사회적 위치와 친분을 이용해 앞으로 필리핀에서 생활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도록 해결해주겠다는데 그가 내건 조건에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나까지 인간이 뭐라고... 그냥 두 눈 꼭 감고 이거 받고, 개기름 쥘쥘 흐르는 오십도 넘은 이 늙은 남자 첩 하면서 편하게 살아봐?'

 '이 사람 조건을 받아들이고 첩이 된다고 해서 내가 꼭 나쁜 인간, 질 나쁜 여자가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쓸 데 없이 조금 고지식했고, 필요 없이 높은 자존심을 가진 여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렇게는 못하겠어."라고 얘기했고 나는 캐나다에 온 젊고 아름답고 열정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캐나다로 왔고 그 사람과 결혼도 하기 전 첫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되었다.





 첫 아이를 낳고 극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

산후 우울증에 굳이 이유는 없겠지만 첫 애라 뭘 몰라서, 도 있었고 친정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어 도움을 받는 상태도 아니었고, 남편은 늘어난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해야 했는데 당시 다니던 회사의 특성상, 출장이 많았고 덕분에 나는 아는 사람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해 어딘가 나가지도 못하고 누구를 만나지도 않고 독박 육아, 독박 살림을 한 덕분에 상태는 좋아질 겨를 없이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



 그러다보니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했었나?'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주말에 집에 와 나와 잠자리를 하려고 하는 남편에게는 번번이 더러운 눈길을 주기도 했다.

 분명 내가 미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과 함께 아이까지 낳았는데 사랑이 식었거나 사라졌단 생각이 들기까지도 했다.


 이 아이를 키우는 것 외에는, 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일 이외에는 나는 관심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지어 나 자신의 정신적인 건강, 내 체력조차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해 나갔지만 나는 모든 일에 시큰둥해졌다. 글도 쓸 수 없었다. (써지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리는.. 우리 여자들은 혹시 남자라는 생명체가 혹시 섹스를 하지 못하면 정신이 어떻게 되거나, 너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거나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혹은 컨트롤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돌이켜보니 결국엔 내가 만난 모든 남자들이 나에게 원한 것은 나와의 잠자리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어딨나. 사랑의 위대함, 필연성, 뭐 이런 부분들은 남성의 여성의 결합의 타당성을 보기 좋게 치장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나?


 그때 나는 종종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여자'를 만드셨을까, 그런 생각을, 그런 질문을 많이 했다.




Part 2에서 이어집니다.

(Com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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